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생활 속 영성 이야기] (68) 성모님과 함께한 3대 모녀 나들이

이성애(소화데레사·꾸르실료 한국 협의회 부회장)
입력일 2021-05-03 수정일 2021-05-04 발행일 2021-05-09 제 3244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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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우리 할머니는 성모님께서 사랑하시는 복덩이셔”

서울에서 직장에 다니는 딸아이에게서 3월 중순경 연락이 왔다. 외할머니랑 9살 된 반려견 사랑이가 보고 싶어 4월 셋째 주 주말을 이용하여 부산에 다녀오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동안 코로나19로 못 내려왔기에 거의 10개월 만에 얼굴을 보는 것 같아 기뻤다.

친정 엄마에게 손녀가 온다는 이야기를 하는 순간, 엄마의 눈빛이 반짝반짝 빛난다. 손녀가 이탈리아로 유학을 하러 가기 전 2년을 함께 살아서인지 유독 엄마와 정이 깊다.

아침마다 묵주기도를 마치시고 “항아가 언제 온다고?” 확인하며 기다리시는 모습이 안쓰러워 “엄마, 밤 9시 도착이라 공항으로 마중하러 가야 하는데 같이 갈래요? 그리고 주일에 바다랑 꽃구경도 갈까?”라는 이야기에 침대에 누워 계시던 엄마는 벌떡 일어나셔서 달력부터 쳐다보신다.

“사랑이랑 같이 가면 되겠다. 차 안에만 있을 거니깐, 코로나도 괜찮다!” 늘 힘이 없으시고 무표정이던 88세의 엄마가 이 순간만큼은 신이 난 아이마냥 목소리가 쩌렁쩌렁하다. 드디어 공항으로 마중하러 가는 날. 친정 엄마는 기분이 들떠 저녁도 남기시고, 당신이 입고 갈 옷도 직접 꺼내 놓고 퇴근하는 나를 웃으며 기다리고 계셨다. 오늘은 경증 치매가 전혀 없는 예전의 건강하시던 모습 그대로이다. 시원한 밤공기를 마시며 일찍 도착한 김해 공항 주차장에서, 친정 엄마는 손녀의 어렸을 적 이야기를 재미나게 들려주신다.

바쁜 직장 생활로 인해 친정 엄마에게 어린 딸을 맡기는 날이 많아 늘 죄송했는데, 지금은 손녀를 기억할 수 있는 추억의 시간이 되었다. 다음날, 혼자서 친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가 계시는 부산교구 하늘공원에 찾아가 연도를 바치고 온 딸은 친정 엄마에게 “할머니! 할아버지 아주 잘 계셔요”하고 사진을 보여 준다. 주일에는 3대 모녀가 나들이를 가기 위해 휠체어를 싣고, 엄마 배고프실 때 드실 과일을 챙기고, 바닷가 바람에 추우실까 담요랑 모자를 챙기면서 딸과 나는 친정 엄마를 아기처럼 조심조심 대하고 있었다. 손녀가 운전하는 차 옆 좌석에 앉은 친정 엄마는 연신 세상 구경하느라 바쁘셨다. 딸은 흰 뭉게구름이 떠 있는 파란 하늘과 쪽빛 바다 색깔을 쫑알쫑알 할머니에게 이야기해 드린다. “할머니 나오니 좋아? 우리 할머니 오랜만에 바다 본다고 이렇게 날씨가 좋네? 역시 우리 할머니는 성모님께서 사랑하시는 복덩이셔.” 손녀의 칭찬에 친정 엄마는 어깨까지 들썩이며 소리 내어 웃으신다. 친정 엄마는 우리 4남매에게 있어 든든한 지원군이셨고, 사려 깊은 어른이셨다.

결혼을 하고도 엄마 그늘 안에서 경제적 도움도 받으며 지냈었는데, 언젠가부터 자식들이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걱정이 되는 엄마가 되셨다. 그래서일까? 3대 모녀가 함께하는 이 순간은 나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본인이 상상하고 있는 미래의 계획들을 에너지 가득한 모습으로 이야기하는 딸을 통해서 다양한 활동으로 바쁘게 지냈던 나의 과거를 떠올리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매일 묵주기도로 성모님께 의탁하며 주님께서 부르실 날을 기쁘게 기다리는 엄마 삶을 통해 나의 미래 또한 상상하게 된다. 전망대까지 힘들게 휠체어를 밀고 가서는 세차게 불어오는 바닷바람에 감기라도 들새라 담요를 빈틈없이 꽁꽁 여며 드리는 손녀를 친정 엄마는 한없이 바라보셨다.

오랜만의 긴 나들이로 하품을 연거푸 하시면서도 집으로 가기 아쉬운지 “이제 집에 가냐?”고 물어보시는 할머니에게 딸은 대답한다. “할머니, 내일 출근하려면 저녁 비행기로 올라가야 해. 식사 잘하시고 안 넘어지게 조심, 또 조심하면서 기도 열심히 하고 계시면 6월에 올게요. 그때도 사랑이랑 마중 나와야 해~! 그리고 휠체어로 산책하기 좋은 경주 갈까? 아마 그때쯤이면 수국이 아주 예쁘게 피어 있을 거야.” 손녀의 갑작스런 약속에 친정 엄마는 또다시 눈을 반짝이며 자세를 고쳐 앉고 큰 목소리로 대답한다. “경주는 옛날에 많이 가 봐서 그때는 내가 안내해 줄게요~~~.” 할머니의 센스 있는 대답에 3대 모녀가 차 안이 떠나갈 정도로 웃었다. 착하고 선하게 살아오신 친정 엄마에게 성모님께서는 이렇듯 선물을 주시고, 그 선물에 친정 엄마는 뛸 듯이 기뻐하며 행복해하신다.

이성애(소화데레사·꾸르실료 한국 협의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