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

[더 쉬운 사회교리 해설-세상의 빛] 122. 가치에 대한 성찰 - 올바른 희망이란 무엇일까 9. 탐욕을 식별하고 멀리하기

이주형 신부 (서울대교구 사목국 성서못자리)
입력일 2021-06-01 수정일 2021-06-02 발행일 2021-06-06 제 3248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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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이든 집단적이든 탐욕은 창조 질서에 위배된다”
「간추린 사회교리」 481항
교회, 재화를 비판하진 않지만 물신숭배로 이어지는 것 경계
재화에 대한 과도한 집착 경고
영적 행복 선택하려는 의지 필요

미카엘: 들었어? 비트코인 어제 1000만 원 올랐대. 나 1000만 원 벌었다!

마리아: 와, 부럽다! 나도 얼른 적금 깨서 비트코인 사야지!

스텔라: 조심해! 지난달에 그거 60% 폭락해서 사람들 ‘멘붕’이었어. 잠도 못 잔대!

데레사: 그래도 해야 해! 안 그러면 어떻게 돈 벌어! 아르바이트 하는 거보다 낫지!

야고보: 맞아! 뭣 하러 힘들게 일해? 비트코인이나 보고 있으면 되지!

이 신부: 자자자, 얘들아, 일단 진정들 하렴!(본당 청년회합 중)

■ 암호화폐에 대한 높은 관심

비트코인 열풍이 뜨겁습니다. 직장인 10명 중 4명이 이에 투자한다고 하지요? 비트코인은 암호화폐의 한 종류입니다. 암호화폐는 블록체인이라는 기술력을 기반으로 기존 화폐보다 빠르고 편리하며 강력한 보안력으로 미래 가치가 우수하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또한 자산축적성과 환금성 등의 장점으로 점차 기존 화폐의 가치를 대체할 것이라는 전망 속에서, 많은 이들에게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 통계에 의하면 현재 투자자는 511만 명이며 하루 거래 규모는 30조 원을 넘습니다. 내 집과 목돈마련 그리고 노후대비 등을 이유로 많은 이들이 투자에 관심을 둡니다. 하지만 아직은 우리가 사용하는 화폐에 비해 신뢰도가 낮고, 급격한 가치 변동성과 불안정성 때문에 경제적 손실과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급격한 폭락세로 인한 투자 피해도 존재하고 중앙정부에 의한 법적 보호도 미비한 형편입니다. 다행히 신고한 거래소의 투자금에 대해 최근 금융위원회가 보호정책을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투기적 수요가 급증하면서 우려의 목소리도 높습니다.

■ 문제는 무분별한 투기심리!

암호화폐는 ‘디지털 기술집약의 산물’, ‘탈중앙화된 화폐’, ‘금에 대한 대안’ 기능이 기대되며 디지털 온라인 자산으로서 잠재력을 갖습니다. 문제는 화폐로서의 순기능이 아닌 투기와 한탕주의가 목적이 된다는 것입니다. 평균 투자 기간 10개월에, 암호화폐 투자로 수익을 본 경우는 채 절반이 되지 않습니다.(47.5%) 그중에서도 5000만 원 이상의 고수익은 2.7%에 그칩니다.

힘든 현실에서 인생 역전과 대박은 누구에게나 솔깃한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음) 투자를 하게 됩니다. 잠깐 작은 이익을 볼 수도 있지만 장밋빛 환상도 잠시뿐 세상에 공짜는 없고, ‘돈독이 세다’는 현실에 금세 봉착합니다. 손실을 겪으며 평정심을 유지할 사람은 없고 잃어버린 돈 때문에 삶이 피폐해지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막대한 빚을 지고 개인과 가정에 큰 후회와 고통을 자초합니다. 이것이 물신주의와 투기가 불러오는 망령과 고통입니다.

가톨릭교회는 재화 자체를 비판하지 않으며 그것의 선용과 나눔을 이야기하지요. 또한 정당한 노동과 보상, 노동의 고유한 인격적 가치를 강조합니다. 다만 재화에 대한 관심이 자칫 물신숭배로 이어지는 것을 경계하라고 가르칩니다. 이는 재화에 대한 집착이 불러오는 결과를 예고하고 구원하려는 경고입니다.

■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루카 6,20)

물론 열심히 노력해도 마땅한 일자리 하나 못 구하는 가난한 이웃과 어려운 청년들에게 재화의 선용 운운하는 것은 현실적 괴리감이 든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더군다나 어른인 우리가 올바른 모습을 많이 못 보여줬다는 생각도 듭니다. 주식과 부동산 역시 투기 대상이 된 지 오래입니다. 청년세대가 비트코인에 빠졌다고 우려할 것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은 돈만을 추구하며 수십 년간 걸어온 길과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합니다. 재물에 대한 지나친 욕심을 멀리하고 하느님만을 섬기라는 신앙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것인지를 말입니다. 정녕 재물만이 아닌 영적인 행복과 검소한 삶을 선택할 수 있습니까? 신앙인으로서 하늘나라의 삶을 실천할 수 있습니까? 이를 위해선 우리 사회의 모든 구성원, 특히 어른들, 더욱이 성직자들을 포함한 신앙인들의 결연한 의지가 필요해 보입니다. 신앙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지혜로운 이들을 통해 우리 사회에서 희망이 번져가길 소망합니다.

“개인적이든 집단적이든 탐욕은 창조 질서에 위배된다.”(「간추린 사회교리」 481항)

이주형 신부 (서울대교구 사목국 성서못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