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내리신앙, 깊어가는 믿음] (2) 신앙이 짐스러워요

조재연 신부 (햇살사목센터 소장)
입력일 2021-04-06 수정일 2021-04-07 발행일 2021-04-11 제 3239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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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은 어둠에 휩쓸리지 않도록 지켜주는 힘
인생 평탄하면 주님 잊기도 하지만 아픔과 좌절 또한 삶의 한 부분
뜻하지 않은 삶의 파고가 덮칠 때 주님은 우리를 단단히 붙잡아 주셔

“이런 이야기를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저는 사실 코로나19 때문에 미사가 중단되고 나서 홀가분하고 편안한 마음이 들었어요. 그동안 가기 싫다는 아이를 억지로 설득해가며 주일학교에 보내고, 바쁜 시간을 쪼개 자모회 활동을 하고, 주말조차 늘 바쁘고 버거운 시간을 보내다가 미사가 중단되고 성당에 가지 않는 주일을 맞이했을 때, 아쉬움보다 휴가를 받은 기분이 들더라고요. 그렇게 미사 없는 주일을 지내면서 그동안 제가 신앙을 짐처럼 여겼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코로나19로 성당에 안 가도 아무렇지도 않은 제 삶이 낯설게 느껴지기도 해요.”

신앙이 짐처럼 느껴졌다는 자매님의 사연을 읽으니 마음이 참 아픕니다. 코로나19 때문이 아니더라도 신자들로부터 비슷한 어려움을 들은 적이 많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이 부담스럽고 귀찮게 여겨질 때가 있다고 말입니다. 하느님을 몰랐더라면 세상의 어두운 면을 눈감고 지나칠 수 있었을 것이고, 더 편한 선택을 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신앙인이 아니었다면 주일을 지키지 않아도 되고, 공동체 안에서 나의 시간과 노력을 내놓아 가며 마음 쓸 일 또한 없었을 것입니다. 맞습니다, 정말 그럴지도 모릅니다. 우리 삶에서 어떤 것이 버겁게 느껴질 때가 온다면 저는 늘 첫 마음을 떠올려 볼 것을 권하곤 합니다. 그렇다면 혹시 기억하십니까? 예비신자 입교예식 때 했던 서약의 내용을 말입니다.

+ 여러분은 하느님의 교회에서 무엇을 청합니까?

● 신앙을 청합니다.

+ 신앙이 여러분에게 무엇을 줍니까?

● 영원한 생명을 줍니다.

+ …(중략) 여러분은 날마다 여러분의 삶을 하느님께 맡기면서 온 마음으로 하느님을 믿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의 길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길에서 여러분이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사랑으로 이끄실 것입니다.

오래전 예식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신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우리의 믿음이 이 응답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지요. 다시 한 번 사제가 바치는 기도문을 천천히 묵상해 봅시다. 믿음의 길은 첫째 날마다, 둘째 우리의 삶을 하느님께 맡기며, 셋째 온 마음으로 하느님을 믿는 것입니다. 물론 쉬운 길은 아닙니다. 순례자의 길처럼 지난한 걸음걸음이 계속되는 길이지요. 그렇지만 기도문은 그 길이 홀로 걸어야만 하는 외로운 길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사랑으로 이끄실 것이다’라고 응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행복할 때는 믿음의 길을 걷는 희열을 자각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지금 느끼는 달콤한 행복의 기쁨은 오롯이 자기 스스로 이루어 낸 것이라고 착각하면서 말입니다. 이렇듯 인생이 큰 문제 없이 평탄하게 흘러갈 때,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을 잊곤 합니다. 그러나 기쁨만으로 가득한 삶은 없습니다. 아픔과 슬픔, 좌절과 배신, 절망과 번뇌 또한 우리가 걸어가야 할 삶의 한 부분이니까요. 인생의 뜻하지 않은 삶의 파고가 덮쳐오는 그 어둠의 순간이 찾아올 때, 우리는 무엇으로 버틸 수 있을까요? 그 답을 찾고자 하는 분께 저는 박노해 시인의 시 ‘고마운 돌’에 나오는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아프리카의 어느 마을에는 수심이 깊지는 않지만, 물살이 무척이나 거센 강이 하나 있다고 합니다. 그 마을의 사람들은 그 강을 건널 때면 무거운 돌을 하나씩 지고 건넌다고 합니다. 거센 물살을 헤치는 일만으로도 힘들 텐데 거기에 무거운 짐까지 얹어서 간다니요. 참 어리둥절한 일이지만 그들의 행동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혹시라도 발을 헛디뎌 물살에 휩쓸리는 순간, 그 무거운 돌이 무게중심을 잡아 생명을 지켜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때론 짐스럽게 느껴지는 우리들의 신앙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삶의 여러 길목을 지나오면서 자신의 능력과 힘으로 다룰 수 없는, 그야말로 어쩔 수 없는 문제에 부딪히게 되는 날도 오게 됩니다. 그때 우리가 어둠 속에 휩쓸리지 않도록 단단히 붙잡아 주는 힘이 바로 신앙입니다. 신앙은 그 순간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고, 우리와 함께 그 고통스러운 길을 같이 걸어가고 계시다고, 그러니 힘을 내라고 가르쳐 줍니다.

오늘도 우리는 아이의 작은 손을 꼭 붙잡고 삶의 높은 파고와 거센 물살을 헤치며 건너가고 있습니다. 위태롭고 아슬아슬한 걸음을 내딛으면서 말이지요. 잠시 균형을 잃거나 시선을 돌렸을 뿐인데 아이의 손이 미끄러져 버릴 수도 있습니다. 한순간의 부주의로 순식간에 위험에 처하는 순간이 올지도 모릅니다. 그때 무겁고 버거운 돌 하나가 아이에게 있다면 그 아이는 절대로 거친 세상의 물살에 떠내려가지는 않을 겁니다. 아이가 자기 의지대로 세상을 나아가기 전에 신앙의 깊은 무게를 그의 품에 안겨 주는 것, 그것이 바로 어른들의 의무입니다.

지금 이 순간도 믿음의 길을 힘겹게 걸어가는 분, 자녀에게 그 길을 이어가기 위해 애쓰시는 부모들에게 이사야서 43장의 말씀이 격려가 되기를 바랍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를 건져주지 않았느냐?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으니, 너는 내 사람이다. 네가 물결을 헤치고 건너갈 때 내가 너를 보살피리니 그 강물이 너를 휩쓸어가지 못하리라.” (이사 43,1-2)

※자녀, 손자녀들의 신앙 이어주기에 어려움을 겪는 부모, 조부모들은 이메일로 사연을 보내주시면, 지면을 통해서 답하겠습니다.

이메일 : hatsal94@hanmail.net

조재연 신부 (햇살사목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