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신앙에세이] 일용할 양식 / 서난석

서난석(레지나) (제2대리구 문호리본당)
입력일 2021-05-25 수정일 2021-05-25 발행일 2021-05-30 제 3247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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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비가 제법 내리더니 울타리로 조성된 조팝나무 꽃이 활짝 피었다. 조롱조롱 매달린 하얀 꽃에 눈이 부시다. 명자나무 꽃까지 빨간 꽃망울을 다투어 가며 피고 있다. 다른 해보다 열흘 이상 봄이 앞당겨 찾아왔다.

묵주기도도 할 겸 뒷산에 올라갔더니 두릅 싹이 아기 손톱만큼 비집고 나오는 중이다. 진달래 꽃잎은 아쉽게도 반 이상이 떨어졌다. 남은 꽃잎이 간당거리는 모양새가 짠하다. 아무래도 이번 봄에는 화전을 부쳐 먹을 시기를 놓쳐버린 듯하다. 지구 온난화가 가속화되는 성싶어 마음이 편치 않다. 기온이 가파르게 상승하는 것을 우리의 몸보다 자연이 먼저 보여주고 있음이 여실하다. 하느님께서 주신 자연의 선물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가파른 산길을 오르내린다. 당신이 창조하신 선물에 숙연해진다.

머지않아 배낭을 메고 삼삼오오 사람들이 산을 찾을 것이다. 산나물을 채취하러 다니는 이들이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스산하다. 이왕 내친걸음이어서인지 그들이 한번 지나가면 산나물이 채 자라지도 않은 것까지 채집해 간다.

이번 봄에도 어김없이 사람들은 뒷산을 찾아왔다. 그들은 마음이 급한지 오르막길인데도 거침없이 발길을 서두르고 있다. 그들에게 두릅 순은 제대로 자란 것으로 채취하라는 당부를 잊지 않는다. 두릅 순이 채 자라기도 전에 따버리면 그 나무에 물이 오르다가 그냥 고사한다는 것을 덧붙여 설명하는데도 귓등으로 듣는 지 마냥 발길이 바쁘다.

그들이 배낭에 가득 짊어지고 흡족한 미소로 산을 내려오는 모습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내 몫도 남기지 않고 싹쓸이를 했을 것이라는 생각에 내 마음도 조급해진다.

그들이 다녀갔음직한 곳을 찾아갔다. 어지럽게 흩어진 발자국의 흔적에 발길을 멈추었다. 이제 갓 올라온 두릅의 여린 싹까지 모조리 훑어간 형국이다. 헛헛한 마음으로 뒤돌아서는데 작지만 제법 토실한 두릅의 싹이 눈에 들어왔다. 땅을 뚫고 막 돋아난 취나물과 어수리나물까지 눈에 들어온다. 여린 잎새가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전에 다녀간 사람들은 낮은 자리는 건성으로 스쳐 버린 채 그저 위와 앞만 보고 서둘렀던가 보다. 아니, 욕심 때문에 놓치고 가버린 것이다.

하느님께서 분명 내 몫을 챙겨주셨음이다. 저절로 감사의 기도를 드리게 된다. 조금 전에 조바심을 냈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욕심을 내지 않아도 하느님께서 일용할 양식을 챙겨주신다는 것을 헤아리게 하는 순간이다.

서난석(레지나) (제2대리구 문호리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