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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신앙, 깊어가는 믿음] (6) 부모는 아이와 하느님 사이의 소개팅 주선자

조재연 신부(햇살사목센터 소장)
입력일 2021-06-01 수정일 2021-06-02 발행일 2021-06-06 제 3248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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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들에 오시는 주님 감지하고 마음의 문 여는 능력 키워줘야

교회에 대한 긍정적 생각 심도록 신앙 습관 갖는 가정 문화 조성 필요

“아이가 신앙심을 갖길 바라는 마음으로 유아세례를 받게 하고, 어려서부터 열심히 성당에 데리고 다녔어요. 그런데 아이에게 성당은 그저 엄마가 가라고 하니까 가야 하는 곳인 것 같아요. 아이 친구가 복사를 선다고 제대 위에 있는 모습을 보면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지거든요. 그렇게 저희 아이에게도 깊은 신앙을 갖게 해 주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오늘은 작은 이야기로 시작해 볼까 합니다. 숲속 한가운데 멋진 아름드리나무가 있었습니다. 그 큰 나무 아래 쉬어가는 많은 동물들은 입을 모아 칭찬했습니다. “하느님께서도 이 나무를 창조하신 걸 무척 자랑스러워하실 거야!”라고 말이죠. 그 나무 옆에는 새로 심은 작은 묘목도 있었습니다. “나처럼 작고 어린 나무 곁에는 아무도 다가오지 않는구나.” 묘목은 큰 나무와 자신을 비교하며 움츠러들곤 했습니다.

그때 달팽이 한 마리가 다가와 말을 걸었습니다. “잠시 네 그늘 아래에서 쉬어가도 될까?” 묘목은 기뻤지만 소심하게 대답했지요. “하지만 내 가지는 볼품이 없어서 어쩌지? 미안해….” 그러자 달팽이는 대답했습니다. “묘목아, 너는 작고 연약하지만, 너도 어엿한 나무란다.” 달팽이의 대답에 묘목은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바로 자신도 나무라는 것, 그리고 언젠가 자신도 아름드리 나무처럼 크게 자랄 것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종교학자 존 웨스터호프(John H. Westerhoff III)는 “신앙은 나무와 같다. 작은 신앙도 신앙이다”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때때로 기도의 횟수, 공동체 활동의 정도, 미사참례 여부에 따라 신앙을 가늠하고 비교하곤 합니다. 하지만 작은 묘목도 나무이듯, 작고 연약하고 부족한 신앙도 신앙입니다. 이처럼 아이들이 지닌 작은 신앙 역시 어른들의 눈에는 신앙으로 여겨지지 않을 정도로 미미해 보이지만 엄연한 신앙입니다.

신앙은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나거나 성숙해지지 않습니다. 나무와 같이 긴 시간 정성 들여 키워내는 것입니다. 먼저 하느님께서 당신 섭리를 통해 여러 방법으로 우리 마음의 땅에 신앙의 씨앗을 뿌려주십니다. 그 씨앗은 공동체와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자라나고, 은총에 응답하며 점차 아름드리 나무와 같은 큰 믿음으로 자라납니다. 이렇듯 하느님의 은총과 인간의 실천적 의지의 상호작용 속에서 신앙은 성장합니다. 이 성장은 때로 멈추기도 하고 퇴보하기도 하지만, 이러한 과정 속에서도 하느님을 놓지 않는 것을 우리는 신앙 여정이라고 합니다.

우리 자녀들의 신앙도 이와 같은 과정을 거칩니다. 이때 부모인 우리가 해야 할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자녀들의 영혼 안으로 들어오시고자 하는 하느님의 노크를 감지하고 하느님께 마음의 문을 여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자녀가 자기 안에 머무시는 하느님과 우정 어린 관계를 맺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지요. 이렇듯 부모는 자녀가 자신의 내면에서 활동하시는 하느님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하느님과 관계를 형성하도록 동반하며 자녀의 영적 성장을 도울 수 있습니다.

어린 자녀들이 지닌 신앙의 스타일을 ‘체험을 바탕으로 한 신앙’(Experienced Faith)이라고 합니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부모의 사랑 안에서 하느님께서 자신을 사랑하고 계신다는 것을 이해하게 됩니다. 또한 신앙을 살아가는 다른 사람들, 특별히 부모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부모가 일상생활과 전례 안에서 보이는 태도와 행동 양식을 모방하며 성장해 나갑니다. 유년기의 아이들에게 부모라는 존재는 사제·수도자와 동일시 되기 때문에, 부모는 자녀들에게 교회와 신앙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어 줄 수 있도록 교회를 향한 애정 어린 태도를 보여주고, 가정의 문화를 통해 자녀들이 신앙의 습관을 갖도록 도와야 합니다.

이처럼 자녀와 하느님 사이에서 조정자, 중개자의 역할을 하는 부모는 마치 소개팅 주선자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괜찮은 소개팅 주선자라면 무턱대고 만나라고 권하지 않지요. 일단 서로가 호감을 가질 수 있도록 상대에 대한 장점을 넌지시, 자주 전하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둘 사이에 약속을 잡을 때에도 좋은 분위기가 되도록 마음을 쓸 것입니다. 그리고 몇 번 더 만나며 서로의 매력을 충분히 나누게끔 돕기도 하고, 둘의 관계가 성숙해질 수 있도록 책임을 갖고 살필 것입니다. 그렇게 둘이 잘 된다면 술 석 잔은 덤이고요.

자녀를 신앙으로 이끄는 부모의 역할도 비슷합니다. 자녀가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 성당에 오고, 미사에 참례하고, 기도하는 것을 기쁘고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하느님과의 만남을 기다리는 자녀들이 마치 어린 왕자가 여우를 만나기 전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나는 세 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라고 말하던 그 설렘과 기대감으로 가득 차도록 부모는 애써야 합니다. 여기에 자녀의 성향과 상황에 맞는 슬기로운 도움이 더해진다면 자녀들의 신앙은 점차 두터운 나이테를 키워 나가며 하느님 안에 자리 잡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부모의 노력 속에서 자녀와 하느님의 사랑의 관계가 깊어질 때 부모에게는 하늘나라에 보화를 쌓는 것, 삶의 결정적 순간을 하느님 안에서 식별하는 자녀를 보게 되는 것, 부모의 임종 때 사제를 초대해 병자성사를 받게 하는 자녀를 두는 것. 이러한 은총의 술 석 잔이 기다리고 있겠지요. 부모는 이렇게 하느님을 자녀에게 소개할 떠들썩하지 않은 조용한 주선자, 과도하지 않은 침착한 중개자, 때를 구분하는 지혜로운 중개자여야 합니다.

※자녀, 손자녀들의 신앙 이어주기에 어려움을 겪는 부모, 조부모들은 이메일로 사연을 보내주시면, 지면을 통해서 답하겠습니다.

이메일 : hatsal94@hanmail.net

조재연 신부(햇살사목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