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세상살이 신앙살이] (578) ‘세상에! 문명의 덕을 보다니…’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21-03-30 수정일 2021-03-30 발행일 2021-04-04 제 3238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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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제주도에 사는 동네 동생 부부가 콜라비(양배추과에 속하는 채소) 한 상자를 보내왔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깎아도 먹고, 장아찌도 담가 두었습니다. 제주도에 출장가신 형제님은 갈치를 보내 주셨고, 어떤 분은 강원도에서 감자만두를 보내 주셨습니다. 또 다른 분은 춘천 닭갈비와 양곱창 찌개를 택배로 보내 주시기도 했습니다.

어떤 형제님은 며느리 집이 ‘포항’이라면서 그 지역 명물인 과메기를 보내주신 적이 있었고, 어떤 자매님은 통영에서, 제철이라며 굴과 가리비를 보내 주셨습니다. 또 다른 지인 분은 귤과 한라봉 등을 보내 주셨습니다. 밑반찬과 냉동식품 등을 보내 주신 분도 있어서 잘 먹곤 했습니다. 그렇게 귀한 먹거리를 선물 받으면, 그날 저녁부터 며칠 동안은 함께 사는 세 명의 형제들과 주식 혹은 부식으로 풍요롭게 먹곤 했습니다.

이곳 수도원은 총본부에서 어떤 지원도 없이 자급자족을 해서 살아가는 공동체입니다. 또한 수도원 주변에는 재래시장이 없고, 작은 마트가 하나 있지만 물건들이 좀 비싼 편입니다. 각종 생필품을 사러 시장에 가려면 고창이나 정읍에 가거나, 혹은 영광까지 나가곤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변에서 쉽게 살 수 없는 것들, 특히 지역 특산품이나 형제들이 쉽게 만들 수 없는 반찬 등을 이처럼 택배로 선물을 받으면 기쁜 마음만큼이나 생활에도 여러 가지 이점도 있습니다. 우선 가계부에서 주식비가 절약될 뿐 아니라, 부식비까지 아낄 수 있기에 궁극적으로는 한 달 살림살이에 큰 도움이 됩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무작정 택배로 선물을 받을 때마다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음식을 보내주신 분들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개갑장터성지나 혹은 심원공소의 사정이나 형편을 전혀 모르실텐데, 어떻게 알고 각종 반찬 등의 음식을 선물로 보내 주시는 것일까! 평소 지인이나 은인들로부터 안부를 묻는 연락이 오면, 나는 아무런 불편함 없이 잘 먹고 잘 지낸다고 말했는데, 과연 내가 살고 있는 사정을 어떻게 알고 있는 것일까!

우연한 기회에 그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평소 귀한 음식을 선물해 주신 분들에게 감사 문자를 보냈는데, 그날은 직접 전화를 걸어서 물었습니다.

“형제님, 보내주신 귀한 음식 잘 받았어요. 그런데 묻고 싶은 것이 있는데, 혹시 제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다 알고 이리 음식을 보내 주신 거예요?”

“아이, 신부님, 여기서도 다 알아요.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예에? 그걸 어떻게 알아요?”

“우선, 인터넷으로 신부님 살고 있는 주소를 검색해 보면, 성지와 공소 모습이 생생하게 다 나와요. 항공사진으로도 볼 수 있고요, 도로 사진으로는 더 자세히 나와 있답니다. 그래서 봤더니, 그 공소 주변은 온통 논밭이고, 그 가운데 공소 건물 하나가 달랑 있더라고요. 그리고 성지도 살펴봤더니 조형물이나 십자가의 길 등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요, 주변에는 음식점이나 상점, 혹은 물건 하나 제대로 살 수 없는 걸 알게 됐죠. 신부님, 부담 갖지 마시고요, 그냥 그곳에서 신부님 잘 드시고 힘내시라고 응원하는 마음으로 보내는 거예요. 그리고 건강, 꼭 챙기시고요.”

세상에! 내가 이리도 문명의 덕을 보다니. 나처럼 컴맹인 사람이 인터넷의 도움을 받아서 먹고 살고 있으니! 그러다가도 문득, 문명의 덕은 보지만 변하지 않아야 하는 건 ‘귀한 선물을 주신 분들에 대한 기도 빚’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세상이 아무리 발달했다 하더라도, 인간이 인간에게 고마움과 감사함을 전하는 것, 그리고 기도로 그 은혜를 갚는 것은 2000년 교회 역사 안에서 바뀌지 않아야 할 진리입니다. 암튼 문명의 덕을 봐서 좋기는 한데, 기도의 빚은 날로 늘어만 가는 그런 마음입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