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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신축교안 120주년] 이모저모

성슬기 기자
입력일 2021-06-01 수정일 2021-06-01 발행일 2021-06-06 제 3248호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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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립과 상처의 길에서 반성하며 기도… “사랑하여 하나 되자”
당시 처형된 신자 시신 묻었던  황사평성지에 ‘화해의 탑’ 세워
4·3과 신축교안의 아픔 새겨진  신축화해길 순례하며 기도
문창우 주교 주례 위령미사도
“화해·상생 여정 함께 걸어가자”

5월 29일 ‘신축화해길’ 순례 참가자들이 제주교구장 문창우 주교(가운데)와 함께 관덕정에서 신축교안 희생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제주교구가 신축교안 120주년을 기념하고 기억하기 위한 다채로운 행사를 진행했다. 교구는 5월 29일 오후 2시 황사평성지에서 ‘화해의 탑’ 제막식을 시작으로, 황사평성지에서 제주 중앙주교좌성당으로 이어지는 ‘신축화해길’ 순례를 진행했다. 오후 7시30분에는 제주 중앙주교좌성당에서 ‘신축교안 희생자를 위한 위령미사’를 봉헌했다. 신축교안 120주년을 맞아 제주교구가 진행한 화해의 여정을 소개한다.

■ 과거를 반성하고 서로 안아주는 ‘화해의 탑’

◎… ‘화해의 탑’ 제막식은 황사평성지에서 거행됐다. 제막식에는 제주교구장 문창우 주교와 사무처장 현요안 신부, 한국교회사연구소 소장 조한건 신부, ‘신축항쟁 120주년 기념사업회’ 상임공동대표 좌남수 제주도의회 의장 등이 참석했다.

축복예식에 이어 문창우 주교와 관계자들이 감싸져 있던 하얀 천을 거두자 ‘화해의 탑’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제주교구와 신축항쟁 120주년 기념사업회가 공동으로 세운 화해의 탑에는 “신축교안 120주년을 맞아 참된 화해와 상생의 길을 걸어가자”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도예가 허민자(율리아나) 제주대 명예교수가 만든 화해의 탑은 외국인 선교사와 제주도민이 서로 손을 맞잡고 안아주는 형상을 통해 제주 사회와 천주교회가 일치를 이루고 화해하는 모습을 표현한 작품이다.

■ 제주교구 화해의 여정에 동참

◎… 문 주교는 제막식 강론에서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기억하며 제주의 미래를 향해 걸어가고자 한다”며 “두 사람이지만 한 가슴을 안고 있는 형상으로, 화합을 이루며 동반성장을 기원하는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120년 전 희생당한 천주교인과 민군 등 모든 분들을 기억하며 후손들이 화해의 여정에 함께하는 것은 큰 기쁨”이라고 덧붙였다.

제막식은 축복기도(성수 예절)와 헌화에 이어 전례무용을 봉헌하며 마무리됐다. 제막식에 참석한 교구 여성연합회 최영심(체칠리아) 회장은 “신자로서 진정한 화해를 위해 기도할 것”이라며 “제주 사회와 교회가 협력해 서로의 아픔을 보듬어주고 감싸 안아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 아픈 역사 묵상하며 걷는 평화의 발걸음

◎… 이어 참가자들은 황사평성지부터 제주 중앙주교좌성당까지 이어지는 ‘신축화해길’ 순례를 시작했다. 제주 순례길 6개 중 하나인 신축화해길은 제주 근현대사의 아픔인 4·3과 신축교안의 역사적인 상처를 담고 있는 길로 총 12.6㎞다.

문 주교를 비롯한 참가자들은 신축화해길을 걸으며 길에 담긴 의미를 묵상했다. 묵주기도를 하며 걷는 이도 있었다.

순례 시작지인 황사평성지는 1901년 신축교안의 슬픔을 기억하고 있는 가장 대표적인 곳이다. 당시 관덕정에서 처형된 천주교 신자들의 시신은 별도천에 버려졌다. 교구는 1904년 말 시신을 황사평으로 이장했으며, 이후 황사평을 교회 묘지로 사용하고 있다.

이어 참가자들은 곤을동 별도천을 지나 별도봉으로 향했다. 바다가 보이는 아름다운 해안산책로가 펼쳐져 있는 이곳은 신축교안 당시 죽은 이들의 시신을 가매장한 곳이라는 아픈 역사 또한 품고 있다.

(위)5월 29일 신축화해길 순례 참가자들이 신축교안 희생자들이 가매장 당한 별도천과 별도봉 사이를 걷고 있다. (아래)문창우 주교와 제주교구 사제단이 화해의 탑 축복예식에서 강복하고 있다.

■ 진정한 동행 위해 하느님께 보내는 기도

◎… 신축교안 당시 수많은 신자들이 목숨을 잃은 관덕정에서는 참가자들이 함께 모여 주모경을 봉헌했다. 제주목 관아가 있던 곳인 관덕정은 고즈넉한 자태로 오랜 역사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하지만 신축교안 당시 민군 주동자들이 잡아 온 신자 수백 명이 이곳 관덕정 마당에서 죽임을 당했다. 관덕정은 중앙주교좌성당에서 400m 남짓한 거리에 있다.

순례길에 참여한 박재형(프란치스코·제주 중앙주교좌본당)씨는 “순례길을 걸으며 억울하게 죽은 영혼을 위해 기도했다”며 “오늘 행사에 참여하며 신축교안에 대해 다시 돌아보고 제주 사회와 천주교회가 어떻게 화합해 나갈지 묵상했다”고 밝혔다.

■ 사랑으로 하나 됩시다!

◎… 교구는 이번 행사를 마무리하며 신축교안 희생자들을 위해 문 주교 주례로 위령미사를 봉헌했다.

문 주교는 강론에서 신축교안으로 천주교 신자 300여 명이 희생당했다는 사실을 전하며 “가해자와 피해자를 떠나 당시 아픔으로 남은 희생자들을 모두 부르며 기도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신축교안은 교회사적 문제이자 역사적 문제임을 꼬집으며 “좀 더 발전적이고 일치된 견해로 화해와 상생의 여정을 함께 걸어가자”고 호소했다. 문 주교는 “진정한 사랑의 몸짓으로 함께 손잡고 하나의 마음으로 화해해 제주도의 공동체 정신을 회복하자”며 “가해자와 피해자로 나누지 말고 선조들이 가졌던 하느님 사랑 가득한 세상의 꿈을 다시 꾸자”고 당부했다.

“서로 사랑할 때 하나가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미 잘 알고 있죠. 서로 사랑하여 하나가 될 때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신비가 하나씩 드러납니다.”

성슬기 기자 chiar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