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마당

[독자마당] 부끄러움에 눈물을 쏟아내다

황희곤(요한세례자·대구 성김대건본당)
입력일 2021-05-03 수정일 2021-05-04 발행일 2021-05-09 제 3244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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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가 끝났으니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돌이켜 보면 단 한 번도 진정으로 감사한 적이 없었다. 그냥 미사가 끝나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어서, 주일미사 참례 숙제를 끝내서 감사할 뿐이었다. 주님 얼굴 한번 더 보고 싶다고, 주님과 조금이라도 더 있고 싶다고 미사 끝난 후 남아 있던 경험은 도대체 지어내려고 해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평생을 의무감으로 해치우는 주일미사에 행여 성당 건립 기금 모금 내용으로 강론이 길어지기라도 하면 주님 만나러 오는 기쁨을 느껴야 한다는 이론적 신앙조차 흔들린다. 그러고도 나는 물건처럼 유아세례 받은 구교 신자임을 필요할 때만 사용한다.

십여 년 전 본당에서 성인 예비신자 교리반을 담당한 적이 있었다. 아무리 교리 설명을 해도 의문만 가질뿐 도무지 받아들이려 하질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예비신자들의 직업이 한의사, 외과의사, 내과의사, 약사, 전직 영관급 군인 등 하나같이 과학적 논거에 기초한 사고방식을 가진, 인문학적 감동의 소양을 기대하기 어려운 직업군들이 대부분이었다. 교리반을 시작한 지 몇 주 지난 어느날, 신앙생활을 통하여 그토록 강조하는 초월적 기쁨과 감동을 얼마나 지속적으로 느끼며 살고 있느냐는 그들의 따져 묻는 듯한 질문에 순간적으로 충격을 받아 말문이 막힌 채 난감해했던 기억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함과 부끄러움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그때를 기준으로 몇 년 전 개인적인 어려움 극복에 도움 달라고 밤낮으로 매달렸던 주님께 이번에는 예비신자들을 제대로 감동시킬 수 있는 교리교사의 지혜를 청하였다. 그러면서 주님 발치에 앉아 가만히 생각해보니 도대체 나라는 인간은 힘든 일이 생겨야 겨우 주님을 찾아 떼를 쓰며 칭얼대는 어린아이와 같음을 느꼈다.

형편이 너무 어려워 동 주민복지센터 주선으로 대학생들의 학업 도움을 받아 지역 국립대학교 학과 수석으로 입학한 어린 소녀가 “가난은 나의 꿈을 좌절시킬 만큼 대단한 것은 아니었어요”라고 수줍게 웃으며 도움을 준 사람들에게 감사해 하는 모습…. “한 손으로 성호만 그을 수 있으면 소원 없겠다”던 두 팔 잃은 장애인…. “얻어 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주님의 은총입니다”라는 꽃동네 이야기…. “마스크를 쓴 채라도 사랑하는 사람들과 눈을 마주볼 수 있음에 감사하다”는 어느 예술 서예가의 작은 전시회 팸플릿의 인사말, 흠숭은 고사하고라도 감사와 용서기도는 빼놓은 채 언제나, 그것도 필요할 때만 드리는 최하위 차원의 청원기도만 하는 나에게는 이들의 모습이 감동적일 수밖에 없었다.

굶주린 오천 명 먹이시려 기적의 재료를 찾으시는 주님께, 가지고 있던 물고기와 빵을 옷 속 깊숙이 숨기는 내 모습을 보고, 현장에서 잡혀온 죄인에게 죄 없는 자부터 먼저 돌로 치라는 주님의 말씀에 가장 큰 돌 제일 먼저 내려놓고 슬그머니 돌아서는 내 뒷모습을 보고, ‘해마다 죽지 못한 부끄러움에 고개를 못드는 부활절 아침’ 으로 고백하는 이해인 수녀님의 시 한 구절에 입술 깨물며 억지로 참았던 눈물을 결국 쏟아내고 말았다.

황희곤(요한세례자·대구 성김대건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