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존엄성을 수호하는 사람들] (1) 여성 – 로뎀의집과 여성인권상담소 소냐의집

이소영 기자
입력일 2021-04-27 수정일 2021-04-27 발행일 2021-05-02 제 3242호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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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뎀의집 조정혜 관장(가운데)과 천지현 사무국장(조 관장 오른쪽), 문희진 상담원(맨 오른쪽) 등이 10대 소녀들과 4월 22일 경남 창원 로뎀의집에서 함께 식사하고 있다.

올해 5월 2일은 열한 번째 맞는 생명 주일이다.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의 가치를 수호하기 위한 날로, 본지는 지난해 생명 주일을 맞아 ‘존엄성을 위협받는 사람들’ 기획을 연재했다.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위협받고 있는 여성과 아동·노인이 처한 현실과 원인을 살펴보고 해법을 모색한 기획이었다.

이번 생명 주일에는 그 연장선상에서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위협받고 있는 여성·아동·노인의 존엄성 수호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교회 기관들을 찾아가 본다. 각 기관이 존엄성 수호를 위해 어떤 활동을 펼치고 있는지, 그 활동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지, 존엄성을 위협받지 않는 사회가 되려면 어떠한 노력들이 필요한지 알아본다.

■ 고통받던 10대 여성들의 가정 공동체형 전문 사회복지기관 ‘로뎀의집’

상품 취급받던 소녀들 “더는 그럴 일 없어 행복”

가정 폭력 등으로 가출한 뒤 디지털 성 착취 위협받기도

건강하게 자립할 수 있도록 의식주와 교육·상담 등 제공

4월 22일 낮 12시, 경남 창원 마산회원구에 있는 로뎀의집에서는 식사 준비가 한창이었다. 지하 1층부터 지상 3층까지 총 4층짜리 건물로 된 로뎀의집 1층에서는 달그락거리는 식기 소리와 함께 10대 소녀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음식을 하는 조리원은 인원에 맞춰 음식을 식기에 담았고, 2층 생활공간에 있다 내려온 소녀들은 자리마다 수저를 놓았다. 로뎀의집 조정혜(로사) 관장을 포함해 직원들도 한 명씩 나와 준비를 거들었고, 준비가 끝나자 모두는 둘러앉아 식사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여느 가정에서는 같이 모여 밥 한 끼 하기도 어려운 바쁜 사회이지만, 로뎀의집에서 만큼은 매일 볼 수 있는 풍경이다.

10대 소녀들의 보금자리가 돼 주고 있는 ‘로뎀의집’은 2003년 2월 12일 마산교구가 설립, 운영해 오고 있다. 가정 공동체형 전문 사회복지기관으로, 성 착취 등으로 고통받던 10대 소녀들이 건강하게 자라 자립할 수 있도록 의식주는 물론 상담, 치료, 진학·취업 교육 등을 제공하고 있다. 성경 속 엘리야가 ‘로뎀’이라고 하는 싸리나무 밑에 지쳐 쓰러져 있을 때 하느님이 떡과 물을 먹게 하고 기운을 회복시켜 길을 가게 한 것처럼, 유해 환경에 노출됐던 소녀들을 보호·양육·교육해 이들이 정체성을 확립하고 자신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돕고 있다. 현재 로뎀의집에서는 가정 폭력이나 경제적 방임 등으로 가출해 디지털 성 착취 위협을 받았던 소녀 등 10대 소녀 13명이 살고 있다.

지난해 7월 로뎀의집에 들어온 19살 박양은 “이제 두려움에 떨고 있을 필요가 없잖아요”라며 “100% 만족해요”라고 말했다. 부모님이 이혼한 후 3~4살 때부터 보육시설에서 생활해 온 박양은 자라는 동안 가정과 사회에서 인간 그중에서도 여성으로서 존엄성을 위협받은 순간들을 설명하며 “더는 그럴 일이 없어 행복하다”고 밝혔다. 보육시설 생활을 하다 이따금 찾아간 집에서는 “엄마 뱃속에서 왜 기어 나왔느냐”는 말을 들으며 사랑과 인정을 받지 못했고, 고1 때 학교를 자퇴한 뒤로는 보육시설에서 쫓겨나 두세 달에 한 번씩 쉼터를 바꿔 다니며 생활했는데 더는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다.

