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교구 수도회 영성을 찾아서] 미리내 성모 성심 수녀회(상)

이주연 기자
입력일 2021-05-17 수정일 2021-05-18 발행일 2021-05-23 제 3246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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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성심을 통해 천주성삼께 영광”

미리내 성모 성심 수녀회 설립자 정행만 신부.

‘성모성심을 통하여 천주성삼께 영광’을 모토로 하는 미리내 성모 성심 수녀회는 고(故) 정행만(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에 의해 1976년 설립된 수녀회다.

회원들은 ‘삼위일체 하느님께 지극한 사랑을 드러내신 성모님의 성심을 본받아 갈림 없는 마음(1코린 7,32~35)으로 하느님을 만유 위에 사랑하고, 그 사랑에서 길어낸 사도적 열성으로 인류 구원을 위한 일에 영적 모성으로 헌신함으로써 하느님께 영광을 드린다’(회헌 3조)를 영성으로 삼는다.

수녀회의 역사는 경북 상주, 경기도 미리내, 충남 수리치골에서의 활동 등 크게 3기에 걸쳐 살펴볼 수 있다.

1917년 경북 신동에서 출생한 정행만 신부는 1929년 성 유스티노 신학교에 입학해 사제성소의 길을 준비한다. 1939년 삭발례 의식을 한 후 그해 여름방학 북해도 트라피스트 남녀 수도원을 방문하고 침묵과 고행 생활에 대한 선망을 가졌다. 이때 일본 센다이교구 소신학교에서 교장 신부로부터 천주성삼 신심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큰 감명을 받았다. 1942년 사제품을 받은 정 신부는 서품 당시 성모 마리아께 자신을 봉헌하며 특별한 성모신심을 지니게 된다. 또 재속 프란치스코 3회에 입회하는 등 완덕의 삶을 사는데 지속해서 관심을 가졌다.

그는 1950년 2월 당시 대구대목구장 고(故) 최덕홍 주교 허락을 받아 경상북도 상주에서 공동체 생활을 시작하고 수도회를 준비했다. 그러나 6·25전쟁 발발로 지연되고 1951년 상주에서 지원자를 받아 다시 설립 준비를 재개했으나 심장병으로 중단됐다.

1962년 대구 동촌본당 주임으로 발령받은 정 신부는 본당 관할 내 불로동 과수원에서 수도회 설립을 다시 시작했고, 폐결핵으로 상주에서 휴양하는 동안 지원자들이 와서 ‘정 신부 식구’라는 이름으로 공동체 생활을 했다. 그리고 1976년 당시 수원교구장 고(故) 김남수 주교 책임 아래 상주에서 첫 입회식을 거행했다. 여기까지를 1기라고 볼 수 있다.

2기는 1976년 수녀회 설립과 더불어 미리내에서 펼쳐진다. 수련소를 상주에서 미리내로 이전한 수녀회는 1977년 첫 서원자를 배출하고 그 이듬해 수원교구 본당에 회원을 파견, 본당 사도직을 시작했다. 1983년 교황청으로부터 회헌 인준을 받고 1984년에는 김남수 주교에 의해 ‘수원교구 소속 수녀회’ 설립 교령을 받았다. 수녀회는 1984년 첫 종신 서원자를 배출하고 부산, 이탈리아 로마, 미국 LA에 분원을 설립한다.

1997년 5월 충남 수리치골로 본원을 임시 이전하며 수리치골 시대를 시작한 수도회는 2001년 제1차 정기총회 개최, 대구 천주성삼병원 봉헌식과 개원, 대전교구 소속 수녀회 이적, 설립 30주년, 총원·성당 봉헌식, 미얀마·베트남 진출 등 굵직한 기록을 남긴다. 2018년에는 회헌 개정 승인 교령을 받았다.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