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사제수품 회경축 맞은 정진석 추기경

성슬기 기자
입력일 2021-04-06 수정일 2021-04-06 발행일 2021-04-11 제 3239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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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해서 남 주며 ‘모든 이에게 모든 것’ 되어 주다
혼자만 아는 것이 미안해서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책 펴내
한국인 사제 양성 위해 투신
교구 자립과 체계 확립 기여
교회 생명 운동 노둣돌 역할
청소년 사목에 애정 드러내며 활성화 위한 문화 사업 추진
예비 신학생에 장학금 전달도

“정말 과분한 사랑을 분에 넘치게 받았습니다. 지난 사제 생활은 이렇게 ‘하느님께 감사합니다. 참 송구스럽습니다’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011년 3월 사제수품 금경축을 맞은 전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은 본지와의 특별 대담에서 이렇게 소감을 밝혔다. 올해 사제수품 회경축을 맞은 정 추기경은 건강 악화로 축하식에는 참석하지 못했지만, 4월 1일 서울 주교좌명동대성당에서 열린 사제수품 60·50주년 축하식에서는 그를 그리워하는 동기·후배 사제들과 평신도들이 존경과 감사, 축하 인사를 전했다. 정 추기경의 지난 사제생활 60년, 그 중에서도 그의 따뜻한 면모를 돌아 본다.

■ “내가 낸 책이 60권이 넘었어~ 아마 다들 미쳤다 그럴 거야~”

지난해 10월 주교수품 50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정진석 추기경은 새롭게 수정해 발간한 책 한 권을 소개하며 이렇게 말했다. 최근 건강 악화로 서울성모병원에 입원하기 전까지도 ‘매년 책을 내겠다’는 약속을 지켜 온 정 추기경은 당시 “굉장한 은총”이라며 “하느님께 정말 감사하다”고 허허 웃었다.

어릴 적부터 ‘꼬마 독서광’으로 불렸던 그는 신학교에서도 줄곧 수석을 차지할 정도로 학업에 남다른 탈렌트를 갖고 있었다. 실제로 교구청 관계자들이 “저토록 책을 많이 읽는 성직자는 처음 본다”고 말할 정도로 독서 습관이 몸에 배어 있었다.

그의 유일한 취미는 독서와 글쓰기다. 서울 중앙고등학교 시절에도 졸업할 때까지 매일 한 권씩 책을 읽은 것으로 유명하다. 이를 기념해 그의 모교인 중앙고는 지난해 7월 도서관 내에 ‘정진석 추기경 특별서가’를 조성했다.

정 추기경의 왕성한 학구열은 그대로 집필로 이어졌다. 그는 한평생을 교회법전 연구에 온전히 매달리며 「교회법원사」, 「교회법 해설」(전11권), 「한국천주교사목지침서 해설」 등 수많은 교회법 관련 저서와 역서를 집필했다.

특히 지난해 10월에는 동양어로 쓰인 첫 가톨릭 라틴 교회법전 해설서 전집인 「교회법 해설 1~6」(가톨릭대학교 출판부)을 출간했다. 그동안 발간한 교회법 해설 시리즈 ‘개정판’으로, 전 세계적으로 저자 한 명이 교회법전 전체를 해설한 경우는 드물어 더욱 뜻 깊었다.

그가 한평생 책을 써 온 이유는 그의 사목 모토인 ‘옴니부스 옴니아’(Omnibus Omnia, 모든 이에게 모든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정 추기경은 2006년 2월 추기경 임명 당시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나눌수록 커지는 것이 사랑”이라고 말했다.

“책을 쓰는 이유를 굳이 들라면, 나누기 위해서죠~ 공부한 것들을 혼자만 갖고 있는 것이 미안해 공유하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죠. 이제는 생활 속의 한 부분이 된 것 같습니다.”

■ “낙태한 사람이 받을 상처를 생각하면 마음이 참 아파~”

정진석 추기경은 지난 1970년 39세 최연소 주교로 서품을 받은 뒤 청주교구와 서울대교구의 교구장직을 40년 넘게 수행하며 막중한 사목적 현안을 두루 살폈다. 특히 청주교구 설정 12년 만에 임명된 첫 한국인 교구장 주교로서 여러 어려움이 따랐지만 그럴 때마다 좌절하기보다는 묵주기도를 바치며 주님께 도와달라고 청했다.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며 복잡하고 어려운 시기를 헤쳐나간 정 추기경은 본당 자립과 한국인 사제 양성 등에 온 힘을 쏟으며 교구 자립과 사목 체계 확립에 크게 기여했다. 특히 사제 회의를 영어로 할 정도로 서양인 비율이 높았던 청주교구 분위기를 6년 만에 변화시켰다. ‘자신은 굶어도 신학생은 양성한다’는 마음으로 성소 계발에 매달린 결과였다.

