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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화해·일치] 전쟁과 인권 / 강주석 신부

강주석 신부(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총무)
입력일 2021-04-13 수정일 2021-04-13 발행일 2021-04-18 제 3240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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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노틀담대학교의 토드 휘트모어(Todd D. Whitmore)는 ‘신학자에게 책을 쓰는 것보다 중요한 사명은 소외된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것’이라는 신념을 실천하는 신학자다. 구체적인 삶을 중요시하는 휘트모어는 민족지학적(民族誌學的, Ethnographic) 방법론을 이용해서 신학적인 문제를 다루기도 하는데, 특히 2005년부터 2013년까지 우간다 북부와 남수단에서 활동했다. 그리고 이러한 분쟁지역에서의 활동은 ‘가톨릭 평화활동가’인 그가 정의와 평화의 관계를 더 깊게 성찰하도록 이끌었다.

휘트모어는 ‘현장’을 이야기하는 그의 논문에서 우간다 마케레레 대학교(Makerere University)의 ‘난민법 프로젝트’(Refugee Law Project)가 펴낸 「평화 먼저, 정의는 나중에」(Peace First, Justice Later)라는 독창적인 보고서를 소개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2005년 우간다 북부 몇몇 도시에서 서로 다른 문화와 종교 배경을 가진 다양한 계층 사람들의 인터뷰를 담고 있는데, 참혹한 폭력의 상처가 남겨진 현장에서 정의와 평화를 고민하는 주장이 인상적이다. 인터뷰에 응한 사람들은 일이 진행돼야 할 순서에 대해 놀라운 합의를 보여주었다. 즉 먼저 전쟁이 끝나야 하고, 그런 뒤에야 어떤 정의의 메카니즘이 실행돼야 하는지 결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안전이 보장될 수 없는 상황이 바뀌지 않는 한, 갈등의 한복판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갈등 이후의 재건에 집중할 시간도, 지향점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너무 열악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지역에서는 유럽에서 태동한 가톨릭 사회교리도 그대로 적용되기 어렵다고 설명하는 휘트모어는, 특별히 정의와 평화의 ‘전략적 우선순위’를 논하기 위해서 구체적인 상황의 특수한 환경을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장기적인 맥락에서 당연히 정의가 실현되는 적극적 평화를 추구해야 하지만 어떤 경우, 수십 년에 걸쳐 갈등이 지속돼 온 상황에서는 폭력과 위협부터 당장 중단하는 소극적 평화를 우선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미국 국무부가 발표한 ‘2020 국가별 인권보고서’가 북한이나 중국뿐 아니라 한국의 인권상황도 지적했다는 언론 보도가 쏟아졌다. 미국 국무부는 개별 국가를 직접 비판하지 않지만, 국가들의 인권개선에 관심이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는데, 사실 이 보고서는 ‘대북전단금지법’과 정치인들의 스캔들뿐 아니라, 군대 내의 차별문제나 국가보안법 등 우리 사회의 진보와 보수 모두에게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다양한 인권이슈를 언급하고 있다. 폭력이 정당화되는 전쟁은 언제나 인권을 처참하게 유린해 왔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우리는 전쟁이 아직도 지속상태에 있는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인권 개선을 위해 한국전쟁 당사국들이 신중하고 진지하게 노력해줄 것을 촉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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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석 신부(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총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