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주말 편지] 할머니 수호천사 / 박민호

박민호(바오로) 아동문학가
입력일 2021-06-01 수정일 2021-06-01 발행일 2021-06-06 제 3248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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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시샘하던 꽃샘추위가 물러갔다. 황사로 뿌옇던 하늘도 새파래졌다. 금빛 햇살이 봄비처럼 솔솔 내리는 따뜻한 날이다. 아파트 산책길을 한 바퀴 돌고 707동에 들어선 할머니가 우편함 앞에 섰다. 얼마 전 결혼한 막내아들과 사는 1004호 우편함에 예쁜 포장지에 싸인 게 들어 있었다. 포장지에는 별모양 노란 종이가 붙어 있었다.

‘이거 드리려 내려갔는데 안 계셔서 우편함에 넣었어요-영주 엄마 드림’

영주는 할머니네 위층에서 산다. 초등학교에 들어간 영주가 유치원에 다니는 영지를 깔보면 할머니네 천장에서는 북소리가 울린다. 영주 엄마는 과일이며 과자를 싸들고 내려와 죄송하다고 하면, “애들이 크느라고 그러는 건데 뭐. 우리 애들은 더 했다우”하며 할머니가 오히려 영주 엄마를 위로한다.

할머니는 소파에 앉아 포장지를 뜯었다. “마스크네. 이런 고마울 데가 어디 있나!” 함께 들어 있는 편지를 읽었다.

‘아이들이 신나는 만큼 할머니께는 그만큼 더 폐를 끼쳤네요. 죄송한 마음을 담아 마스크를 포장했어요. 할머니, 이 마스크로 코로나19 잘 이기세요-영주 엄마 드림’

할머니는 점심을 먹으면서 TV 뉴스를 보았다.

“쯧쯧쯧. 눈에도 안 보이는 코로나 병균이 사람을 못살게 구는구먼.”

점심 먹고 설거지를 마친 할머니가 뭔가 생각하다 손뼉을 짝 쳤다. 벽장문을 열고 꺼낸 건 손재봉틀이었다.

“저를 잊었는지 알았어요.”

“잊다니, 네가 나한테 얼마나 귀한데. 버리지 않고 벽장에 모셔 두고 있잖니. 셋째 손녀 배내옷 만든 게 마지막이었지?”

“네.”

손재봉틀이 크게 대답했다.

“저를 왜 다시 꺼내셨어요?”

“좋은 일 하려고.”

할머니가 손재봉틀에 앉은 먼지를 털고 닦았다.

할머니는 젊을 때부터 이 손재봉틀과 함께했다. 남의 옷을 지어 아이들 공부시키고 시집 장가 다 보냈다. 시간이 흘러 할머니 까만 머리에 하얀 눈이 내려앉자, 이젠 편히 쉬라고 손재봉틀을 잘 닦아 벽장에 넣었다.

할머니는 보건소로 가서 마스크 재료와 규격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설명 들은 할머니가 부드러운 천과 필터를 샀다. 할머니는 닦아 놓은 손재봉틀에 며느리가 자수 미싱에 쓰는 기름을 치고 손잡이를 돌렸다. 손재봉틀은 들들 들들들 신나게 돌아갔다. 할머니는 종이로 본을 만들어 천과 필터를 가위로 쓱쓱 잘랐다. 손재봉틀은 할머니 손길을 따라 그것들을 들들들 박아서 마스크로 변신시켰다.

출판사 디자인실에서 일하는 막내아들과 며느리가 퇴근해 돌아왔다.

“엄마, 뭐하세요?”

막내아들이 물었다.

“마스크 만든다.”

“어머니, 마스크는 왜요?”

“아까 산책하고 돌아오다 보니 이게 우편함에 이게 있더구나.”

할머니가 마스크와 편지를 보여 주었다.

“어머니, 이 아줌마 고운 마음처럼 손글씨도 참 예쁘네요.”

며느리가 읽은 편지를 막내아들에게 건네며 말했다.

“점심 먹으면서 뉴스를 보니, 확진자가 몇 명이니, 사망자가 몇 명이니, 몇 시 이후에는 영업 금지니 하더구나. 코로나로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더구나. 요즘에야 마스크 구하는데 걱정이 없지만 약국 앞에 긴 줄 서서 살 때 생각이 났어. 그래서 내가 손품을 팔아 몇 개라도 만들어 나눠 주려고.”

“어머나, 우리 어머니 천사 할머니네요.”

세 사람은 서로 눈을 맞추고 환하게 웃었다.

저녁을 먹고 나서 막내아들은 귀여운 할머니 캐릭터를 만들었다. 수호천사로.

취미로 수를 놓는 며느리는 자수 미싱으로 마스크에 옮겼다. 할머니 수호천사로.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박민호(바오로) 아동문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