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말씀묵상] 믿음은 참 평화의 깃발입니다

김창선(요한 세례자) 가톨릭영성독서지도사
입력일 2021-06-15 수정일 2021-06-16 발행일 2021-06-20 제 3250호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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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2주일
제1독서(욥 38,1.8-11) 제2독서(2코린 5,14-17) 복음 (마르 4,35-41)
풍랑에 휘말린 배에서도 충실하고 굳건한 믿음 잃지 않으신 예수님
거센 바람과 거친 파도, 삶의 고통 속에도 희망 찾을 수 있는 것은
모든 것을 다스리며 자애 베풀고 기적 보이시는 주님 계시기 때문

오늘은 예수 성심 성월에 맞이한 연중 제12주일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삶의 폭풍을 다스려 마음의 평화를 주시는 주님의 사랑을 깨닫습니다. 우리와 늘 함께하시는 주님께 감사드리며 진실한 믿음과 사랑의 응답을 다짐합니다.

한 독서회에서 고통의 드라마인 구약의 욥기를 읽고 맛봅니다. 의인인 욥은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그 신비를 알려고 주님을 찾습니다. 주님께서 욥에게 폭풍 속에서 말씀하십니다(제1독서). 모태에서 태어난 아이처럼 창조한 바다와 파도를 다스리시는 주님의 지혜와 힘은 인간의 능력을 초월합니다.

바다가 삶의 무대인 사람들은 바다에 부는 광풍과 거친 파도를 자주 체험합니다. 그들이 곤경 속에서 주님께 부르짖자 역경에서 그들을 구해주시고, 원하는 항구로 이끌어주시는 주님의 자애와 기적에 감사를 드립니다.(시편 107, 응답송)

우리를 위해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메아리칩니다.(제2독서) 낡은 인간성을 지니고 살던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죽었다가 부활한 새 사람입니다. 주님 주신 생명의 약동은 우리에겐 ‘질그릇 속에 보물’입니다. 한 마리의 잃은 양도 찾으시는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자기중심이 아니라 사랑의 일꾼이 되라고 하십니다.

외젠 들라크루아 ‘갈릴래아 호수 위의 그리스도’ (1841년).

오늘의 복음 말씀(마르 4,35-41)은 공관복음이 모두 전합니다. 풍랑을 가라앉히는 기적은 사실과 상징의 양면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저녁이 되자 예수님께서 “호수 저쪽으로 건너가자” 하십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과 작은 배를 함께 탄 교회공동체의 시간입니다.

어두운 밤 심연에 거센 돌풍이 일어 배에 물이 가득 차오릅니다. 제자들은 두려워 물을 퍼내느라 소란을 피우는 카오스(chaos, 혼돈)인데도 예수님은 고물에 베개를 베고 느긋하게 주무시고 계십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깨우며 말합니다.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38절)”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고통을 방관하실까요? 공생활에 지쳐 쉬시는 주님은 그들이 말을 걸어오기를 기다리십니다. 침묵 속의 주님은 깨우기만 하면 됩니다. 시편의 저자도 침묵 속에 주무시는 주님을 도와달라고 깨웁니다.(시편 44,24)

예수님께서 깨어나시어 바람과 호수를 다스리신 후 제자들을 꾸짖으십니다.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40절)” 죽음을 두려워하면 충실한 믿음이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명예를 소중히 여기는 지중해 문화 시각에서도 용기를 내야 합니다. 다른 배들도 주님을 뒤따라오기에(36절) 겁내는 모습이 알려지면 수치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으로 자연을 다스리는 일은 인간이 할 수 없는 기적입니다. 제자들은 ‘큰 두려움’에 사로잡혀 폭풍을 잠재우신 주님께 대한 경외심을 드러냅니다.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41절)”

그 해답은 천지 창조의 개막 장면(창세 1,2)에서 얻습니다. 한 처음 땅은 아직 꼴을 갖추지 못하고 어두운 심연의 카오스입니다. 성령의 강한 바람이 이를 쓸어버립니다. 바람과 호수를 다스려 평화를 주신 주님은 한 처음에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과 같은 배에 타고 있는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내면에 일고 있는 갈등과 번민, 목마름과 시련, 재난과 죽음 같은 풍랑이나 돌풍에 시달리고 있지 않은가요? 오랜 기간 잡초 같은 근심과 허접쓰레기들이 쌓여있지는 않는지요? 내면의 폭풍을 가라앉히는 주님께 맡기고 진실한 믿음과 사랑의 길로 나아가면 됩니다.

전능하신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겪는 고통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리스도인의 고통에 대한 태도는 세상의 가치와는 다릅니다. 세상은 ‘최대의 쾌락을 최소의 고통’으로 즐기려 합니다. 우리는 사랑이신 주님께서 계시하신 진리를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가르침대로 믿고 ‘십자가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우리가 불안하고 두려울 때 침묵 속의 주님께 기도합니다. 오늘의 복음 말씀은 ‘어둠의 빛’이신 주님께 기도하는 분들에게는 낯익은 체험입니다. 이 기도는 영혼의 심연에서 이는 폭풍을 다스려 주시는 침묵의 주님과 함께하는 사랑의 선물입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갈라 2,20)”

그리스도인의 삶의 중심인 그리스도를 믿고 따름은 제자의 길입니다. 세상의 풍랑이 우릴 괴롭혀도 흔들림 없는 믿음은 고통을 인내하는 힘을 길러줍니다. 믿음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한 생명’의 길을 향한 ‘평화의 깃발’입니다.

자애로우신 주님, 삶의 폭풍이 저희를 뒤덮을 때, 믿음을 깨우쳐주소서. 저희가 기도와 성사로 일치를 이루고 사랑의 삶으로 기쁨과 평화를 누리게 하소서. 아멘.

김창선(요한 세례자) 가톨릭영성독서지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