아울러 생명 나눔 운동과 북한 교회 선교, 신자들의 영적 성장에 매진하며 우리 사회를 새로운 길로 안내하는 노둣돌 역할을 했다.

청주교구장 시절부터 ‘생명’ 문제를 사목의 중심 주제로 다뤘던 정 추기경은 2005년 줄기세포 논문 조작으로 파문을 일으킨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 사건 이후 생명운동에 역량을 집중했다. 2005년 10월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를 발족했으며, 생명의 신비 기금도 조성했다. 12월에는 제1회 ‘생명 존중 문화 확산을 위한 생명 미사’를 봉헌하고 “우리가 사는 세상과 생명의 주인을 인간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며 “생명의 주인은 오직 창조주 하느님뿐”이라고 강조했다.

다음해인 2006년에는 ‘그리스도, 우리 생명’을 주제로 교구 성체대회를 개최했다. 정 추기경은 성체대회를 통해 미래사목의 주안점이 생명운동에 있음을 분명히 했다. 또 같은해 6월 23일 ‘사제 성화의 날’ 행사에서는 공개적으로 ‘사후 장기 기증’ 서약서를 썼다. 당시 정 추기경을 따라 교구 사제 600여 명이 사후 장기 기증에 동참했다. 이후 2008년에는 생명 존중에 대한 업적을 기리는 ‘생명의 신비상’을 제정했다.

정진석 추기경이 1972년 6월 4일 청주교구장 시절 진천본당 사목방문을 하고 있다. 청주교구 제공

2004년 6월 23일 재미 청소년들에게 환한 미소로 묵주를 선물하고 있는 정진석 추기경.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서울대교구장 착좌식이 거행된 1998년 6월 29일 정진석 추기경이 전임 교구장 김수환 추기경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2002년 3월 3일 청년성서모임 창립 30주년 기념행사에서 봉사자들에게 배지를 수여하고 있는 정진석 추기경.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2006년 8월 정진석 추기경이 수필집에 사인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 “여러분과 있으니 저도 젊어지는 느낌입니다~ 허허~”

김수환 추기경 이후 37년 만에 한국의 두 번째 추기경으로 서임된 정 추기경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봉헌하는 삶을 살아왔다. ‘예의 바르고 책상에 앉아 매년 책 한두 권을 집필하는 학자’라는 소문과 달리 그냥 자리만 차지하는 추기경이 되지 않기 위해 특유의 부지런함으로 깨어 있었다.

그는 1998년 서울대교구장 착좌 이래 본당 75개를 설립하고 ▲지구 중심 사목 ▲소공동체 운동 활성화 ▲유아·청소년·청년사목 활성화 ▲교구장 대리제도 시행 ▲의정부교구 설정 등 다양한 변화와 쇄신을 주도했다.

특히 사제서품 후 두 번째 부임지인 소신학교 교사 시절, 어린 학생들을 보면 무장해제됐던 그는 서울대교구장이 된 후에도 젊은이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갔다.

정 추기경은 2005년 교구 교육국 명칭을 ‘청소년국’으로 변경하며 유아부터 청년까지 아우르는 통합 사목의 물꼬를 텄다. 또 청소년 문화 공간 ‘주’(JU·Jesus loves you)를 개관하는 등 청소년 사목을 강화하기 위한 문화 사업도 지속적으로 추진했다.

2007년 제주도에서 열린 제1회 한국 청년대회 축제 미사 당시 유명한 일화도 있다. 미사 말미에 “두려워하지 말고 청하라”며 청년들을 북돋았던 정 추기경이 “여러분과 함께 있으니 저도 젊어지는 느낌”이라고 소리치자 당시 젊은이들이 손뼉 치며 큰 소리로 “오빠, 오빠!”라고 화답해 웃음바다가 됐다는 것.

젊은이들을 향한 그의 뜨거운 마음은 최근까지도 이어졌다. 정 추기경은 지난 2월 서울성모병원에 입원한 이후 통장 잔액을 그의 비서를 지낸 조영관 신부(서울 동성고등학교 교장)를 통해 교구 예비 신학생들을 위한 장학금, 청소년 신앙교육 등에 기부했다.

한편 한반도 평화에 대한 혜안도 남달랐던 정 추기경은 경기도 파주에 참회와속죄의 성당과 민족화해센터를 건립했으며, 이후 지속적으로 진정한 한반도 평화와 함께 이 땅에 진정한 의미의 복음화가 진전되기를 강조했다.

성슬기 기자 chiar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