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세상살이 신앙살이] (584) 하느님은 우리의 이야기를 다 듣고 계신다

강석진 신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21-05-11 수정일 2021-05-11 발행일 2021-05-16 제 3245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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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갑장터순교성지의 ‘외양간 경당’ 공사가 하느님의 축복과 은총 속에서 진행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공식’을 준비하던 때였습니다. 행사 준비를 하면서, 기공식 주례에 관해 고창본당 주임 신부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 결과, 축성식에는 주교님을 모시기로 했고, 기공식에는 전주교구 지구 사제들의 협조와 관심을 모으는 뜻에서 지구장 신부님을 모시기로 했습니다. 이에 지구장 신부님께 연락을 드렸더니 흔쾌히 응해 주셔서, 마침내 기공식 현수막과 문구도 준비했습니다.

기공식을 하기 열흘 전, 현수막 크기를 재는 일이 남았습니다. 그래서 현수막 크기를 재러 성지로 가는 날, 수도원에서 점심식사를 하는 도중 동료 신부님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조 신부님, 외양간 경당 기공식을 코로나19 때문에 야외 잔디에서 조촐하게 준비할 예정이잖아. 그래서 기공식에 참석하신 손님들을 위해서 떡이나 과일, 따스한 음료수를 준비하면 좋겠는데.”

“그러게요. 어느 정도 준비는 하면 좋겠는데.”

“그런데 우리가 가진 돈이라고는 건축 후원금 밖에 없잖아. 건축비는 오로지 건축이라는 목적 기금으로만 사용해야 할 돈이고! 이렇게 소소하게 드는 비용은 어떻게 처리할까?”

“원장 신부님께서 결정하시면 집행은 제가 알아서 할게요. 뭐, 수도원 계정에서 지출할 수도 있고….”

“암튼 건축비는 외양간 경당 건축을 위해 사용될 비용이니까, 건축을 위해서가 아니면 손을 대지 말자. 음, 그렇다면 어디서 소소한 비용을 마련할 수 있을까?”

“큰 비용이 드는 것이 아니기에 조금은 천천히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그래, 맞다. 앞으로 일주일 정도 남았으니 그 안에 어떤 묘책이 떠오르겠지.”

점심식사 후, 성지에 가서 외양간 경당 기공식의 현수막 크기를 쟀습니다. 그렇게 현수막 치수를 재고 있는데, 성지 입구에서부터 자매님 두 분이 우리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순례를 오신 모양입니다. 그중 한 자매님이 묻기를,

“혹시 신부님이셔요?”

이 말을 듣자, 나는 옆에 있는 조 신부님을 가리키며,

“이분이 신부님이십니다. 순례 오셨다면, 우리 신부님에게 기도 안수를 받으시죠. 우리 신부님이 안수를 정성껏 해 주실 겁니다.”

이 말이 끝나자마자 나는 빠른 걸음으로 와 버렸고, 뒤에서 천천히 따라오던 조 신부님은 영문도 모른 채, 두 분 자매님에게 정성껏 안수를 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안수가 끝나자 자매님 한 분이 조 신부님에게는 말 못하고 나를 불러 세웠습니다.

“저기…. 아저씨, 잠깐만요!”

나는 웃으며 그 자매님에게 다가갔더니, 그분이 내게 말했습니다.

“저기, 이 봉투 좀 받으세요. 이것은 우리 남편에게 오늘 아침에 성지순례를 갔다 온다고 했더니 친구랑 맛있는 식사를 하라고 준 거예요. 그냥, 여기에 봉헌하고 싶어서요.”

알고 보니 성지순례 오신 두 분은 서울에서 왔고, 서로 친구였습니다. 나는 감사한 마음에 인사를 드린 후, 받은 돈 봉투의 금액을 확인하는데 – 나의 등골이 – 오싹했습니다. 그 봉투 안에는 정확히 기공식을 위해 우리가 예산안으로 잡았던 그 금액만큼의 돈이 들어 있었습니다. 순간, 하느님께선 점심 때 나와 조 신부님이 나눈 대화를 듣고 있었다는 것을 묵상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뿐 아니라, 당신을 믿는 모든 이들의 이야기를, – 크게 말하든, 속삭이든, 심지어 마음속으로 말하든 - 우리의 이야기를 다 듣고 계심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이런 일이!

강석진 신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