특히 박양은 “과일을 파는 아르바이트를 했었는데, 사장님이 ‘너는 여자니까 과일을 깎아 드리면서 손님들한테 외모로 어필해야 한다’고 했다”며 “충격적이었고, 지금은 그런 위험에 노출될 일이 없어 너무 좋다”고 말했다. 박양은 로뎀의집에 온 후부터 n번방 사건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등에 대해 꾸준히 성·인권 교육을 받았고, 용돈 등을 지원받으며 학업에 충실, 고졸 검정고시에 통과해 현재는 대입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그동안 로뎀의집에서 3000명 넘는 10대 소녀들을 보살펴 온 조정혜 관장은 소녀들이 성 문제로 존엄성을 위협받는 현실에 대해 “가정이 가장 중요하고, 여성을 상품화하는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해체된 가정에서 경제적으로 방임된 아이들이 사회에 나왔을 때, 정상적인 어른은 청소년 상담 지원센터 등으로 데려가지만 비정상적인 사람들은 아이들을 모텔 등으로 데려간다며, 이러한 비정상적인 인식과 문화를 바꿔야 한다는 뜻이다. 조 관장은 “여성을 수동적 존재가 아닌 주체로 인정하고, 상품화하지 말아야 한다”며 “이를 위한 생명 문화 교육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후원 경남은행 502-21-0434599 예금주 로뎀의집 조정혜

※문의 055-292-4747·4713 로뎀의집

10대 소녀들의 정신·심리 상담을 위해 로뎀의집 내 설치된 모래놀이치료실.

여성인권상담소 ‘소냐의집’ 관계자들이 탈성매매를 돕기 위해 성매매 집결지를 방문하고 있다.

■ 탈성매매 여성 자립 돕는 ‘여성인권상담소 소냐의집’

성매매 피해 여성 존엄 지켜 “지속적 관심 필요”

직업 훈련과 의료·법률 지원 안정된 일자리 구직에 힘 보태

“구조적 문제 해결 고민하면서 편견 없는 시선으로 함께해야”

“‘사람으로 대우받지 못하고 물건 취급받고 그런 시간 자체가 힘들었는데, 소냐의집을 만나면서 달라졌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참 뿌듯하죠.” 여성인권상담소 ‘소냐의집’(소장 홍성실 수녀, 이하 소냐의집) 구조지원팀장 김효정 사회복지사는 4월 23일 자신의 일에 대해 설명하며 이렇게 말했다. 성매매 피해 여성들의 탈성매매를 돕고 소냐의집에 걸려 온 상담 전화 등을 통해 탈성매매 여성들을 지원하고 있는 김씨는 “한 40대 여성은 ‘선불금’을 갚으라고 업주한테 협박을 받는 상황이었고 알코올 중독 초기 증상까지 있었는데 지금은 술도 잘 안 마시고 소냐의집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고졸 검정고시를 볼 생각도 하고 있다”며 “환경도, 사고도 긍정적으로 바뀌었다”고 밝혔다.

서울 강동구 천호동에 위치한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회 소속 소냐의집에서는 현재 김씨를 포함해 8명이 성매매 피해 여성들을 위한 존엄성 수호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들은 모두 ‘모든 사람이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모습대로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활동하는 소냐의집’이라는 비전 아래 성매매 집결지나 유흥업소 등에서 여성들이 벗어나 자립할 수 있도록 함께하고 있다. 의료·법률·직업 훈련 등을 지원하고 있고, 성매매 집결지나 유흥업소 등을 찾아 성매매 피해 여성들이 자신이 소중한 존재이며 억압받는 구조에 있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성매매 예방을 위한 지역 사회 캠페인과 교육 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매년 상담소 지원 여성 절반 이상이 중장년층이며, 성매매 피해 여성들 가운데에서도 중장년층이 가장 취약하다는 점 등을 고려해 이들이 안정된 일자리를 구할 수 있도록 돕는 사회 적응 프로그램 ‘소담’도 운영하고 있다.

성매매 피해 여성들에 대해 이 같은 지원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소냐의집 총무 이수경 수녀(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회)는 “성매매는 존재 자체만으로 인간으로서 여성의 존엄성을 훼손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성매매는 가부장적인 사고 속에서 여성 차별적인 방식으로 이뤄지는 행위로, 여성들은 그 안에서 경제적 착취와 협박 등을 받으며 하나의 상품이나 사고파는 존재로 여겨지며 살아가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이 수녀는 “이 여성들을 왜 도와줘야 하느냐는 사람들도 있지만, 성매매는 성매매인지 모르고 돈이 급해 따라갔다가 강제로 붙잡히는 경우도 있고, 잘못된 선택이라고 해도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빠져나갈 수 없게 만들어 놓은 구조적 문제가 가장 크다”며 “이들이 어려운 상황에 있을 때 미리 도와주지 않은 사회 구성원들의 책임도 있다”고 말했다.

소냐의집 소장 홍성실 수녀(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회)도 “근본적으로 빈곤 여성들이 성매매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사회 구조적인 지원 수단이 마련돼야 하고, 편견 없는 관심이 필요하다”며 “예수님께서 간음한 여인을 단죄하지 않으시고 사회 구성원 각자의 책임을 물으신 것처럼 우리도 이 여성들이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후원 농협 035-01-519920 예금주 소냐의집

※문의 02-474-0746 여성인권상담소 소냐의집

이소영 기자 lsy@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