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세상살이 신앙살이] (580) ‘외양간 경당’

강석진 신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21-04-13 수정일 2021-04-13 발행일 2021-04-18 제 3240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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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갑장터순교성지 담당 신부로 발령을 받은 후, 우여곡절 끝에 순례자들을 위한 자그마한 경당을 짓게 되었습니다. 전주교구와 고창군으로부터 토지사용 승인을 받고, 힘과 용기를 주는 고창본당 신부님의 지지에 힘입어 3개월 정도 행정적인 절차와 설계도면 제작 기간을 거친 후 본격적인 공사를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 와중에 경당 건축과 함께 성지 경당의 의미를 담을 이름이 필요했습니다. 왜냐하면 앞으로 지어질 개갑장터 순교성지 본 성당의 명칭이 ‘복자 최여겸 마티아 순교 기념 성당’이 되기에, 이름의 중복을 피하면 좋겠다는 의견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본 성당이 지어지기 전, ‘마중물’ 역할을 할 경당이면서도, 순례자들에게 영적인 가치를 제공할 이름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수렴한 끝에 ‘외양간 경당’이라 이름을 정했습니다. ‘외양간 경당’의 의미는 예수님께서 외양간에서 태어나셨기에, 앞으로 성지를 찾는 순례자들이 ‘경당’에서 예수님을 만나, 예수님을 자신의 마음 안에 모실 수 있기를 바라는 뜻을 담았습니다.

그 후 개갑장터 순교성지 내 경당 공사에 대해 알릴 겸, 현수막을 제작해서 경당이 지어질 자리 앞에 걸어 두었습니다. 현수막 문구는 ‘개갑장터 성지 외양간 경당 기공식’이라고 썼습니다.

이어서 경당의 기초 공사가 진행되던 때였습니다. 공사를 하시던 분들이 잠시 쉬는 시간에 저에게 와서 물었습니다.

“여그가 뭐여? 천주교 성지라고 하던 디, 근디 왜 여따가 외양간을 지어요?”

“아, 예. 여기에 외양간을 짓는 것이 아니라, 외양간 경당, 아니, 성당을 짓는 거예요.”

그러자 옆에 있던 다른 분이,

“아따, 외양간을 짓는데 시끌뻑쩍하게 기공식도 하는 갑네요-잉?”

내가 아무리 그분들에게 ‘성당’ 공사라 말씀을 드려도, 그분들은 성당이라는 그 단어가 와 닿지 않는 모양입니다. 그 다음날에도 또 다른 목수분이 저에게 묻기를,

“아따, 여기서는 소를 아주 깨끗하게 키울 건가 봐요. 바닥을 공구리 치는 걸 보니.”

“여기서 소를 키우는 것은 아니고, 외양간 성당을 짓는 거예요. 그리고 외양간의 의미는 예수님께서 외양간에서 태어났기에, 그것을 기념해서 외양간 성당이라고 했어요.”

“아, 그라문 예수님이 외양간에서 태어났는가 보네요?”

“예. 외양간에서 태어나셨죠. 그럼 선생님은 예수님께서 어디에서 태어났다고 생각하세요?”

“아따, 나는 예수님이 교회에서 태어난 줄 알았는디. 그건 또 아닌가벼.”

신앙인들은 자신이 믿고 있는 신앙의 언어를 배우고, 그 언어를 통해 신앙의 본질을 이해하고, 그 언어를 통해 자신의 신앙을 고백합니다. 또 신앙의 언어 중에는 일상 안에서 자주 사용하는 단어가 있고, 어떤 때가 되면 가끔 사용하는 단어도 있습니다. 그런데 때가 되면 사용하는 단어야 어렵다 치더라도,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단어들조차 일반인들이 자연스럽게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건 그 종교를 믿고 따르는 신앙인들의 삶의 문제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경당’, ‘성당’ 이 용어조차 일반인의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이해되지 않는데, ‘순교’, ‘순교성지’, ‘복자’라는 말들은 그저 신앙인들끼리만 알고 있는 ‘신앙의 사투리’가 될 수 있습니다. 문득, 오늘날 신앙의 언어에 귀를 닫은 일반인들에게 ‘순교’라는 단어가 ‘삶의 언어’이자, ‘생명을 살리는 용어’라는 사실을 어떻게 알릴 수 있을까! 신앙의 언어는 외우기만 하는 ‘머릿속 단어’가 아니기에…. 그저 신앙인답게 사는 수밖에는 답이 없는 것 같습니다.

강석진 신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