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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말고도 부활한 이가 있다? 성경 속 되살아난 사람들

이승훈 기자
입력일 2021-03-30 수정일 2021-03-30 발행일 2021-04-04 제 3238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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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생’한 이들 많지만 영원한 생명 얻는 부활과 달라
죽은 이 되살아나는 기적 하느님의 권능 드러내지만 잠시 죽음에서 벗어났을 뿐 예수님 부활과는 구별해야
세례 받은 그리스도인 모두가 날마다 부활의 삶 살아가며 다가올 완성 향해 나아가야

주님 부활 대축일을 맞는 우리는 전례 시기 중 가장 성대하게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며 기쁨을 나눈다. 우리는 신경을 통해 그리스도가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부활하심’과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 역시 ‘육신의 부활’에 참여하게 될 것에 대한 믿음을 고백한다. 그런데 성경을 읽다 보면 그리스도 외에도 되살아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그들의 이야기를 만나 보자.

■ 성경 속 되살아난 사람들

죽었다 다시 살아나는 기적은 구약성경에서부터 등장한다. 그것도 한두 건이 아니다. 엘리야 예언자는 사렙타 지방의 과부가 사는 집에서 머물고 있을 때 과부의 아들이 죽자 하느님께 기도했고, 아이가 살아났다.(1열왕 17,8-24) 엘리사 예언자도 수넴 지역에서 한 여인이 간절히 청하자 주님께 기도하고 죽은 아이의 침상에 올라 자신의 입·눈·손을 아이의 입·눈·손에 맞추고 그 위에 엎드리자 아이의 몸이 따듯해졌고 마침내 여인의 아들이 살아났다.(2열왕 4,8-37) 심지어 죽은 엘리사 예언자의 뼈에 닿은 주검들이 다시 살아나서 제 발로 일어서는 일화도 등장한다.(2열왕 13,14-21)

사람이 되살아나는 기적은 신약성경 사도들의 행적에서도 찾을 수 있다. 베드로 사도는 요빠에서 병 들어 죽은 타비타라는 여신도에게 “타비타, 일어나시오”라고 말하자 타비타는 눈을 뜨고 베드로 사도를 바라보며 일어나 앉았다.(사도 9,36-41) 바오로 사도도 3층 높이에서 떨어져 죽은 에우티코스를 되살렸다. 사람들이 떨어진 에우티코스를 일으켜 보니 이미 죽어 있었지만, 바오로 사도는 “걱정하지들 마십시오. 살았습니다”라고 말했고, 청년 에우티코스는 살아났다.(사도 20,7-12)

죽은 이를 되살리는 기적이라면 역시 예수가 보여 준 기적을 빼고 생각할 수 없다. 예수는 공생활 중 나인이라는 고을에서 외아들을 잃은 과부를 보고 가엾은 마음이 들어 과부의 외아들을 되살렸고,(루카 7,11-17) 회당장 야이로의 딸도 죽음에서 일으켰다.(마태 9,18-26, 마르 5,21-43, 루카 8,40-56) 예수가 마르타와 마리아의 오빠 라자로를 다시 살린 기적도 유명하다.(요한 11,38-44)

후안 데 플란데스 ‘라자로의 부활’(1510-1518년). 성경 속 죽은 이가 되살아난 사건은 위대한 기적이기는 하지만, 결국 소생일 뿐이다. 그러나 세례를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묻히고, 함께 부활한다.

■ 부활인 듯, 부활 아닌, 부활 같은 ‘소생’

이쯤 되면 되살아나는 기적이 이렇게 흔해도 되는 것인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우리가 전례 시기 중 그리스도의 부활을 가장 중요하고 성대하게 기념하고 있을 뿐 아니라 믿음으로 고백하고, 또 희망하고 있기에 더욱 그렇다.

혹자는 그리스도는 스스로 부활하셨고, 나머지는 하느님께서 되살리신 것이니 다른 것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다. 물론 옳은 말이다. 실제로 성경에도 예언자들과 사도들이 이런 기적을 행하기 전에 기도했다는 묘사가 있고, 기적의 주체도 예언자나 사도가 아닌 하느님으로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부활은 단순히 죽었다가 되살아나는 사건 그 이상의 것이다. 되살아나는 다른 사건들과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죽었다가 살아난 일은 분명 기적적인 사건들이지만, 하느님의 권능으로, 혹은 예수의 권능으로 지상의 삶을 되찾은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이들은 때가 되면 결국 다시 죽게 된다.

반면 그리스도의 부활은 ‘부활한 육신’으로 ‘죽음의 상태에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다른 생명의 세계로 넘어간’ 사건이다. 예수의 몸은 부활을 통해 성령의 권능으로 충만해졌을 뿐 아니라 그 영광스러운 상태로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한다.(「가톨릭교회 교리서」 646항) 그래서 여러 신학자들은 성경 속에서 죽은 이가 살아난 사건을 그리스도의 부활과 구분하기 위해 ‘소생’(蘇生)이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한다.

성경학자 이영헌 신부(광주대교구 원로사목자)는 “소생은 죽음에서 잠시 벗어났을 뿐 죽음을 이겨낸 것은 아니다”라며 “예수님의 부활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신부는 “예언자나 사도들이 행한 소생 사건은 하느님의 힘을 통해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기적이고, 예수님이 일으킨 소생 기적은 예수님의 부활을 미리 보여 주시는 예표(豫表)라고 볼 수 있다”고 부연했다.

■ 그리고 또 부활한 사람들

성경 속 되살아난 사건은 위대한 기적이기는 하지만, 결국 소생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리스도 말고도 부활한 사람들이 또 있다. 성경은 그리스도처럼 부활한 사람들이 또 있다고 말한다. 바로 세례를 받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다.

“그리스도 예수님과 하나 되는 세례를 받은 우리가 모두 그분의 죽음과 하나 되는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모릅니까? 과연 우리는 그분의 죽음과 하나 되는 세례를 통하여 그분과 함께 묻혔습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을 통하여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로마 6,3-4)

바오로 사도의 언급처럼 교회는 “세례를 통해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에 결합돼,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묻히고, 함께 부활한다”고 가르친다.(제2차 바티칸공의회 「전례헌장」 6항) 그렇기에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가 부활한 ‘여덟 번째 날’인 ‘일요일’을 주일로서 거룩하게 보내고, 주님 부활 대축일을 가장 큰 전례로 삼는 것이다. 세례성사 때에 부활초를 밝히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주님 부활 대축일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된다. 물론 그리스도를 통한 부활은 이미 이뤄졌지만, 우리는 아직 오지 않은 완성을 기다리고 있다. 성경의 말씀처럼 “앞으로 올 세상의 힘을 맛본”(히브 6,5) 셈이다. 세례로써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난 그리스도인들은 이제는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자기들을 위해 돌아가셨다가 되살아나신 분을 위해 살아감으로써 부활의 삶으로 나아갈 수 있다.(2코린 5,15)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