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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김대건 신부님 탄생 200주년 희년 교구 지정 순례지 탐방] (7)미리내성지

이재훈 기자
입력일 2021-06-01 수정일 2021-06-01 발행일 2021-06-06 제 3248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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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건 성인 묻혀 있는 ‘별처럼 빛나는 골짜기’
성인 모친 고 우르술라 비롯한 여러 순교성인 묘소 자리한 곳

미리내 성요셉성당. 성 김대건 신부의 유해가 모셔진 곳에서 처음으로 세워진 성당이자 한국교회 개척사를 간직한 곳이다.

1846년 6월 5일 선교사들의 입국로를 확보하기 위해 백령도 등을 살피다 체포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는 3개월 뒤인 9월 16일 서울 새남터에서 순교한다. 순교 전 성인은 최후증언으로 “이제 나는 하느님을 위해서 죽습니다. 나를 위한 영원한 행복이 시작되려 합니다. 여러분도 죽은 뒤에 행복하려면 천주를 믿으십시오”라는 말을 남겼다.

성 김대건 신부 순교 후 이민식(빈첸시오, 1829~1921)은 관군의 눈을 피해 40일 만에 시신을 거뒀다. 이후 몇몇 신자들과 함께 1846년 10월 30일 시신을 지고 150리를 걸어 자신의 고향 미리내에 안장했다. 미리내가 특별히 순교사적지로 의미를 갖는 순간이었다.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 미리내성지로 420. 시궁산과 쌍령산 골짜기에 자리 잡은 미리내성지(전담 지철현 신부)는 새남터에서 순교한 성 김대건 신부가 묻힌 곳이다. ‘미리내’는 은하수의 순우리말이다. 성지에 미리내라는 명칭이 붙은 데는 신유·기해박해 때 천주교 신자들이 숨어들어 옹기를 굽고 화전을 일구며 살 때, 밤이면 그 불빛이 은하수처럼 보인 데서 유래했다.

은하수를 이루는 수많은 별처럼, 성지에는 신앙을 증거한 많은 이들이 묻혀 있다. 1846년 병오박해 당시 순교한 성 김대건 신부의 묘소 외에도 1866년 병인박해 순교자 성 이윤일(요한, 1816~1867)의 묘소 유지(遺址), 조선교구 제3대 교구장 페레올 주교의 묘소가 있다. 성 김대건 신부 모친 고 우르술라와 이민식(빈첸시오)의 묘도 성지 내 성 김대건 신부 경당 양 옆에 자리하고 있다. 이 외에도 신앙을 좇아 미리내에서 살아왔던 이름모를 순교자들의 무덤도 함께 있다.

성지는 과거와 근현대 교회를 아우르는 역사가 공존하고 있다. 미리내본당(주임 지철현 신부)만 해도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장소다. 본당은 1883년 공소로 설립된 뒤 1896년 갓등이(현 왕림)본당에서 분리돼 본당으로 승격됐다. 현재 본당은 성지 우측 미리내 성요셉성당에서 양성면 일대 신자들을 위해 미사를 봉헌하며 지역 신앙 중심지로 역할을 해오고 있다.

미리내 성요셉성당은 성 김대건 신부의 유해가 모셔진 곳에서 처음으로 세워진 성당이자 한국교회 개척사를 간직한 곳이다. 초대주임 강도영 신부(1863~1929)와 신자들이 직접 근처에서 가져온 돌을 쌓아 만들었다. 지금도 성당 옆에 남아 있는 ‘말구 우물’이 당시 신자들과 강 신부의 노고를 말해주는 듯하다.

강 신부는 또한 성 김대건 신부가 미리내에서 신앙을 전하듯 일제강점기 신자 계몽을 위해 양잠업을 가르치고, 초등교육을 위한 학교를 설립했다. 신자 자녀에게 천주교 교리와 초등교육을 했던 해성학원 교사 건물은 지금도 성당 옆에 남아있다. 그 간절함이 녹아든 성당에선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전부터 사용돼 온 성당 제대가 지금도 쓰이고 있다. 제대 밑에는 성 김대건 신부의 아랫턱뼈가 모셔져 있다.

성요셉성당에 모셔진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아랫턱뼈.

성지의 103위 시성 기념 성당에는 성 김대건 신부의 종아리뼈가 안치돼 있다. 성당 2층에는 박해 시대 천주교인에게 사용된 고문 형구와 순교 참상의 모형물을 둔 전시실이 마련돼 있어 교인들이 당시 겪었을 고난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성지는 성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을 맞아 매월 첫 주 금요일 오전 11시30분 미사 후 성 김대건 신부 성해 친구식을 거행하고 있다. 7월 5일에는 성 김대건 신부 묘소 앞 광장에서 ‘시복기념미사’를 봉헌하며, 안장일인 10월 30일에는 묘역 앞 광장에서 현양대회 겸 야외기념미사를 봉헌한다. 특히 이번 현양대회는 하느님 나라로 가는 ‘잔치’라는 의미를 더해 청소년, 청년들과 함께하는 밝은 분위기의 행사로 꾸릴 계획이다.

성지는 성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을 맞아 성인이 보여준 정신을 되새기는 작업도 함께한다. 이를 위해 입구에 있는 안내판에는 성 김대건 신부가 새남터에서 순교하기 전 남겼던 최후 증언을 비치할 계획이다. 성지 안내판에 ‘눈으로 바라보고 마음으로 기도하며 주님과 함께 순례의 길을 걸어가자’는 메시지를 적은 것도 그 일환이다.

성지 전담 지철현 신부는 “성지를 찾는 신자들이 단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성인이 어떤 분인지를 잘 알고 주님과 함께 머무르는 시간을 갖길 바란다”며 “성지에 들러 당시 신앙 선조들이 겪었던 어려운 삶을 되짚어 보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김대건 신부님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열정’으로 생명을 살리려는 삶을 살아가셨다”며 “생명을 살리려는 삶을 살아가신 성인의 활동을 본받아 우리가 창조질서 보전을 위해 희생을 실천하는 ‘녹색순교’를 실천하면 어떨까한다”고 조언했다.

미리내성지에 있는 김대건 성인 묘소.

이재훈 기자 steelheart@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