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민족·화해·일치] 평화를 위협하는 사람들에 대한 제재 / 강주석 신부

강주석 신부(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총무)
입력일 2021-05-03 수정일 2021-05-04 발행일 2021-05-09 제 3244호 22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미국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1950년 6월 28일부터 북한에 ‘수출통제법’(Export Control Act)을 발동했다. 중국의 참전으로 전세가 불리해지자 트루먼 대통령은 12월 16일에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했는데, 다음날인 12월 17일에는 ‘적성국 교역법’(Trading with the Enemy Act)에 의거 해외자산통제규정(FACR)을 공포한다. 이에 따라 미국은 북한과 중국에 대한 교역과 투자, 금융거래, 운송을 포함한 포괄적 경제제재를 단행했다. 1971년 4월 ‘핑퐁외교’를 거치면서 중국에 대한 경제제재는 해제됐지만, 북한에 대한 제재는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전쟁의 야만성을 강력히 단죄하는 가톨릭교회는 비군사적인 수단인 경제제재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1990년대 이라크에 대한 미국과 국제사회의 경제제재에도 우려를 나타냈는데, 실제로 유엔아동기금(UNICEF)의 추정에 따르면, 1991년부터 1998년까지 35만 명에서 50만 명에 이르는 5세 이하 이라크 어린이들이 영양실조와 설사병 등으로 사망했다. 평화를 해치는 독재 정권을 약화시킨다는 제재의 명분이 있었지만, 가장 큰 피해자는 약한 어린이들이었던 것이다.

중동의 ‘질서’를 위협하는 사담 후세인 정권을 교정하고, 이라크의 인권 상황은 분명 개선시켜야 했지만, 제재로 인해 국민 전체, 특히 취약한 구성원들이 고통받는 것은 막아야 한다는 것이 교회 입장이었다. 가톨릭 사회교리는 “경제적 제재는 지극히 신중하게 사용되어야 하는 수단이며, 엄격한 합법적 윤리적 기준을 따라야 한다. 경제 봉쇄는 기간이 한정적이어야 하며, 그에 따른 효과가 뚜렷하지 않을 때는 정당화될 수 없다”(「간추린 사회교리」 507항)고 가르친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정착 문제는 국제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하는 난제다. 남과 북의 문제만이 아니라, 강대국의 이해관계까지 얽혀 있는 복잡하고 다층적인 갈등이기 때문이다. 경제제재의 목적이 단순한 ‘화풀이’가 아니라 북한을 ‘교정’하기 위한 것이라면, 그 변화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북한 사회의 ‘가장 취약한 구성원’들의 입장에서 역지사지(易地思之)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 민족을 괴롭히는 분열의 악이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면, 이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다하는 성찰이 필요하다. 70년을 넘게 이어온 적대관계에서 북한을 변화시키는 문제도 ‘쉬운 답’으로 풀어내기 어렵다는 사실을 인정하자. 정의를 위한다는 제재가 불의를 강화시키지 않았는지 반추하면서, 그리스도의 평화를 믿는 교회가 약한 사람들의 평화를 위해 진심으로 기도했으면 좋겠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강주석 신부(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총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