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교구 수도회 영성을 찾아서]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 - (상)

이주연 기자
입력일 2021-03-30 수정일 2021-03-30 발행일 2021-04-04 제 3238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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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자비 체험한 성 프란치스코
부유한 상인 아들이었지만 환시 체험 후 완전히 변화

프란치스코 성인이 호노리오 3세 교황으로부터 수도 규칙을 인준받는 장면.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 돈도 여행 보따리도 여벌 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말고 하느님 복음을 선포하라’.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 창설자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은 1208년 5월 14일 성 마티아 축일에 낭독된 사도들의 파견에 관한 복음을 들음으로써 자신이 걸어가야 할 성소의 길을 확신하게 된다. 성인은 ‘이것이 바로 내가 원하던 것이고, 온 정성을 기울여 하고 싶어 하던 바’라고 외쳤다. 또 이 말씀처럼 애긍을 청하며 살아가는 가난한 생활 안에서 하느님 나라와 회개를 선포하는 삶을 산다.

성인은 1181년 혹은 1182년 이탈리아 움브리아 지방의 소도시 아시시에서 태어났다. 도시가 형성되고 상업이 발달하던 시대적 상황 속에서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귀족처럼 자랐다. 당시 기사는 평민 신분을 벗어나 귀족 계급에 속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기사의 꿈을 키우던 성인은 전쟁에 참여해 1205년 이탈리아 남부 풀리아 원정군에 합류하기 위해 길을 가다가 스폴레토 계곡에서 주님의 환시를 체험하고 아시시로 돌아온다.

이후 평범한 생활을 하던 성인은 이전에 그렇게나 싫어하던 한센인을 만나 입을 맞추고 끌어안는 체험을 하게 된다. 그는 유언장에서 자신의 심리적인 변화를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주님께서는 나, 프란치스코 형제에게 그렇게 참회를 시작하게 하셨다. 내가 죄 중에 있을 때, 한센인을 보는 것이 너무 힘든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나를 그들 가운데로 인도하셨고 나는 그들에게 연민을 느꼈다. 내가 그들을 떠날 때, 나에게 불쾌하게 보였던 것이 영혼과 육체의 기쁨으로 바뀌었다.”

한센인을 만난 체험 후 성인은 그들과 함께 살면서 하느님의 자비를 체험하고 이를 통해 결정적인 회개 생활로 들어간다. 그리고 성 다미아노 성당에서 기도할 때, ‘프란치스코야, 보다시피 다 허물어져 가는 나의 집을 수리하여라’는 주님 음성을 듣고 무너진 성당을 수리한다. ‘허물어져 가는 집’이 회개하지 않는 인간과 타락한 교회를 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다음에는 인간의 마음과 교회 재건을 위해 세속을 떠나 일생을 투신한다.

그의 삶에 감동받은 동료 형제들이 생겨나게 됐고 성인은 그들과 함께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희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라는 말씀, 길을 떠날 때 아무것도 지니지 말라는 말씀,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는 말씀을 생활양식으로 삼았다. 또 동료들이 늘어나면서 간단한 생활양식을 기록해 1209년 인노첸시오 3세 교황에게 구두로 인준받았다. ‘작은 형제회’(Ordo Fratrum Minorum)라 불릴 수도회의 설립이었다. 호노리오 3세 교황은 1223년 11월 29일 칙서로 수도 규칙을 인준했다.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