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민족·화해·일치] 낟알 한 톨에도 정성 쏟는 마음으로 / 박천조

박천조(그레고리오)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연구위원
입력일 2021-05-11 수정일 2021-05-11 발행일 2021-05-16 제 3245호 22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지난 4월 27일은 남북 정상이 만나 4·27 판문점선언을 발표한 지 3주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과거 6·15 공동선언이나 10·4 남북정상선언에 비해 그 감격이 컸던 이유는 남북 정상이 자유로이 만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는 점에 있을 것입니다. 정상 간 합의만 제대로 지켜진다면 한반도에서의 지긋지긋한 분단상황이 해소되고 더 큰 미래를 꿈꿀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불과 3년이 지났을 뿐인데 지금 모습은 을씨년스러울 뿐입니다. 속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러다가 문득 구약성경에서 여러 모습들이 생각났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모세의 인도로 이집트를 탈출했던 이스라엘 민족은 가나안 땅을 지척에 두고도 40년간 광야에서 헤매이게 됩니다. 광야에서의 40년에 대해 어떤 분들은 이스라엘 민족이 비로소 하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할 수 있었다고 긍정적인 의미부여를 해 주십니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준비가 돼 있지 못했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성경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시어, 주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한 그 세대가 모두 없어질 때까지, 광야에서 사십 년 동안 떠돌아다니게 하셨다.”(민수 32,13) 이러한 성경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40년간이나 광야에서 헤매인 이유는 결국 “너희 민족이 준비가 안 돼 있어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비춰 보면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70여 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전쟁의 종식(종전)을 선언하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도 하느님이 보시기에 “너희 민족이 준비가 안 돼 있어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모세의 뒤를 이은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민족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됩니다.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우리 민족이 통일이라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를 갈구했지만 내 역할은 모세처럼 들어갈 준비를 하는 데 그치고 정작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은 여호수아와 같은 다른 인물들이 되겠구나. 마치 “새시대의 첫차가 되고 싶었으나 구시대의 막차가 돼 버렸다”던 어느 정치인의 마음처럼 서운함과 아쉬움이 가득했습니다.

그러다 ‘입립개신고’(粒粒皆辛苦)라는 단어가 생각났습니다. ‘낟알 한 톨에도 농부의 땀이 배어 있다’는 의미의 문장입니다. 그 뜻이 너무 좋았습니다. 낟알 한 톨을 키우는 데도 농부의 정성과 땀이 배어 있는데 상처가 가득한 형제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일은 오죽할까라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서운함과 아쉬움이 있더라도 ‘우리 민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준비를 해야겠다’라는 다짐을 해 보았습니다. 한땀 한땀 최선을 다해야겠습니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박천조(그레고리오)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