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교회

[글로벌칼럼] (78) 이 또한 지나가리라 / 윌리엄 그림 신부

윌리엄 그림 신부 (메리놀 외방전교회),메리놀 외방전교회 사제로서 일본 도쿄를 중심으로
입력일 2021-03-30 수정일 2021-03-31 발행일 2021-04-04 제 3238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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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 시작된 오랜 사순 시기 새로운 삶을 위해 보내고 있나
주님 더 깊이 알 수 있도록 기도하고 복음 읽는 노력이나 새로운 것을 배우는 데 써야

여기 일본에는 집 밖을 나서면, 75년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도시가 나온다. 물론 일본 지도에는 도쿄라는 지명이 있었지만, 당시 이 땅에는 이 이름을 상징할 만한 그 어떤 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몇몇 불탄 콘크리트 구조물 외에는 건물이 거의 없었다. 95㎞ 떨어져 있는 후지산은 어디서나 볼 수 있었고, 한때 목조 건물로 가득했던 대도시는 재만 남아 있었다. 집도 가게도 없었고, 먹을 것과 일자리도 없었다. 학교도 없었고, 나무도 없었다. 병원도 거의 없었고, 약도 없었다. 희망도 없었고, 오직 죽음과 공포만 남아 있었다.

오늘날 도쿄는 세계적인 대도시가 됐고, 후지산은 건물의 높은 층, 마천루의 전망대에서만 볼 수 있다.

10년 전, 일본 본토 동북부에 역사상 최악의 지진이 발생했다. 이 지진과 이어진 쓰나미는 도시들을 파괴했고 핵발전소도 폭발했다. 대지진으로 거의 2만 명이 죽었다.

지진이 일어나고 몇 주 뒤, 한 할머니가 그날의 일을 나에게 말해줬다. “지진이 일어나고 나서 창밖을 바라보니 한 이웃이 있었어요. 늙은이들 하는 게 다 그렇지. 그 사람은 벌써 정원에 나가 지진으로 쓰러진 화분을 정리하고 있었죠. 그는 이곳 출신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쓰나미는 생각도 못했죠. 저는 그에게 ‘그냥 놔둬요. 곧 쓰나미가 올 테니 나와 높은 곳으로 가요!’라고 소리쳤죠.”

“그래서 우리는 언덕으로 올라갔어요. 우리 집들이 서로 뒤엉켜 마치 무용수처럼 춤추며 바다로 휩쓸려 가는 모습이 예쁘기도 하고 재밌기도 했어요.” 그 할머니는 웃으며 이렇게 이야기했다.

지난 3월 11일은 이 지진이 일어난 지 10주년이 되는 날이자, 세계보건기구가 코로나19 대유행을 선언한 지 1주년 되는 날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최근의 재난으로 ‘じしゅく’(자숙)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배우게 됐다. 스스로 조절하고 격리한다는 말이다. 나에게 이 용어는 1년 동안 내가 먹은 것은 대부분 내가 요리한 음식이었으며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는 것이 나의 유일한 외출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많은 이들에게 이 용어는 질병과 죽음,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 경제적 재난, 정신 질환, 격리로 인한 가정 폭력, 교육 기회 박탈, 사회적·종교적 삶의 축소 등을 의미한다.

때때로 나는 나 자신에게 미안하다고 느낀다. 격리와 제한된 먹거리는 분명 우울한 경험이기 때문이다. 이럴 때면 나는 바로 수세기에 걸쳐 더 힘든 고통을 견뎌온 이들을 생각하며 참아냈다. 오늘날 다른 이들은 더 힘든 일을 겪고 있다. ‘견뎌내자’가 내 새로운 좌우명이 됐다.

인류는 재난에 굴하지 않았다. 우리는 이번 코로나19 대유행보다 더 고통스러운 재난에서도 살아남았다. 고전 영시 중 ‘데오르’(Deor)라는 시가 있는데, 이 시에는 다양한 재난들이 나온다. 각 시구 뒤에는 ‘그것은 지나갔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Þæs ofereode, þisses swa mæg)라는 후렴이 나온다.

역사는 우리에게 우리가 어쨌든 이 위기를 헤쳐 나간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우리가 바뀔 수도 있고,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 우리는 마음과 영혼에 상처를 입고 무덤에 갈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계속 나아갈 것이다. 그 할머니처럼 우리는 많은 희생에도 웃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면, 우리 신자들에게 이 역사상 가장 긴 사순 시기는 어떤 의미를 주는가?

우리의 공동체 미사는 축소되거나 금지됐다. 본당은 재정난을 겪고 있다. 사람들은 함께 외출하는 일을 피하고 있으며, 많은 이들은 다시는 이러한 외출을 할 수 없을지 모른다. 폐쇄와 백신과 같은 안전 조치에 대응하며, 교회를 이끈다고 주장하는 어리석은 이들은 사람들을 교회로부터 떠나고 싶게 만들지도 모른다. 그리고 물론, 여느 재난 때와도 마찬가지로 보호와 치유를 요청하는 간절한 기도는 열매를 맺지 못했다.

올해 주님 부활 대축일은 4월 4일이지만, 우리는 1년 전 시작된 사순 시기가 올해 말 혹은 그 너머까지 이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 과연 우리는 이 사순 시기를 새로운 삶을 위해 유용하게 쓰고 있는가?

우리는 그동안 사순 시기에 선택했던 희생보다 더 많은 것을 포기해 왔다. 이러한 희생이 주님께서 함께 계시다는 ‘임마누엘’을 충분하게 생각하도록 하는가? 우리는 일상의 접촉과 활동을 멈췄다. 우리는 이 시간을 기도하거나 복음을 읽는 데 더 썼는가? 우리는 이 시간을 흥청망청 TV를 보는 데 썼는가? 아니면 읽고 사색하거나 좋은 음악을 듣거나 신앙과 세상, 우리 자신에 대해 새로운 것을 배우기 위해 썼는가?

우리는 대개 사순 시기를 마무리하며 성주간과 주님 부활 대축일을 준비하기 위해 고해성사를 본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 길고 긴 사순 시기가 끝나면 나는 주님을 더 깊이 알 수 있는 기회를 허비했다고 고백해야만 할 것이다. 너무나도 자주 주님께서 지금 여기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것을 잊었다. 너무나도 자주 자기연민과 권태에 빠져 나의 사고와 감정을 제어하지 못했다.

그리고 너무나도 자주 이 말을 잊어버렸다. “그것은 지나갔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윌리엄 그림 신부 (메리놀 외방전교회),메리놀 외방전교회 사제로서 일본 도쿄를 중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