종합

[성 김대건 신부님 탄생 200주년 희년 교구 지정 순례지 탐방] (10)수원성지

이주연 기자
입력일 2021-06-22 수정일 2021-06-22 발행일 2021-06-27 제 3251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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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모를 들꽃처럼 스러져간 순교자 2000여 명 기억
유네스코 세계유산 수원화성 성 전체가 순교지나 다름없어
무명 순교자만도 2000여 명
신앙과 역사문화 함께 느끼는 ‘도심 속 성지’로 자리매김

수원화성은 전체가 순교지라 할 수 있을만큼 2000명에 달하는 신자들이 성 곳곳에서 순교했다.

수원성(水原城) 혹은 화성(華城)으로 불리는 수원화성(水原華城)은 한국 성곽 문화의 백미로 손꼽을 만큼 아름다운 성이자 수원시의 상징이다. 사적 제3호이자 1997년 12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도 등록된 이곳은 정조가 뒤주 속에서 생을 마감한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수원 화산으로 이장하고 화산 부근 군아가 있던 곳을 지금 화성으로 위치를 옮기며 축조됐다. 우아하면서도 장엄한 면모가 돋보인다. 화성은 둘레 5744m, 면적 130ha로 당시 동원될 수 있는 모든 능력과 기술이 집약됐다.

규장각 문신 정약용(요한 세례자)이 동서양 기술서를 참고해 만든 「성화주략」(1793)을 지침서로 건축된 점에서도 눈길을 끄는 화성은 현재 팔달문 좌우 성벽을 제외한 전 성벽이 연결된 상태여서 성벽을 따라 걷는 체험이 가능하다.

화성은 이런 역사 문화적인 가치와 더불어 신앙인들에게 하느님을 위해 목숨 바친 순교자들의 고귀한 넋이 배어있는 장소다. 화성은 박해가 시작되면서 신자들의 처형지가 됐다. 성내 수원 유수부가 한강 이남과 경기도 전역, 충청도 일부 지역까지 관할했는데 서울과 경기도, 충청도 일대에서 체포된 이들이 이곳으로 압송돼 취조와 고문을 당하고 순교했다. 유수부는 도호부와 함께 조선시대 각 지역을 관할하던 중심 관청이다.

2005년 수원 순교성지 학술심포지엄에서 원재연 교수(인천대학교 인천학연구원 인문사회연구소) 발표에 따르면, 수원지역에는 1801년 이전 복음의 씨가 뿌려져 1801년 신유박해를 계기로 서울·광주·내포 등지에서 신자들이 공동체를 형성했고, 19세기 중반 병인박해 때 집중적으로 순교자를 배출했다.

현재까지 토포청, 이야, 화성행궁, 간이옥, 종로사거리, 형옥, 동남각루, 팔달문 밖 장터, 동북포루, 동암문, 남암문, 북암문, 사형 터, 화서문, 매향다리 서남쪽, 동북포루, 용주사 표교당 자리 등 순교지 증거지가 총 19군데 발견됐다. 성 전체가 순교지인 셈이다.

토포청에서는 비공개적으로 백지 사형과 교수형이 집행됐고, 동남각루에서는 참수된 천주교인의 시신이 성 밖으로 내던져졌다. 팔달문 밖 장터에서는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공개적으로 신자들의 장살형(몽둥이)이 집행됐고, 화서문에서는 교인들 시신이 마차에 실려 나갔다. 그 숫자는 이름 없이 처형당한 신자들까지 합해 2000여 명에 달한다. 백지 사형은 젖은 창호지를 얼굴에 붙여 질식사시키는 것이었다. 장살형은 장이 열릴 때 여러 사람이 지켜보는 자리에서 집행됐다.

박해 시기 수원지역 신앙선조들 삶은 매우 어려웠다. 김학렬 신부(원로사목자)의 「박해기 수원지역 신앙선조들의 삶과 죽음」에 따르면, 수원지역의 박해는 매우 혹독했고 후손들이 순교자에 대해 함구하고 족보에서마저 변조·누락시킬 정도로 순교자들 삶은 어려웠다. 그런 상황에서도 신자들은 순교를 자원했다.

교구는 지난 2000년 수원 화성에서 순교한 이들을 현양하기 위해 토포청 자리의 북수동성당(구 수원성당)을 중심으로 하는 수원성지(전담 최진혁 신부)를 선포했다.

지금까지 수원 화성에서 처형된 조선 후기 순교자는 83위 명단이 전해진다. 성지에서는 현재 2차 시복시성이 진행 중인 하느님의 종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 중 17위와 일제강점기 수원성당(현 북수동성당) 주임 신부를 역임했던 파리 외방 전교회 데지레 폴리(한국명 심응영) 신부를 비롯한 3위 등 총 20위의 하느님의 종이 선포됐다. 데지레 폴리 신부는 6·25전쟁 당시 인민군에게 체포돼 총살형으로 순교했다. 이처럼 수원성지는 조선 후기에서 근현대로 이어지며 순교의 역사가 흐르는 자리다.

순교자현양비. 12사도들과 수원 순교자들을 상징하는 12개의 길고 짧은 침목이 수원화성 치성(雉城) 구조인 ‘ㄷ’자형으로 세워진 조형물이다.

북수동성당 성전 제대 벽 왼편에 하느님의 종 20위 명단이 게시돼 있다.

북수동성당은 피로써 하느님을 증거한 순교자들의 자취 위에 수원지역 최초로 자리 잡은 성당이다. 매일 오전 11시 성당에서는 수원 순교자들의 시복시성을 위한 순례미사가 봉헌된다. 미사 30분 전에는 항상 묵주기도가 봉헌되며, 매주 목요일에는 미사 전 성체현시와 미사 후 성체강복이 거행된다. 최근 제대 벽 왼편에 게시된 20위 하느님의 종 명패가 순교자들의 시복시성을 염원하는 신자들 마음을 대변한다.

성당 건물 오른편에는 순교자현양비가 있다. 지난 2019년 9월 28일 축복된 현양비는 12사도들과 수원 순교자들을 상징하는 12개의 길고 짧은 침목이 수원화성 치성(雉城) 구조인 ‘ㄷ’자형으로 세워진 조형물이다. 시작은 그들 믿음이 짧은 침목처럼 미약했지만, 주님 수난과 죽음, 부활을 체험하며 점차 크게 자란 것을 의미한다.

마당에 설치된 방화수주(訪花隋株)길은 꽃을 쫓으며 묵주기도를 바치는 길로, 수원순교자 2000여 명을 기념하는 야생화 2000여 종이 자라고 있다. 묵주알은 화성의 봉화대 모양으로 만들어졌다. 소박하고 아담한 십자가의 길도 독특하다. 이외에도 성지에서는 돌 형구, 폴리 신부 조각상 등 오랜 시간 이어져 오는 순교 역사를 마주하고 기도할 수 있다.

최진혁 신부는 “가장 아름다운 성이라 불리는 화성은 무명 순교자들의 들꽃 같은 신앙이 배어있다”면서 “특별히 가족들이 함께 순례를 하며 문화 역사 체험과 함께 순교자들의 삶을 묵상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최 신부는 “2023년 본당 설립 100주년을 준비하고 있는데, 도심 속 성지로서 많은 이들이 순교자와 문화 체험을 위해 자주 찾을 수 있는 쉼의 자리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문의 031-246-8844 수원성지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