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말씀묵상]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

임숙희(레지나) 엔아르케성경삶연구소 소장
입력일 2021-05-25 수정일 2021-05-25 발행일 2021-05-30 제 3247호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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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
제1독서 (신명 4,32-34.39-40)
제2독서 (로마 8,14-17)
복음 (마태 28,16-20)
성령 안에서 자유인으로 사는 그리스도인의 새로운 삶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상호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결과물
항상 삼위일체 하느님 깊이 인식하며 친교하는 삶 살아야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김춘수의 ‘꽃’)

집 근처 아파트 재개발을 위해 모두 철거한 장소에 교회가 있는데, 그곳의 빨간 장미 넝쿨이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완벽한 꽃 색깔은 그 자체로 하느님을 찬미하게 합니다. 며칠 뒤에는 포크레인이 이 꽃도 잡초처럼 뽑아버리겠지요.

오월의 장미가 아무리 아름다워도 바라봐 주고 이름을 불러 주지 않으면 의미가 없듯 삼위일체라는 하느님의 거룩한 이름, 한 분이신 하느님의 세 위격이라는 그분의 정체도 우리가 그 신비를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살아내려고 노력할 때 우리 신앙의 근본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세례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마태 28,19) 베풀어지므로, 세례 때 고백하는 신앙의 진리들은 삼위일체의 세 위격(位格)을 중심으로 연결되어 있다.”(「가톨릭 교회교리서」 189항)

■ 나는 항상 너희와 함께 있는 나

복음에서 부활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그분이 명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사명을 줍니다.

이 단락에서 마음을 끄는 것은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는 말입니다. 그리스 원어의 자구적 의미는 ‘나는 너희와 함께 있는 나’(ἐγὼ μεθ’ ὑμῶν εἰμι)입니다.

‘에고 에이미’(ἐγὼ εἰμι)라는 말은 탈출기에서 모세가 하느님에게 이름을 물었을 때 그에게 계시한 이름 ‘야훼’를 그리스어로 번역한 것입니다. 야훼라는 이름에는 “나는 모든 것을 창조한 창조주다. 나는 모든 일을 발생하게 한 원인이다. 나는 항상 함께 있다”라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예수님은 아직 두려워하며 의심하고 있는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그들의 사명을 위해 가장 필요한 무기로 금과 은이 아니라 그분 이름을 알려주십니다.

복음은 제1독서와 2독서에 비추어 묵상할 수 있습니다. 제1독서에서 모세는 호렙에서 약속의 땅 문턱에 이르기까지 주님이 어떻게 자신들을 인도해왔는지를 회고하면서 그 결과로 하느님의 법을 경청하고 실천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규정과 계명을 지켜라.”(신명 4,39) 규정과 계명은 이스라엘이 하느님이 선택한 백성으로 하느님 외에 다른 하느님을 섬기지 않고 살도록 하기 위해 주신 선물입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며 규정과 계명은 본래의 목적을 상실하고 인간이 생생한 하느님 체험에서 멀어지게 하고 종으로 만들어버리는 도구가 됐습니다.

제2독서에서 바오로는 율법의 종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자유인으로 사는 그리스도인의 새로운 삶에 대해 말합니다. 이 단락은 삼위일체를 ‘구원 경륜’이라는 관점에서 이해하도록 이끌어줍니다. 곧 삼위일체는 구원 역사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입니다.

또 우리 삶의 여정에서 삼위일체의 활동이 가져다주는 여러 결과를 성찰하게 합니다. 바오로는 자기 서간 곳곳에서 성령이 그리스도인 삶의 원천임을 확신을 가지고 표현합니다. 바오로에게 성령 체험은 “그리스도를 통한 성령의 현존에 대한 지식”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데 이것은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2,20)에 요약돼 있습니다.

바오로는 성령 체험을 그리스도 체험과 연결합니다. 그리스도는 성령을 통해 체험됩니다. 세례 받은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 체험과 분리하여 성령을 체험할 수 없습니다.

성령은 사람들을 그리스도와 결합하게 하고 그리스도를 믿게 하며, 유일한 하느님의 아들로서 하느님이 아들 그리스도에게 준 권한(마태 28,18 참조)과 같은 권한에 참여할 수 있게 하면서 세례부터 종말 때까지 하느님 자녀의 신분을 완성합니다.

성령은 단독으로 활동하지 않고 항상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서 일을 합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성령을 통해 행동하고 성령에 의해 대표됩니다. 여기서 성령은 삼위의 한 위격이라기보다 인간과 하나가 되어 모든 것을 함께하는 어떤 인격적인 존재로 보여집니다.

바오로는 후대 교회에서 체계화한 삼위일체 교의처럼 삼위를 위격으로 표현하지 않았지만 그리스도인의 삶이 근본적으로 하느님 아버지, 그분의 아드님 그리스도,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 존재하고 그리스도를 통해 활동하는 하느님 영의 상호관계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을 명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성령에 따라 사는 사람은 하느님을 아버지로 더욱 깊이 알고, 그리스도의 삶을 자기 삶의 규범으로 삼습니다. 우리가 세례를 받아 하느님의 자녀가 돼 하느님 사랑으로 살고 있다면, 그리스도에게 속해 있다면, 우리 안에서 움직이는 성령의 친교를 체험한다면 우리는 홀로 신앙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또 하느님이 창조한 세상을 위해 뭔가 아름다운 일을 할 것이며 고통받는 형제자매를 위해 함께 나누고 기도할 것입니다.

바르톨레메 에스테반 무리요 ‘두 삼위일체’(1682년).

■ 사랑과 은총과 친교의 삶

“언제 어디에서 삼위일체의 하느님을 더 깊이 인식하고 체험하는가?”

그 자리는 매일 반복되는 미사라고 생각합니다. 미사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시작하고 마칩니다. 교회는 온갖 다양한 상황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하느님의 다정한 인사를 건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의 친교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 이 인사를 들을 때 가장 깊이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것을 체험합니다. 여러 관계와 일, 희망과 두려움이 혼합되고 파편화된 일상이 하느님 앞에서 하나로 정돈되고 일상은 하느님 현존의 장으로 반짝이는 것을 느낍니다.

“흠숭하올 삼위일체의 하느님, 제 자신을 완전히 잊고 마치 제 영혼이 이미 영원 안에 있듯이, 흔들림 없이 평온하게 당신 안에 머물도록 도와주소서.”(삼위일체의 엘리사벳 성녀)

성부의 계획에 따라 성령으로 성자를 잉태하신 성모님께서 우리가 삼위일체의 하느님 안에 깊이 잠겨 살아가도록 우리를 위해 전구해주기를 간청합니

다. 아멘!

임숙희(레지나) 엔아르케성경삶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