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세상살이 신앙살이] (579) ‘교리시간에 배운 대로 했는데…’

강석진 신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21-04-06 수정일 2021-04-06 발행일 2021-04-11 제 3239호 17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몇 년 전의 일입니다.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부부로부터 돌아오는 주일날 점심 때 시간이 되면 만날 수 있냐는 연락이 왔습니다. 돌아오는 주일날은 하루 종일 수도원에 머물면서 밀린 빨래와 방청소를 하는 날로 정했기에, 다행히도 그 부부와 흔쾌히 점심 약속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주일날 오전 바쁘게 움직인 후, 점심 무렵 그 부부와 만났습니다. 특히 형제님은 몇 달 전에 세례를 받았는데, 영세 후 첫 만남이라 더 반가웠습니다. 그 부부는 내게 맛난 것을 사주고 싶다고 말씀하셨지만, 우리는 더욱 ‘맛난’ 대화를 위해서 근처 칼국수 집에서 점심을 먹은 후 찻집으로 이동해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러다가 형제님은 신자가 된 후 약간 힘들고 속상했던 경험을 나에게 말해주었습니다.

“신부님, 저는 영성체를 할 때면 교리시간에 배운 대로 성체께 대한 공경심을 가지고 설레는 마음으로 제대 앞으로 걸어 나갔고, 내 차례 직전이 되면 큰 절을 했어요. 그런 다음 두 손을 모아서 신부님 앞에 서 있으면, 신부님께선 ‘그리스도의 몸’하면서 성체를 주시잖아요. 저는 그 순간이 너무나도 감격스러워 잠시 감사한 마음을 새기고 ‘아멘’이라고 대답을 해요. 그런 다음 옆 걸음으로 두 걸음 가서, 한 손으로 성체를 집은 후 입에 넣어 모시거든요. 그리고 감실을 바라보며 90도 정도의 큰 절을 한 후 천천히 제 자리로 돌아와요. 그런데 한 달쯤 후인가…. 미사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데 어떤 분이 저에게 다가오시더니, ‘형제님, 영성체 할 때 좀 빨리빨리 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하는 거예요. 저는 그분의 말을 듣는 순간, ‘아니, 뭘 빨리하라는 말인가’하며 나도 모르게 고개를 갸우뚱하며 그 분 앞에 멍하니 서 있었어요. 그런 다음 아내에게 물었죠. 내가 뭘 잘못했고 뭘 실수했냐고. 그런데 아내도 우물쭈물 말을 못하더라고요. 신부님, 그날 아무리 생각해도 그 사람에게 그런 말을 들을 행동은 하지 않았거든요. 신부님, 영성체 때에 뭘 빨리 해야 하나요? 성체 모시러 나갈 때 뭘 빨리빨리 해요? 혹시 제가 너무나 거룩함과 엄숙함을 가진 사람이라 성체를 모시기 전, 그리고 모신 후에 과도한 행동을 했다면 그런 말을 들을 수 있겠죠. 영성체 할 때에 무릎을 꿇거나 혹 이상한 행동을 하면 당연히 그런 지적에는 감사할 수 있겠죠. 그런데 그저 교리교육을 받을 때 배운 대로 했는데, 실제로는 그것과 다르다면 저 뿐만 아니라 우리 같은 사람은 신앙이 혼란스러워 힘들어요.”

나는 그 형제님의 말을 들으면서, 누가 옳고, 그른지를 정리할 것은 아니라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그저 서로가 이해해 주고, 서로 조금만 더 ‘그럴 수 있지’하는 마음을 가진다면 별 문제가 아니라는 마음뿐이었습니다. 단지 분명한 건, 세상이 아무리 빠르게 돌아간다 할지라도, 성당 안에서 만큼은, 특히 미사 봉헌 때에는 모두가 그저 느리게 천천히 행동하면 좋겠다는 생각은 해 봅니다.

사실 그런 건 신자들 뿐 아니라 신부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전에 본당 사목할 때에 몇 몇 어르신이 내 앞에 와서 망설이시다 말씀하신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신부님, 미사 시작 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하시잖아요. 그것을 좀 더 천천해 해 주시면 안 돼요? 신부님의 말을 따라갈 수가 없어요!”

사실 나 또한 그 말을 듣고 놀랐습니다. 미사 시작 때, 나름 정성껏 성호경을 긋는다 하더라도 그게 다른 사람에게는 빠르게 느낄 수 있었으니 말입니다. 암튼 어른이든 아이든, 신앙의 공간에서 혹은 신앙의 행위를 할 때에는 느리고 천천히 하는 것이 영성 생활의 시작임을 묵상하게 됩니다. 그러다보니 나부터 좀 고쳐야겠습니다. 미사 때마다 오늘 미사는 몇 분 만에 끝냈나, 교우들이 몇 분이 오셨나…. 이런 생각을 하느니, 미사에 더 집중하겠다는 다짐을 해 봅니다.

강석진 신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