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위원장 김주영 주교 특별대담

정리 박지순 기자
입력일 2021-06-15 수정일 2021-06-15 발행일 2021-06-20 제 3250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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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는 복음적 가치, 세대를 아우르는 공감대 형성해야”
타인 의견 경청하는 자세 갖고 남북이 서로 다름을 인정해야
북한에도 코로나19 백신 나눔 필요
관계 개선시 인도적 지원 나설 것
한미 정상회담서 대화 희망 엿보여
화해·일치 위한 미사에 동참하고 종전 평화캠페인 적극 협력해야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위원장 김주영 주교가 6월 9일 춘천교구청 교구장 집무실에서 한반도 평화에 관한 의견을 밝히고 있다. 사진 이소영 기자

가톨릭신문은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6월 25일)을 앞두고 김주영 주교와 대담을 통해 한반도 평화를 이루고 민족이 하나 되는 길을 찾았다. 김 주교는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위원장이자 지리적으로 북한과 접하고 있는 춘천교구장으로서 남북이 갈등과 대립을 극복하고 형제애를 나눌 수 있는 지혜를 들려줬다.

대담: 장병일 편집국장

일시: 2021년 6월 9일

장소: 춘천교구청 교구장 집무실

- 장병일 편집국장(이하 장 국장): 올해 2021년은 분단 76주년, 6·25전쟁 발발 71주년, 정전 68주년입니다. 2000년 6·15 남북 공동선언이 나온 지 21년이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현재의 남북관계와 한반도 상황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를 먼저 부탁드립니다.

▲ 김주영 주교(이하 김 주교):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이루기 위해서는 세대 간에 공감대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쟁을 겪은 기성세대의 사고를 요즘 젊은이들이 공감할 수 있을까 고민이 됩니다. 세대 간 공감대 형성이 민족화해에 중요한 요소라는 사실을 모두가 알았으면 합니다. 그래야 세대를 아우르고 민족이 하나 될 수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보수와 진보, 중도 등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중요한 것은 경청하는 자세입니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할 때 일치와 화합, 평화를 지향할 수 있게 됩니다. 편 가르기는 신앙적으로나 인간적으로 성숙한 모습이 아닙니다. 북한과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랫동안 갈라져 살아온 남북이 서로 다른 것은 분명합니다. 같은 형제도 서로 떨어져 살면 서먹해지는데 70년 넘게 분단된 채 살고 있는 남북 관계는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서로 다름을 인정해야 합니다.

평화는 복음적 가치이면서 예수님 삶과 연관돼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의 평화를 위해 오셨고 돌아가시고 제자들 앞에 나타나서도 평화를 빌어 주셨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합니다.

- 장 국장: 지난 3월 주교회의 춘계 정기총회에서 민화위원장으로 선출되시고 3개월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소회를 들려주십시오.

▲ 김 주교: 저는 본래 민족화해 분야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다 전 춘천교구장 고(故) 장익 주교님이 저에게 “민족화해 분야에 관심 갖고 공부할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고 권유하신 것이 하나의 계기가 된 듯합니다. 춘천교구에서 민족화해 사목을 담당하는 ‘한삶위원회’에 제가 자원해서 들어갔고, 그 후에 주교회의 민족화해주교특별위원회 총무도 맡았는데 지금은 전국위원회 중 하나인 민족화해위원회 위원장이 됐습니다.

한국교회가 주교회의 안에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와 더불어 민족화해주교특별위원회를 두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남북문제와 민족화해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뜻입니다.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위원장은 전국적인 관련 이슈가 있을 때 각 교구 담당 사제, 수도자와 협의하고 공감을 도출하는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각 교구 민족화해위원회 담당자들 의견을 듣고 도울 것은 돕겠습니다.

- 장 국장: 최근 이뤄진 한미정상회담 결과가 향후 남북관계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쉽게 해결될 문제는 아니지만, 남북과 북미가 여러모로 대화를 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 북한문제에 관해 진전이 있었던 정상회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 김 주교: 한미 정상회담에서 어떻게든 남북이 다시 만나 대화하고 오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보았습니다. 쉽게 될 문제는 아니지만 여러 모로 대화 여지를 만들고 진전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한미 정상이 공동선언문에서 비핵화와 북한 인권을 이야기하면서도 구체적 내용까지는 언급하지 않은 것은 역시 북한과 대화하자는 제스처라고 봅니다. 비핵화와 북한 인권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하는 것은 북한을 자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북한이 한미 정상회담 공동선언문에 부정적인 언급을 하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듯합니다.

- 장 국장: 향후 남북 관계가 개선되고 교회 안팎에서 교류가 이뤄진다면 교회 차원에서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할 사업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 김 주교: 인도주의적인 지원입니다. 한국교회가 이미 하고 있던 사업이지만 중단된 상황입니다. 각 교구에서 지원하기도 했고 국제카리타스인터내셔널을 통해서도 했었습니다. 춘천교구에서는 북한 결핵 퇴치 사업을 지원했는데 지금은 어렵습니다.

