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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선교사제가 쓴 한문서 「칠극」 번역한 정민 교수

민경화 기자
입력일 2021-06-08 수정일 2021-06-08 발행일 2021-06-13 제 3249호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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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토하 신부 지음/정민 옮김/700쪽/3만2000원/김영사
“칠죄종<七罪宗> 극복의 길 안내… 원문 느낌 살리려 공들여”
중국 선교 중 쓰여진 수양서 정약용·이익 등에 영향 주고 농은 선생 수계생활 계기 돼
“오늘날 무뎌진 가치기준 회복 균형 잡힌 삶의 자리 이끌어”

정민 교수는 “「칠극」 속 이야기는 우리의 무뎌진 가치기준을 회복하고 균형 잡힌 삶의 자리를 돌아볼 수 있게 안내하고 있다”고 말한다.

“천주교를 배척했던 조선에서 이익과 정약용, 박지원과 같은 지식인들은 천주교 수양서인 「칠극」을 읽고 감탄하며 널리 읽길 권했습니다. 조선 지식인들을 서학으로 이끈 칠극의 매력이 무엇이었을까요. 그리스도교가 어떻게 조선에 전파됐는지 알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칠극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다산 정약용을 연구하고 있는 정민(베르나르도) 한양대학교 국문학과 교수는 정약용의 여러 글에서 「칠극」의 흔적을 발견했다. 정약용뿐 아니라 이익, 박지원에게도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익은 유학의 기본 가르침인 극기복례와 일곱 가지 죄의 근원을 극복하고 질서 있는 상태로 돌아가야 한다는 「칠극」의 주제가 맥을 같이 한다고 여겼고, 자신의 제자들에게 「칠극」을 배울 것을 권했다고 전해진다.

“북경에서 선교했던 판토하 신부는 1614년에 한문으로 쓴 「칠극」에서 교만, 질투, 탐욕, 성냄, 식탐, 음란함, 나태함 등 인간이 범하기 쉬운 일곱 가지 죄종을 극복하는 단계를 체계적으로 정리했습니다. 천주교 수양서이지만 판토하 신부는 교리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그리스 철학자와 중세 성인들의 잠언과 일화, 중국 경전에서 예시를 끌어오는 등 거부감을 줄이는 장치를 마련해 동양의 지식인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고자 했습니다.”

중국에서 조선으로 건너온 「칠극」은 남인 학맥의 큰 스승이었던 이익의 눈에 띈다. 그리고 그의 제자였던 농은 홍유한은 이 책을 접하고 난 뒤 칠극을 실천하고자 1757년 수계생활을 시작했다.

「칠극」
“누군가에게는 서양의 논법을 이해하는 책으로,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신앙의 길로 안내하는 책으로 쓰인 것이 바로 「칠극」입니다. 서양 오랑캐의 학문이라 여겼던 서학이 어떻게 조선 사회에 받아들여졌는지 알 수 있는 단서를 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유용한 학술연구서이기도 합니다.”

한국교회 역사에서, 그리고 서학서 연구에도 중요한 연결고리가 되는 책이기에 정 교수는 번역에도 공을 들였다. 정 교수는 “독자들이 스스로 대조하며 읽을 수 있도록 번역문 밑에 원문을 제시했으며 원문의 느낌에 최대한 가깝게 번역하려고 신경썼다”며 “또한 원문은 한문을 성경으로 번역하면서 의역된 부분이 많기에,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고자 해당 성경구절을 찾아 주석을 달았다”고 설명했다.

역사 기록은 현재에서 찾지 못한 지혜를 전해주기도 한다. 400여 년 전 동양의 낯선 땅을 찾은 서양 선교사가 전하는 가르침에서도 신앙과 삶을 풍성하게 가꿀 수 있는 지혜를 발견할 수 있다.

정 교수는 “책을 번역하면서 판토하 신부님이 내게 다가와 이야기를 하는 느낌을 받았다”며 “「칠극」 속 이야기는 우리의 무뎌진 가치기준을 회복하고 균형 잡힌 삶의 자리를 돌아볼 수 있게 안내하고 있다”고 밝혔다.

민경화 기자 mk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