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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체 성혈 대축일 특집] 프란치스코 교황도 만난 성체성사의 기적

이승훈 기자
입력일 2021-06-01 수정일 2021-06-01 발행일 2021-06-06 제 3248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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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몸과 피 이루는 기적, 모든 미사에서 일어난다
성체와 성혈이 살과 피로 변해
일부 채취해 성분 분석한 결과 사람의 심장 근육 조직과 피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어”
미사 중 축성되는 빵과 포도주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실체 변화’
단순한 기억이나 상징 예식 아닌 실재적·실체적으로 계시는 것

교회는 전통적으로 미사 중 성체와 성혈이 축성되는 실체 변화를 기적이라고 여겨왔다. 사진은 2020년 8월 20일 교황청 산타 마르타의 집에서 미사를 집전하고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 CNS 자료사진

우리는 일반적으로 자연법칙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기이한 사건을 기적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에게 기적은 단순히 초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다. 기적은 비범한 사건을 통해서 하느님의 현존이 드러나는 표징이기 때문이다.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을 맞아 성체성사의 기적이 전해주는 신비로움을 만나보자.

■ 교황이 만난 성체성사의 기적

1996년 8월 26일. 당시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대교구의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료 보좌주교, 바로 지금의 프란치스코 교황은 알레한드로 페세트 신부에게 기이한 보고를 받았다. 감실에 모셔둔 성체의 형상이 빵이 아니라 살과 피로 변했다는 보고였다. 베르골료 주교는 즉시 이 보고의 중요성을 파악하고 조치했다. 덕분에 여러 성체성사의 기적들 가운데서도 가장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자료를 확보할 수 있었다.

보고의 내용은 이랬다. 페세트 신부는 8월 18일 부에노스아이레스 성모마리아성당에서 여느 때처럼 미사를 봉헌했다. 영성체가 끝날 무렵 어떤 여성이 페세트 신부에게 성당 뒤쪽에 더럽혀진 성체가 바닥에 떨어져 있다고 알려줬다. 이에 페세트 신부는 조심스럽게 성체를 물그릇에 옮겨 담아 감실에 모셨다. 이때까지만 해도 분명 빵의 형상이었던 성체가 일주일 후 감실을 열었을 때는 피로 뒤덮인 살 조각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던 것이다.

베르골료 주교는 페세트 신부에게 사진으로 찍어 둘 것을 지시하고, 성체를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후에 교구장이 된 그는 1999년 성체가 30개월 이상 상하지도 않고 변함없는 것을 확인하고, 과학적 조사를 진행했다.

베르골료 대주교는 기적의 내용을 밝히지 않고 살로 변화된 성체의 일부를 표본으로 채취해 조사를 의뢰했다. 심장병 전문의이자 법의학자인 프레드릭 주지브 박사의 주도로 진행된 조사결과 표본, 즉 성체는 심장 근육의 일부로 판명됐고, 표본을 채취할 당시에도 심장이 뛰고 있었을 것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또 백혈구가 근육 조직에 침투한 것을 확인했는데 “마치 가슴을 심하게 구타당한 것처럼 아주 강한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베르골료 대주교는 두 번째 조사를 리카르도 카스타뇬 고메즈 박사에게 의뢰했다. 여기서 표본이 인간의 피이며, 혈액형은 AB형이라는 사실 등이 밝혀졌다. 부에노스아이레스 기적의 조사결과는 1200여 년 전 이탈리아 란치아노에서 일어난 성체성사의 기적을 조사한 결과와 완전히 동일한 결과였다.

■ 성체성사의 기적, 과학으로 이어지다

란치아노의 기적은 성체성사의 기적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기적이다. 이 기적은 750년경 란치아노의 작은 성당에서 바실리오회 수도자인 신부가 미사를 집전하던 중 일어났다. 이 신부는 성체와 성혈을 축성하는 기도문을 외우면서 ‘그리스도께서 정말로 성체 안에 현존하실까’하는 의심을 했는데, 그 순간 신부의 눈앞에서 빵이 살로, 성작에 담긴 포도주가 피로 변했다. 교회는 이를 기적으로 인정하고 10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성체와 성혈을 소중하게 보관해왔다. 그러다 1970년 란치아노교구장 페란토니 주교의 요청으로 처음으로 과학적인 조사를 진행하게 됐다.

