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주말 편지] 프란치스코 교황의 뒷모습 / 박경희

박경희(미카엘라) 극작가
입력일 2021-06-15 수정일 2021-06-15 발행일 2021-06-20 제 3250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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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드로 대성당의 넓은 광장은 텅 빈 채 푸르스름한 땅거미가 추적추적 내리는 비에 서서히 스며들고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관광객과 신자, 순례객으로 넘쳐나 각종 소음으로 가득 찼던 곳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비를 맞으며 홀로 천천히 걸어 들어와 비가림막을 한 조촐한 단상에 마련된 의자에 앉았다. 저 멀리 검은빛으로 우뚝 선 오벨리스크탑 뒤로 우산을 쓴 몇몇의 사람들이 서성이고 있는 것이 카메라 한쪽에 잡혔다.

2020년 3월 27일 금요일 오후 6시, 한국 시간으로 토요일 새벽 2시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주례하는 ‘인류를 위한 특별 기도와 축복’ 온라인 기도회에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이 한마음으로 모여들었다.

작년 1월 중국에서 시작된 코로나19는 전 세계를 강타했다. 특히 유럽의 피해가 커서 100만여 명이 감염되고 6만여 명이 사망했다는 뉴스가 연일 이어지던 때라, 지구촌 전체는 두려움과 공포감으로 어쩔 줄 몰라 했다. 국가 간의 여행과 통행이 금지되었고, 바티칸시국도 3월 11일부터 성베드로 대성당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그런 엄중한 때에 코로나19가 물러가기를 바라며, 비록 온라인이었지만 프란치스코 교황과 함께 전 세계의 신자들이 힘을 모아 기도하는 자리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는 마르코 복음(4장 40절)을 인용, “주님과 함께하는 배는 난파하지 않으며, 혼자서는 충분하지 않고 오로지 함께 나아가야 한다”는 말씀에 이어, 기적의 나무 십자고상의 발에 친구하고 돌아서는 교황의 뒷모습은 믿음직한 큰 어른이자 인자한 할아버지 같았다. 맞잡은 두 손에 힘을 주며 나도 모르게 “코로나야, 썩 물러가라, 제발!”하고 소리 내어 중얼거리는데,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지더니 걷잡을 수 없는 눈물이 솟구쳤다. 한동안 그칠 줄 몰랐던 그 눈물은 아마도 대유행의 시국에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연대감에서 비롯된 안도의 눈물이지 않았을까.

홀로 빗속을 천천히 걸어가던 프란치스코 교황의 뒷모습은 1년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도 아주 강렬한 기억으로 자리해, 그 장면만 떠올리면 시도 때도 없이 난감할 정도로 눈시울이 붉어지곤 한다.

2021년 5월 하순, 전 세계 200개가 넘는 나라에서 코로나19에 감염된 확진자 수는 1억6400만여 명, 사망자 수는 340만여 명이 넘어서고 있다. 작년 3월의 숫자가 오히려 현실감이 없다고 느껴질 정도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백신 접종으로 한시름 놓는가 싶었는데, 변이 바이러스가 덮친 인도는 감염자와 사망자 수가 폭증 일로에 있다. 코로나19와의 전쟁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전 인류를 또다시 불안감에 떨게 하고 있다.

예수님의 12제자 중 한 사람인 토마스 사도는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하며, 예수님 손의 못 자국에 손가락을 넣어보고 창에 찔린 옆구리에 손을 직접 넣어봐야 믿겠다고 한다. 예수님이 직접 확인시키자, 그제야 토마스는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이라고 고백한다.

하느님과 함께라면 결코 죽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있다가도 하루에도 몇 번씩 슬그머니 두려움과 의심의 줄을 잡고 혼돈에 사로잡히는 어리석은 내 모습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인용했던 예수님 말씀을 조용히 묵상해 본다.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박경희(미카엘라) 극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