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광주 소화자매원, 사회복지법인 되면서 할머니 수녀들 거주 불가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21-04-27 수정일 2021-04-28 발행일 2021-05-02 제 3242호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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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봉사의 삶… 정년 후 갈 곳 잃어 난감
독립된 수녀원 건립 절실
평생 장애인 돌보며 살아온 예수의 소화 수녀회 수녀들
법적으로 복지 현장서 퇴임 
노후에 머물 곳 마련 시급

광주 소화자매원 전경. 소화자매원 제공

50년 넘게 봉사의 삶을 살다가 정년퇴임한 수녀들이 갈 곳을 잃어 난감한 처지에 놓여 있다.

광주대교구 사회복지법인 소화자매원(대표이사 조영대 신부)을 운영하는 예수의 소화 수녀회(총원장 이영희 수녀) 소속 수도자들은 모두 18명, 80대 이상 두 명을 포함해 절반 이상이 60~70대 이상의 고령으로 복지 현장을 떠나야 한다. 하지만 1985년 소화자매원이 법인이 되면서, 퇴임 후 머물 수 있는 곳이 없어 수녀원 건립이 절실하다.

소화자매원은 1956년 김준호(레오) 선생이 결핵 환자들을 돌보기 위해 광주시 북구 화암동에 설립한 ‘무등원’을 모태로 한다. 1970년대부터 독신으로 봉사를 하려는 젊은 여성들이 모이면서 수도 공동체가 시작됐다. 이후 결핵 요양소 등을 운영하며 가난한 이들을 돌보는 일을 계속했으나,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존폐의 기로에 있었다.

그러던 중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헬기 사격을 증언한 고(故) 조철현(비오) 몬시뇰을 만나게 된다. 조 몬시뇰은 사비를 털어 광주 남구 봉선동에 여성 환자들과 중증 장애인을 위한 시설 건립을 지원했고, 후원회를 만들어 지속적으로 도움을 주었다. 김준호 선생과 조 몬시뇰은 1981년 ‘무등원’을 ‘소화자매원’으로 개칭했고, 1999년에는 예수의 소화 수녀회를 창설했다.

하지만 소화자매원은 1984년까지도 미인가 시설이어서 80여 명의 장애 가족들은 최소한의 생활비로 돼지 움막을 개조한 열악한 거주 공간에서 생활해야 했다. 소화자매원은 어려움 속에서도 갖은 노력으로 한 평씩 생활 터전을 넓히고 바자와 모금 활동을 통해 장애 가족들의 쾌적한 생활 공간을 마련할 수 있었다. 1985년 3월에는 사회복지법인을 설립해 이전에 비해 원활한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예수의 소화 수녀회는 현재 소화자매원을 비롯해 광주와 전주에서 여성 정신요양시설, 여성 발달장애인 거주시설, 장애인 직업재활시설, 정신재활시설 등 6곳을 운영하며 200여 명의 장애인들을 돌보고 있다 .

법인 설립으로 형편은 나아졌지만 이로 인해 평생 봉사의 삶을 살아온 수녀들은 소화자매원을 떠나야 했다. 법적으로 복지 활동 현장에서 퇴임한 수녀들은 더이상 그 안에 머물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전쟁으로 피폐해진 땅에서 봉사의 삶을 시작한 20대 초반의 여성들은 이제 70~80대가 돼 돌봄이 필요한 할머니 수녀들이 됐다.

조 몬시뇰은 이같은 상황을 예견하고 수녀원 건립을 준비하던 중, 2016년 9월 선종했다. 현재는 그의 조카인 광주대교구 조영대 신부가 이 숙원사업을 이어받아 추진하고 있다.

조 신부는 수년 동안 수녀원 건립을 계획, 부족한 건축기금 마련을 위해 교구 내 성당들에서 모금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허락받았지만 코로나19 때문에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전혀 진척이 없는 상황이다.

※후원 계좌 농협 301-0280-293891/ 광주은행 1107-021-111674 예금주 (재)예수의소화 수녀회

※문의 062-675-4023, 010-6233-0246 소화자매원

박영호 기자 young@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