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생활 속 영성 이야기] (65) 청원기도, 자유로움으로 나아가는 길

한준 (요셉·한국CLC 교육기획팀장)
입력일 2021-04-13 수정일 2021-04-13 발행일 2021-04-18 제 3240호 16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아버지 당신 손에 제 영혼을 맡깁니다”

지금 직장에서 일하기까지 나는 그동안 수도 없이 이직을 준비하고 시도했었다. 매일같이 채용 관련 웹사이트를 살펴보면서 내 전공 관련 기관에 지원하고 떨어지는 것을 반복했다. 그러다가 정말 괜찮은 곳에서 채용 공고가 났고, 그곳에 지원해서 최종 면접까지 올라가게 됐다. 처우와 복지, 근무 환경, 위치 등 정말 마음에 드는 곳이었다.

지원 서류를 내는 날부터 나는 그곳에 합격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하느님께 정말 열심히 기도를 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기도하고, 잠자기 전에도 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수시로 기도를 했다. 제발 저를 꼭 합격시켜 달라고, 당신의 훌륭한 도구로 쓰일 수 있도록 기회를 달라고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드렸다. 그렇게 기도를 하다 보면 불안하고 초조했던 마음이 조금씩 사라지고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마음의 평화까지 주시니 하느님께서 내 소원을 꼭 들어주실 것 같았다.

그런데 그만 최종 면접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열심히 기도하고 청하면 합격할 것 같았는데, 이전의 연이은 실패 경험까지 떠오르면서 속이 상하고 좌절감이 들었다. 왜 떨어진 것일까? 하느님께서는 왜 내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신 걸까? 기도가 부족했나? 능력이 부족했나? 예수님은 아버지 하느님께 간절히 청하면 분명 들어주신다고 하셨는데, 왜일까? 혹시 내 개인적인 기도가 너무 불순하고 이기적인 것일까? 청하지 말고 그냥 알아서 열심히 살아가면 되는 것일까? 여러 가지 마음이 올라왔다.

시간이 흐르고 다시금 내 모습에 대해 돌아보게 되었다. 그러면서 채용 과정 중에 하느님께 기도하면서 불안하고 초조했던 마음이 안정되고, 그분께서 나와 함께하심을 느꼈던 순간들이 있었다는 것이 떠올랐다. 하느님께서 나와 함께하신다는 것을 느끼고서 큰 위로와 힘이 되었던 것이다. 그제야 감사함이 느껴졌다. 그런데 정작 당시에는 내가 원하는 결과에 대한 집착이 커서 하느님의 동반에 대한 감사함을 잘 몰랐다.

하느님께 청하는 기도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하게 됐다. 그분께 청하는 기도에서 본질은 그분이 내 기도를 들어줄 것인가, 말 것인가에 있는 것이 아닌 것 같다. 하느님은 팔짱을 끼고서 우리가 당신께 얼마나 열심히 청하는지를 평가하고, 그것에 기반해 우리 청원을 들어줄지 말지를 결정하시는 분이 아니다. 그보다는 기도를 통해 우리 삶의 주인이 그분이심을 다시금 깨닫고, 그분께 맡겨 드리며, 그분께서 지금 우리와 함께하시고, 앞으로 어떤 결과나 어떤 상황에서든 함께하실 것이라는 신뢰를 갖는 것이 더 핵심이다. 그래서 결과는 하느님께 맡기고 우리는 평화와 위안, 기쁨과 감사함, 자유로움을 얻어야 한다.

이후에 나는 몇 번 더 이직을 시도했었고, 이전보다 좀 더 가볍고 편한 마음으로 임할 수 있었다. 물론 실패하고 나서는 실망감이 전혀 없진 않았지만, 이전보다 더 빨리 털고 일어나서 또다시 다음을 준비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결국 나는 마음에 드는 다른 직장으로 이직할 수 있었다. 하느님께서 내 청을 들어주신 것이다.

수난을 앞두고서 예수님이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하신 것은 당신께 주어진 잔을 거두어 달라는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고통과 수난, 죽음의 상황 속에서도 하느님께서 당신과 함께하시고, 당신을 깊이 사랑하신다는 것을 마음 깊이 신뢰할 수 있게 해달라고 청하셨을 것이다. 그런 신뢰가 있었기에 두려움 속에서도 당신 뜻이 아닌 하느님 뜻대로 하시라고 기도하실 수 있었을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시고, 세상을 구원하시고자 이 순간에도 열심히 일하고 계신다. 그리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우리보다 더 잘 아신다. 우리에게 주어진 몫은 그분이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를 도와 가신다는 것에 대한 신뢰를 갖는 것, 그리고 자유로움 안에서 그분이 초대하시는 사랑의 길에 응답하는 것이다.

한준 (요셉·한국CLC 교육기획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