북한 어린이들 건강, 특히 영양실조 해결과 의료 지원을 최우선적으로 해야 합니다. 북한 어린이들 방한복 지원도 생각만 하고 중단돼 있습니다. 마음으로는 하고자 하는데 지금은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서 길만 열리면 하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장익 주교님 말씀이 기억납니다. “북한 체제를 보는 시각과 굶고 있는 동포를 보는 시각은 달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굶고 있는 동포를 체제가 다르다는 이유로 도와주지 못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전쟁은 내가 살려고 너를 죽이는 일이지만 성체성사는 너를 살리기 위해 내가 죽는 것입니다. 우리가 굶는 북한 동포를 돕는다고 북한 체제를 돕는 것은 아닙니다.

- 장 국장: 코로나19로 의료환경이 취약한 국가에 인도적 지원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한국교회가 북한을 인도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국제사회에 호소할 방법은 없는지 궁금합니다.

▲ 김 주교: 북한이 도쿄올림픽에 불참하겠다고 한 이유도 코로나19로부터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펼치는 코로나19 백신 나눔 운동을 북한을 대상으로도 했으면 합니다.

이를 위해 교황청 정의평화 담당 부서(온전한 인간 발전 촉진을 위한 부서) 및 미국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와 논의가 가능하고, 매년 만나고 있는 일본 주교단과도 협력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FABC) 주교님들과도 동북아 평화에 대해 공유할 것들이 많다고 봅니다.

교황청 외교라인에서도 세계 유일한 분단국가인 한국을 위해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고심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교황청과 중국이 국교를 맺는다면 한국교회가 중국교회를 통해 북한을 지원할 길을 찾을 수 있겠지만 교황청-중국 국교 문제는 금방 해결되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차근차근 풀어가야 합니다.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위원장 김주영 주교(오른쪽)가 6월 9일 춘천교구청 교구장 집무실에서 본지 장병일 편집국장과 한반도 평화에 대해 대담하고 있다. 사진 이소영 기자

- 장 국장: 교황님 방북 가능성은 아직도 타진되고 있습니다. 교황님 방북이 실현된다면 남북 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 정착에 큰 전기가 될 것입니다. 교황님 방북 가능성에 대한 주교님의 기대를 들려주십시오.

▲ 김 주교: 모든 일에는 때가 있습니다. 널리 알려야 할 때가 되기 전에는 잠잠히 있는 것이 지혜롭기도 합니다. 교황님 방북도 조용히 기도하면서 기다렸으면 좋겠습니다.

- 장 국장: 현재 한국교회는 밤 9시에 한반도 평화를 위한 주모경 바치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 외에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차원에서 전 신자들에게 한반도 평화와 민족화해의 의미 고취를 위한 새로운 활동으로 제안할 수 있는 활동이 있을지 궁금합니다.

▲ 김 주교: 올해 6월 25일에 전국 각 교구에서 남북 화해와 일치를 위한 미사를 봉헌하기로 했습니다. 정말 모든 신자들이 마음을 모아 기도해야겠고, 밤 9시 주모경 바치기는 ‘그날’이 올 때까지 해야 합니다.

한국교회는 시민단체와 연대해 한반도 종전 평화캠페인에 참여하고 있는데 처음 목표는 3년 동안 전 세계에서 1억 명의 서명을 받자는 것이었습니다. 코로나19 영향으로 지금까지 7만 명 정도 서명에 참여했고 그 중 천주교 신자 비율이 높다고 들었습니다. 신자들이 성당에 많이 못 나오다 보니 서명 참여에 어려움이 있지만 민족 공존과 평화를 추구하는 한반도 종전 평화 캠페인에 교회가 계속 협력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 장 국장: DMZ 접경 구역인 춘천교구, 의정부교구, 인천교구 역점 사업으로 화해·치유·평화센터 기능을 가진 기구를 강화, 신설하고 관련 전문가를 양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북한과 접해 있는 춘천교구가 인천·의정부교구와 협력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김 주교: 다행히 북한과 접해 있는 교구 소속 사제, 수도자들 중 경남대와 동국대 등에서 북한 관련 학위 공부를 하고 있는 분들이 계십니다. 춘천교구에도 있습니다. 의정부교구에는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가 있고, 인천가톨릭대학교가 세워진 이유 중 하나도 북한 선교라고 알고 있습니다. 북한에 관심 있는 춘천교구 사제와 수도자들이 인천·의정부교구에 같은 관심사를 가진 이들과 논의해 서로 모임을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새로운 기구를 만들기보다 기존 활동들을 돕고 강화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정리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