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이준익 감독 흑백 영화 ‘자산어보’

김현정 기자
입력일 2021-04-13 수정일 2021-04-22 발행일 2021-04-18 제 3240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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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믿는 양반과 성리학자 어부, 벗이 되다
정약전의 흑산도 유배생활 그려
천주교 교리와 순교 역사 녹여내

영화 ‘자산어보’의 한 장면.

정약전(안드레아·1758∼1816)의 흑산도 유배생활을 그린 영화 ‘자산어보’(감독 이준익)가 최근 개봉해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정약전은 「자산어보」의 저자이자, 복자 정약종(아우구스티노·1760~1801)과 다산 정약용(요한 사도·1762~1836)의 형이기도 하다.

영화는 사학(邪學), 즉 사악한 학문으로 간주되는 천주교를 믿는 양반 정약전과 서자(庶子)임에도 성리학을 신봉하는 어부 창대가 「자산어보」를 함께 만들어가며 겪는 크고 작은 에피소드를 통한 갈등과 화해를 그리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해양생물학 전문서로 평가되는 「자산어보」(1815)는 정약전이 흑산도에서 직접 해양 생물을 관찰하고 정리한 3권의 책으로, 수산 동식물 155종의 이름과 형태, 습성 등을 자세히 기록했다.

「자산어보」 서문에는 아래와 같은 글이 있다.

“섬에 장창대(張昌大) 덕순(德順)이라는 사람이 있어 문을 닫아 걸고 손님을 사양한 채 독실히 옛 서적을 좋아하였다. 다만 집이 가난하고 책이 적어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음에도 공부한 것이 폭넓지 못하였다. 하지만 성품이 조용하고 정밀하여 무릇 직접 듣거나 본 풀과 나무, 새와 물고기는 모두 자세히 살피고 깊이 생각하여 그 생리를 알았으므로, 그의 말은 믿을 만하였다.”

영화 ‘왕의 남자’, ‘동주’ 등을 만든 이준익 감독은 이 서문만을 가지고 정약전과 창대의 새로운 이야기를 지어냈다. 이 이야기 안에는 서학(천주교)과 성리학, 양반과 서자, 학자와 어부 등 여러 대립구도가 담겨 있다. 또 정약전·약용 형제의 각별한 우애와 학문을 함께하는 동반자로서의 여정도 보여준다.

역사를 고증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기에 영화에는 많은 허구가 있기는 하나, 역사적 사실도 함께 그리고 있다. 이를테면 정약종이 땅이 아닌, 하늘을 보고 망나니의 칼을 받고 순교하는 장면이라든지, 황사영 백서 사건 등도 영화에 녹여냈다.

또한 “내가 바라는 것은 양반도 임금도 필요 없는 그런 세상이다”라는 정약전의 대사에서도 천주교의 가르침을 엿볼 수 있다.

영화는 몇몇 장면을 제외하고는 모두 흑백이다. 그래서인지 마치 그윽한 수묵화를 보듯 스토리 라인과 절제된 영상미에 집중하며 감상할 수 있다.

김현정 기자 sophiahj@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