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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석 추기경 선종]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모든 이에게 모든 것’으로

최용택 기자
입력일 2021-05-03 수정일 2021-05-04 발행일 2021-05-09 제 3244호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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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정진석 추기경은 1970년 청주교구장으로 주교품을 받으며 ‘모든 이에게 모든 것’(Omnibus Omnia)을 사목표어로 정했다. 여기에는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을 주겠다’는 정 추기경의 의지가 담겨 있었다. 그리고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어 놓으며 자신의 사목표어대로 살았다.

4월 27일 밤 10시15분 선종한 정 추기경은 곧바로 서울성모병원 수술대에 올랐다. 각막을 기증하기 위해 안구 적출 수술을 한 것이다. 생전에 가정과 생명운동을 이끌었던 정 추기경은 지난 2006년 열린 서울대교구 성체대회에서 뇌사 시 장기기증과 사후 각막기증을 약속했다. 2018년 9월 27일에는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해 연명치료를 하지 않을 것과 2006년에 약속한 사후 각막기증을 다시 한 번 요청했다.

정 추기경은 자신의 각막이 다른 사람에게 전달돼 새로운 빛을 주길 희망했다. 하지만 고령의 나이 때문에 정 추기경의 각막은 다른 이에게 이식되지 않고 연구용으로 사용된다.

아울러 정 추기경은 자신이 가진 모든 재산을 아낌없이 내어 놓았다. 정 추기경은 지난 2월 25일 꽃동네(2000만 원), 명동밥집(1000만 원), 서울대교구 성소국(동성고 예비신학생반, 2000만 원), 서울대교구 청소년국 아동신앙교육(1000만 원), 정진석 추기경 선교장학회(가칭, 5000만원) 등 5곳을 본인이 직접 지정해 기부하면서 통장 모든 잔액을 소진했다. 교구에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자신의 장례비를 따로 남기려했지만, 교구에서 극구 말렸다는 후문이다.

정 추기경은 이후 통장에 모인 잔고 800여만 원은 자신이 입원 중 수고해 준 의료진과 봉사자들에게 선물해 줄 것을 원했다. 서울대교구에 따르면, 공식 장례 일정을 마친 5월 1일 이 금액은 장례 기간 중 수고한 서울대교구 사제와 직원, 의료진, 봉사자, 그리고 정 추기경이 2005년 직접 설립한 교구 생명위원회(위원장 염수정 추기경) 등에 감사의 성금으로 전달됐다.

자신의 몸과 재산뿐만이 아니었다. 정 추기경은 왕성한 집필 활동으로 교회에 관한 자신의 지식을 아낌없이 신자들과 나눴다. 1955년 번역서 「성녀 마리아 고레티」를 시작으로 그가 사제생활 60년 동안 남긴 저서와 역서는 모두 65권에 이른다. 2012년 은퇴 이후에도 서울 혜화동 가톨릭대 성신교정(신학대학) 주교관에서 머물며 저술활동에 매진, 매년 한 권씩 책을 냈다. 부제 시절 고(故) 박도식 신부와 “1년에 책 한 권씩 내자”고 했던 철없이 무모했던 약속을 끝까지 지킨 것이다.

최용택 기자 johncho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