아레초 병원장이자 해부학과 조직학 교수인 오도아르도 리놀리 교수의 조사결과 살은 인간의 ‘심장 근육 조직’이었고, 액체는 인간의 피였으며 혈액형은 AB형이었다. 리놀리 교수는 “성유물에서 채취한 피는 정상적인 사람의 피와 동일”했고, “살과 피에는 보존하기 위한 화학적 방부 처리 흔적이 없다”고 밝혔다.

리놀리 교수의 조사 이후에도 1973년 세계보건기구(WHO)가 리놀리 교수의 조사결과를 검증하려 했다. 새롭게 구성된 위원회는 이 살과 피를 15개월 동안 500번에 걸쳐 분석했다. 그 결과 “란치아노의 성체는 유례없는 사례이며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라고 결론지었다.

비교적 최근에는 2008년 폴란드의 소쿠카에서도 성체성사의 기적이 일어났다. 비아위스토크대교구장 에드워드 오조로프스키 대주교는 아르헨티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표본의 출처를 밝히지 않고 서로 다른 두 전문가에게 조사를 의뢰했는데, 그 결과 표본은 살아있는 사람의 ‘심장 근육 조직’과 동일하고, “매우 흥분한 상태거나 임종 직전의 상태였을 것”이라는 같은 결론을 받을 수 있었다. 또 조사에 참여한 마리아 소바니에흐 로토프스카 교수는 “자신이 조사한 심장 조직의 세포가 누룩 없이 만든 빵의 세포 구조와 완전히 동일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란치아노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기적을 떠올리게 하는 결과다.

이탈리아 란치아노 성당 기적의 성체와 성혈.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성모마리아성당에서 일어난 성체·성혈 기적의 모습.

■ 생각보다 가까이 있는 성체성사의 기적

8세기 란치아노의 기적을 시작으로 성체와 성혈이 살과 피로 변한 기적은 100건이 넘게 조사됐다. 치유의 기적이나 다른 기적들에 비하면 확실히 적은 숫자다. 다만 기적을 눈으로 보지 못한 입장에서는 ‘이런 신비한 기적이 100건도 넘게 일어났다니’라는 감탄이 터져 나올 법도 하다. 기적이 일어난 나라로 가서 살과 피로 변한 성체와 성혈을 보고 싶다는 순례를 향한 갈망도 생긴다. 하지만 코로나19 때문에 당장 가볼 수 없다는 안타까움은 접어둬도 괜찮다. 순례 자체는 훌륭한 일이지만, 성체성사의 기적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기 때문이다.

미사 중 사제가 성체와 성혈을 축성하는 것은 단순히 그리스도의 사건을 기억하는 기념식도 아니고, 성체를 그리스도의 몸처럼 상징적으로 생각하는 예식도 아니다. 성체와 성혈은 살아있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 그 자체다. 심지어 그저 살점이나 핏물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혼과 천주성과 하나 된 몸과 피”다. 교회는 성체와 성혈에 “온전한 그리스도께서 참으로, 실재적으로, 그리고 실체적으로 담겨 계신다”고 가르친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1374항) 이를 ‘실체 변화’라고 한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미사 중 성체와 성혈이 축성되는 ‘실체 변화’를 기적이라고 여겨왔다. 그래서 미사는 ‘가장 위대한 기적’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인간의 오관으로 관찰할 수 있는 경우만 신비한 기적이 아니다. 우리는 미사마다 그 기적들만큼이나 신비로운 기적을 체험하고 있다.

“엎드려 절하나이다. 눈으로 보아 알 수 없는 하느님, 두 가지 형상 안에 분명히 계시오나 우러러 뵈올수록 전혀 알 길 없기에 제 마음은 오직 믿을 뿐이옵니다.”(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성체찬미가 중)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