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생활 속 영성 이야기] (67) 아이를 버려야 하는 어미의 아픈 사랑

고유경 (헬레나·ME 한국협의회 총무 분과 대표),
입력일 2021-04-27 수정일 2021-04-27 발행일 2021-05-02 제 3242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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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길에서 마주친 신앙 선조들의 인간적 아픔

4월 중순에 본당 성지 순례단장인 후배 부부와 함께 4박5일로 제주도 성지순례 답사를 다녀왔다. 본당 가족들을 모시고 18회나 성지순례를 이끈, 순수한 열정으로 가득한 이들 부부와 함께하는 여정이 행복했다. 이들 부부는 코로나19로 단체 성지순례를 할 수 없는 이때에도 계속해서 답사를 다니며 다시 열릴 성지 순례 길을 준비하고 있다.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을 만끽하며 걷는 걸음은 가볍고 기꺼웠다. 제주교구에서 개발한 순례길은 모두 여섯 코스로 신축화해 길, 김기량 길, 정난주 길, 김대건 길, 이시돌 길, 하논성당 길이다. 김기량 펠릭스 베드로 복자는 제주 최초로 세례를 받았고 제주 최초의 순교자로 제주에 신앙의 씨앗을 뿌린 분이다.

김기량 길은 조천성당을 시작으로 함덕마을을 거쳐 복자 김기량 펠릭스 베드로 복자의 순교현양비에 이르는 9.3㎞의 길이다. 조천성당에서 순교현양비까지 이르는 길이 아름답고 복자의 신앙과 고난의 길을 함께 걷는 느낌이 묵직했다. 정난주 길은 정난주 마리아 묘에서 시작해 모슬포성당까지 이르는 총 13.8㎞의 길로 추사 김정희의 유배길과 많이 겹쳐 추사의 발걸음도 함께 느낄 수 있는 역사의 길이었다.

대정 벌판에 끝도 없이 심어져 있는 마늘 향기가 가득하고 청보리가 춤추는 순례길을 거쳐 발자국 화석 발견지가 있는 아름다운 해변 길을 따라 걷다가 일본군 고사포 진지가 있는 알 오름으로 발길이 이어진다. 이곳은 일제가 대동아 전쟁 때 진지로 사용한 곳으로 고사포 진지와 알뜨르 비행장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제주의 다크 투어리즘(잔혹한 참상이 벌어졌던 역사적 장소나 재난ㆍ재해 현장을 돌아보는 여행)의 한 곳으로 일제가 우리 땅을 수탈하고 전쟁의 장으로 사용했던 아픈 역사를 따라 걷다가 제주의 아픔인 4·3 사건과도 맞닥뜨린다.

알 오름 주변 마을 주민 218명이 4·3 사건 때 군에 의해 희생된 사건을 발굴하고 희생자의 신원을 찾아내어 그 혼을 위로하는 위령탑도 만나게 된다.

김대건 길에는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이 상해에서 사제품을 받은 후 서해를 통해 귀국하는 길에 풍랑을 만나 표착한 용수포구에 세워진 용수 성지가 있다. 험한 뱃길에 풍랑을 만나 포구에 표착하여 배를 수리하고 고국에서의 첫 미사를 드린 장소에 서니 신부님의 여정에 주님께서 함께하고 계셨음에 절로 감사의 기도가 흘러나왔다.

배를 타고 추자도에 내려 황경한의 묘를 찾아갔다. 황경한은 황사영 백서로 널리 알려진 황사영 알렉시오와 정난주 마리아의 아들이다. 정난주는 정약용의 형인 정약현의 딸이다. 백서 사건으로 황사영이 능지처참당하고 그의 아내 정난주 마리아는 제주에 관노로 유배 가는 길에 함께 가던 아들이 자신과 함께 제주에 가서 죄인의 자식이라는 낙인을 받고 평생을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추자도 갯바위에 아이를 놓아두고 제주로 향했다고 한다. 그 아이가 우는 소리를 들은 추자도 주민 오씨가 아기를 거두어 키웠고 아이의 옷 속에 쓰여 있는 이름으로 아이의 이름과 신분을 알 수 있었다고 한다.

황경한의 묘와 아기를 놓고 갔다는 눈물의 바위 앞에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이 생겨났다. 과연 아기의 삶을 위해 자식을 버린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어미로서 자식이 확실한 고통의 삶을 살지 않게 하기 위해 죽을 수도 있는 생이별을 결심할 수 있을까? 혼자 남겨진 아이는 다행히 발견되어 목숨을 구했고 천수를 다했으니 다행이지만 버림받은 상처와 엄마에 대한 그리움으로 일생을 외롭고 슬프게 살지 않았을까? 자식을 버리고 온 어미는 그 아픔을 어떻게 감당하며 일생을 살았을까? 큰 성공의 길도 아니고 그저 죄인의 자식이라는 오명을 쓰지 않기 위해 그런 아픔을 감당해야 했을까 하는 인간적인 생각들이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다.

어쩌면 정난주 마리아는 평생 자식을 위해 기도하며 순교보다 더한 고통 속에 살았을 것이고 하느님은 아픈 마음으로 그 모자를 지켜보셨겠다는 생각에 이르러 다음 발길을 뗄 수 있었다. 이번 여행은 우리 교회 순교 역사에 올라가지도 못한 수많은 정난주와 황경환들의 아픔과 함께하는 값진 순례길이었다.

고유경 (헬레나·ME 한국협의회 총무 분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