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생활 속 영성 이야기] (63) 하느님의 계획 안에 있는 자녀들

고유경 (헬레나·ME 한국협의회 총무 분과 대표),
입력일 2021-03-30 수정일 2021-03-30 발행일 2021-04-04 제 3238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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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통해 주님께서 하실 일을 기대하며…

종종 “어떻게 그렇게 아이들을 잘 키워요?”라는 질문을 듣는다. 그렇게 묻는 이유는 아마도 우리 아이들 넷 모두가 사랑스러운 청년으로 자랐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아이들이 큰 탈 없이 자라 준 것만으로도 감사한다. 우리 아이들이 특별히 사회적으로 성공한 것도 아니고 아직은 어떤 멋진 결실을 거둔 것도 아닌데 잘 키웠다고 하는 이유는 모두 순하고 착하고 나름대로 자기 길을 잘 가고 있기 때문이다. 부모가 크게 애쓴 것 같지도 않은데 아이들이 순탄하게 잘 컸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아이들과 큰 갈등도 없고, 사교육을 열심히 시킨 것도 아니고, 부모가 아이들 교육에 전념한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데 아이들이 대학도 잘 가고 취업도 잘하는 것을 보고 신기해하는 시선도 있는 것 같다. 어느 부모가 자녀 교육에 신경을 쓰지 않을까마는 요즘 자녀 교육이나 입시에 신경 쓰고 투자하는 부모들에 비하면 사실 나는 아무것도 한 게 없다.

나도 한때는 아이의 성적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점수에 일희일비하던 때가 있었다. 아이의 성적이 내 성적처럼 생각되어 좋은 성적을 받아오면 우쭐해지고 성적이 떨어지면 기가 죽기도 했다. 큰아이는 그런 내 태도 때문에 상처도 많이 받았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전교에서 2등을 한 적이 있다. 그때는 너무 자랑스러워 만나는 사람마다 얘기하고 싶을 정도였다. 아이가 이제 우등생의 길로 접어들었고 이제 전교 1등 하는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다시는 그 성적을 받아오지 않았다. 그런데도 내 마음속의 기준은 변함없이 ‘전교 2등’이었다. 어떤 성적을 받아 와도 그 성적에 미치지 않으면 만족스럽지 않았다. 내가 욕심을 부릴수록 아이의 성적은 점점 떨어졌고 나는 노력하지 않는 아이에 대해 늘 불만스러웠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아이가 사제가 될 거라면 지금처럼 성적만 가지고 씨름하는 게 맞을까? 공부만 잘해서는 좋은 사제가 될 수 없을 텐데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짓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하느님께서 이 아이에게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신지도 모르면서 내가 이렇게 일방적으로 아이의 자존감을 짓밟아 가며 ‘공부 기계’로 키워도 될까? 아니었다.

그때부터 아이들에 대한 나의 태도가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아이는 내가 마음대로 주물러도 되는 찰흙이 아니라 하느님이 이 아이를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뜻이 분명히 있는 소중한 존재로 여겨졌고, 내 뜻보다 아이의 생각을 존중하고 성적으로 아이의 존재를 평가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아이에게는 이렇게 말했다. “하느님은 너에게 많은 재능을 주셨어. 그런 재능은 하느님이 이 땅에서 너를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일이 있기 때문에 네게 주신 거야. 그런 걸 소명이라고 해. 너는 어른이 될 때까지 네가 받은 재능을 잘 키워야 해. 너의 게으름이나 나쁜 습관 때문에 그 재능을 키우지 않는다면 그건 하느님의 계획을 거스르는 일이 될 거야.”

그때부터 아이들을 키우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하느님의 계획이었다. 능력만을 중시하다 보면 안하무인이 될 수도 있으니 남을 배려하고 주위를 두루 살피는 사람이 되길 바랐다. 알 수 없는 미래를 살아갈 아이들이 내 기준대로 살게 해서는 안 되겠기에 최대한 그들의 자유를 존중하며 뭐든 스스로 하도록 했다. 내가 앞서가지 않고 뒤에서 지켜보려고 했다.

부모가 할 일은 아이들이 스스로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알도록 하고, 하느님에 대한 신앙을 심어 주는 것으로 생각하며 키웠지만, 물리학을 공부하는 셋째 아이는 하느님은 없다고 선언했고 막내는 성당에 잘 가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의 상황과 생각, 판단 안에도 하느님이 함께하실 거라 믿고 기다리며 기도하고 있다. 하느님의 계획이 다 있을 테니까.

고유경 (헬레나·ME 한국협의회 총무 분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