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생활 속 영성 이야기] (72) 먼저 가본 이들의 기도가 필요하신 주님

이성애 (소화데레사·꾸르실료 한국 협의회 부회장),
입력일 2021-06-01 수정일 2021-06-01 발행일 2021-06-06 제 3248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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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낸 시간이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 있다면…

5월 15일은 스승의 날이었다. 우리 아이들의 생애 첫 선생님이 되어 매일매일 아이들에게 마음을 다해 사랑으로 함께하는 교직원들에게 작은 선물을 준비하고, 손 편지를 적었다. 어찌 그 고마운 마음을 작은 카드에 다 표현할까마는, 평소에 표현하지 못했던 나의 사랑이 잘 전달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한 자 한 자 써 내려갔다. 한 명 한 명의 교사들에게 손 편지를 적다 보니 모든 선생님의 노고에 이 순간만큼은 고개를 숙이며 경의를 표하게 된다.

개개인의 성격과 자라 온 환경이 다르고, 근무 연차도 다르지만 서로에게 맞추어 가며 웃음을 잃지 않았던 교사들이 있었기에, 나는 어린이집을 직장이 아닌 놀이터라고 생각하고 긴 시간을 즐겁게 지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매일 출근할 때마다 어린이집 문 앞에서 고개 숙여 성호를 긋고 화살기도를 바친다. 오늘도 어린이집의 모든 것을 주님께 의탁하며 교사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선배의 모습을 보여 줄 수 있도록 성령께서 활동해 주십사 청한 후 문을 연다. 환하게 웃으며 반기는 교사들에게 나 또한 웃음으로 오늘의 축복을 빌어 주며 업무를 시작한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일과는 늘 긴장 속에서 진행된다. 흥에 겨워 뛰어가다 넘어져 멍이 들 때도 있고, 간식과 점심을 맛있게 잘 먹고는 급하게 먹어 체할 때도 있기에 매일이 긴장의 연속이다. 이렇듯 쉽지 않은 직업임에도 불구하고 소명 의식을 가진 교사들은 아이들의 작은 변화와 성장에 뿌듯함을 느끼며, 온몸으로 감동을 표현한다. 그런 교사들을 볼 때면 내 눈에는 교사들이 나의 사랑스러운 아이들이고, 친동생이며 자식 같아 참 대견할 때가 많다. 그러기에 나의 존재가 그들에게 든든한 울타리가 되고, 힘든 일이 생겼을 때 방패막이가 되어 주어 직장 생활이 외롭지 않도록 힘을 주십사 기도드린다.

몇 주 전 근무 중이던 교사에게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왔다. 어머니께서 새벽에 뇌출혈로 쓰러져 대학 병원에 입원하여 검사 중이라는 내용이었다. 이 교사와의 인연은 나름 참 깊다. 몇 년 전 본당 해설분과장 직책을 맡아 봉사했을 당시 미사 반주 봉사자였다. 갑자기 반주에 차질이 생길 때마다 미사 시간 전에 급히 전화를 하면 몇 번이고 “예~”하고 달려와 주던, 기억에 남는 반주자였기에 메일로 들어온 이력서를 확인하고는 너무나 반가워 1순위로 채용하였다. 가끔씩 “그땐 참으로 고마웠다”고 이야기하면 “신혼이라 시간이 많았었나 봐요”하고 정작 본인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겸손하게 웃는 교사였다. 이렇게 3년을 함께하고 있는 교사였기에 친정어머니께서 쓰러지신 소식은 오랜 시간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다. 그 이후로도 여전히 웃음으로 아이들과 함께하는 교사에게 어머니의 병세에 관해 물어보면, 코로나19로 인해 면회가 되지 않고 얼마 전 중환자실에서 일반실로 옮겼을 때 잠시 뵈었는데 딸을 잘 못 알아보더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시간이 필요한 병이고 이럴 때 엄마를 위해 기도해야 하지 않겠냐며 함께 기도하겠다며 본명을 물으니 ‘아녜스’라 하였다.

뇌출혈로 인해 뇌병변 장애까지 생긴 내 남편의 상황을 잘 아는 교사이기에, 나보고 어떻게 그 시간들을 아무런 내색하지 않고 견뎌냈냐며, 그땐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놀랍기만 하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웃으며 “선생님은 엄마를 위해서 지금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하고 물었더니 “병원에 면회도 안 되니 기도밖에 없어요”라고 대답하였다. “나도 그땐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기도밖에 없었고, 기도하는 나에게 어둠이 들어오지 못하였기에 슬플 이유도 없었다”라고 대답해 주었다. 오늘 오후에도 엄마를 면회하고 온 이야기를 하면서 매일 기도로 사시던 분이 기도를 하지 않으시는 것 같다며 걱정을 한다. 걱정보다는 딸로서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해 보자고 하였다. “뇌출혈로 인해 기도가 생각나지 않을 수도 있으니 프린트하여 코팅해서 침대에 달아 놓고, 1주일에 15분씩만 가족과 면회할 수 있으니 많이 우울해 계시는 엄마에게 매주 갈 때마다 편지를 전해 보는 건 어떨까?”하고 진심을 다하여 이야기하였다. 주님께서는 이렇듯 허투루 시간을 보내지 않게 하시고, 그 길을 먼저 간 나의 기도를 필요로 하시기에 지금 이 순간 두 손을 모은다.

이성애 (소화데레사·꾸르실료 한국 협의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