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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의 눈] ‘준주성범 읽고 쓰기’에 도전하기 / 김민수 신부

김민수 신부(서울 청담동본당 주임)
입력일 2021-04-27 수정일 2021-05-03 발행일 2021-05-02 제 3242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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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님 부활 대축일을 지낸 다음 본당에서는 ‘전 신자 준주성범 읽고 쓰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준주성범」 책과 노트를 한데 묶어서 신자들에게 판매를 했는데, 2주간에 500권을 판매했고 필요로 하는 신자들이 더 있어서 전국 서원들에 남아 있던 것까지 다 모아 100권을 더 들여와 완판을 하였다. 사실 코로나 상황에서 신자들이 「준주성범」을 읽고 쓰는데 얼마나 참여할지 몰라 걱정했는데 그것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아마도 가톨릭 고전 중의 고전인 「준주성범」을 읽고 싶었지만 그동안 시간을 내지 못해서 지나친 책이라 이번에 많은 신자들과 함께 참여하여 읽고 쓰기에 도전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무려 4개월간의 프로젝트라 하루에 한 장(chapter)만 읽고 쓴다면 부담 없이 마치게 되어 있다.

책읽기인 독서는 소리 내어 읽거나 눈으로 봄으로써 책의 정보를 수용하는 행위이다. 반면에 필사는 눈으로 볼 뿐만 아니라 손글씨로 손의 자극을 느끼며 정보를 익힐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필사를 할 때 글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고, 느린 속도만큼 생각이 머물러 좋은 문장에서는 치유와 위로를 얻을 수 있어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의 따뜻한 정서를 느끼기도 한다.

신앙인들 역시 오래 전부터 필사의 매력을 깨달아 ‘성경필사’에서 신앙심을 고취하고 마음의 평화를 얻으려는 노력을 해왔다. 한 자 한 자 정성스레 신구약 필사를 마친 어느 자매님은, “성경 필사는 신앙의 깊이와 기쁨을 더해줬다”고 증언한다. 성경 필사를 해본 신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쓰면 쓸수록 더 쓰고 싶어지고, 쓰는 동안은 행복하고, 잠시 외출이라도 하면 빨리 집에 들어가 쓰고 싶어지는 것”이라고…. 많은 필사자들이 “성경을 필사하는 그 시간이 하느님에게 기도하는 시간이었다”고 고백한다. 최근에는 성경만이 아니라 영성서적까지 필사하는 예가 늘어나고 있다.

성경 다음으로 필사를 많이 하는 책이 「준주성범」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미 여러 본당에서 이 책을 가지고 전 신자들에게 필사를 시행했다고 한다. 그런 만큼 이 책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을 통해 우리 내면을 성찰하고 깊은 영성생활로 이끄는 길잡이 역할을 한다. 본래는 수도자들을 대상으로 저술된 책이지만 오랜 세월이 흐르며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며 성경 다음으로 커다란 영향을 끼쳐왔다. 예를 들어, 「영신수련」을 완성하는데 큰 도움을 받았던 로욜라의 성 이냐시오에게, 수도생활 중에 늘 곁에 두었다는 성녀 소화 데레사에게, 그밖에 많은 평신도들에게 변함없는 사랑을 받았던 책이 바로 「준주성범」이다.

이 책은 중세가 끝나는 시점에 르네상스 운동과 인본주의 사상이 일어나는 가운데 중세의 사변적이거나 신비주의적 영성을 거부하고 기도의 실천을 통한 영성훈련에 초점을 맞춘 ‘새 신심운동’을 대표한다고 하겠다. ‘그리스도를 본받아’로도 번역되는 「준주성범」은 지성보다 의지 중심으로 그리스도의 인성을 묵상하고 예수님의 성덕을 본받으려는 영성생활 운동으로 전개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본당에서 시작한 ‘전 신자 준주성범 읽고 쓰기 프로젝트’가 무사히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사실 매일 한 장씩 읽고 필사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에 몇 가지 조건을 지키면 좋겠다. 우선, 그날의 분량을 제대로 읽어야 한다. 읽지도 않고 필사하는 것은 익히지 않은 음식을 먹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날 분량을 읽고 충분히 자기 것으로 만드는 묵상을 한 다음에 필사로 넘어가는 것이 현명하다. 두 번째로, 그날의 분량을 그날 해내야지 다음 날로 미루어 나중에 한꺼번에 읽고 필사하려면 매우 피로해지고 책을 읽는 것조차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다. 세 번째로, 읽고 필사를 하려면 아무래도 주위가 조용해야 하고 본인도 고요와 침묵을 지켜야 할 것이다. 음악이나 TV, 기타 소음이 심한 상태에서는 읽고 묵상하고 쓰기에 집중하기 어렵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공간이나 서재가 있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라 할 수 있다. 「준주성범」과 같은 신심서적은 궁극적으로 기도로 귀결되고 그래서 하느님과의 일치로 이끌어주는 효과가 있으므로 세심한 내적인 준비와 성령의 힘이 필요하다. 「준주성범」 읽고 쓰기에 도전하기를 적극적으로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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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수 신부(서울 청담동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