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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에세이] 하느님께서 일러주신 길 / 오선주

오선주(루치아·제1대리구 진사리본당)
입력일 2021-03-30 수정일 2021-03-30 발행일 2021-04-04 제 3238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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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등학교 때 성악을 시작하며 성악가의 꿈을 키웠다. 하지만 그 길은 내 생각대로 좋은 길만은 아니었다. 대학교 때 만난 선생님은 인생 최악의 인연이었고, 나는 점점 ‘노래는 내 길이 아니구나’ 생각하며 졸업과 동시에 노래 포기선언을 해야 했다.

우연히 음악회 팸플릿에서 ‘교황청립 교회음악대학’라는 이름을 보았고 왠지 모르게 학교 이름이 나를 이끌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임신부님께 물어보니 바티칸에 있는 음악학교라고 하셨다. 바티칸이라는 소리에 나는 이 학교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려고 애를 썼지만 쉽게 찾을 수가 없었다.

어느 날 엄마가 주일미사에 다녀오셔서 새로 오신 주임신부님이 로마에서 공부하고 오셨다고 한번 만나보라고 하셨다. 신부님을 만나 ‘이런 학교가 있는데 아시느냐’고 물었더니 신부님께서 ‘성직자들 이외에는 이 학교에 대해 잘 모르는 데 평신도가 물으니 놀랍다’고 하시며 학교 정보를 알려주셨다. 나는 한 치의 고민도 없이 ‘내가 음악을 계속할 수 있는 길은 이 학교에 들어가는 것이다’ 생각하고 입학원서를 준비했다.

주교님 추천서를 비롯한 모든 서류는 주임신부님께서 준비해주셨고, 이미 다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처럼 서류들을 로마에 보내자마자 일이 일사천리 풀려나갔다. 나는 주교님 추천서 한 장으로 학교 기숙사에 들어갈 수 있었고 입학시험도 학교에서 준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교황청립 교회음악대학(Pontificio Istituto di Musica Sacra) 합창지휘과에 입학했다. 5년 과정의 학업을 마칠 때 즈음 다시 진로에 대해 생각해야 했다. 지휘 5년을 공부하면 어디에 명함을 내밀 수 있을까? 성악을 지금까지 공부했더라면 말이 달라지지만 지휘는 아니었다.

‘노래를 다시 시작 해야겠다’ 생각하고 고민하던 중 산타 체칠리아 국립음악원에서 유학 중이던 대학 후배가 바로크 성악과가 새로 개설되니 원서를 넣어보라고 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원서를 넣고 또 다시 새로운 도전을 하겠다고 시험을 쳤다. 운이 좋았는지 세계적으로 유명한 음악학교에 나는 당당히 입학을 했고 그동안의 노력에 대해 보상이라도 받듯이 바로크 음악의 대가와 공부를 할 수 있었다. 바로크 성악과 3년 과정을 마치고 ‘이젠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나’ 생각할 즈음, 선생님은 “바로크 성악 Licenza(대학원과정 정도)가 생기니 2년 더 공부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권유 하셨다. 기꺼이 Licencenza 과정까지 마치고 9년 반 동안의 유학 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내가 대학교 때 좋은 선생님을 만났더라면 교회 음악을 하려고 했을까?

구약의 요셉처럼 하느님께서 세우시는 최고의 자리에 힘들게 돌고 돌아 많은 것을 느끼게 하시고 그 믿음을 일깨워 주신 모습에 늘 생각한다. 나의 시간은 하느님의 시간과 다르고, 나의 계획은 하느님의 계획과는 다르다고….

오선주(루치아·제1대리구 진사리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