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각막이식 후 새 삶, 김춘호씨

민경화 기자
입력일 2021-03-30 수정일 2021-03-30 발행일 2021-04-04 제 3238호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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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한 기도에 부활 선물하신 주님”
 어릴 적 사고로 왼쪽 눈 실명
 나이 들어 오른쪽 시력 잃어
 고통 중에도 묵주 놓지 않아
“마음의 부활 향해 나아갈 것”

“눈이 보이고 나서 가장 먼저 파란 하늘을 올려다봤습니다. 하느님이 주신 선물들이 소중하고 아름답다는 것이 새삼 와 닿더군요. 다시 태어날 수 있어 참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김춘호(프란치스코·80·사진)씨는 일곱 살 때 사고로 왼쪽 눈을 잃었다. 한쪽 눈으로 생활했지만 장애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열심히 살았던 김씨. 하지만 예순이 넘은 나이에 또 다른 시련이 김씨의 앞을 가로막았다.

“일곱 살 때 어머니를 돕겠다고 장작을 옮기다 나뭇가지에 왼쪽 눈이 찔리는 사고를 당했어요. 산골 마을이다 보니 병원에 갈 엄두를 못 냈고,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해 완전히 앞을 못 보게 됐죠. 그래도 오른쪽 눈이 있기에 일상생활에 큰 문제는 없었어요. 글을 보는 일을 업으로 삼으면서도 일을 못 한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없었죠.”

잡지사 기자와 편집부장을 지내며 글을 쓰고 보는 일을 평생 해 온 김씨. 1962년 소설로 신춘문예로 등단한 뒤 시조 시인으로도 활동해 온 그에게 눈으로 보는 일은 삶의 전부와 같았다. 하지만 예순 살 무렵, 녹내장이 악화돼 오른쪽 눈의 시력마저 희미해지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30대 때 녹내장 진단을 받고 꾸준히 치료를 했지만 예순이 넘어서 급격히 악화가 되더니 앞이 뿌옇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점점 증상이 심해지다가 몇 년 뒤에는 아예 안 보이게 됐죠.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 눈앞에 펼쳐졌던 자연을 갑자기 볼 수 없게 된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오른쪽 눈의 시력마저 잃은 김씨의 삶은 온통 검은색이 됐다. 아침에 눈을 떠 씻고, 밥을 먹고, 산책을 하는 모든 일상에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자신에게 화가 났고 그 노여움은 가족들에게 돌아갔다. “평생 한쪽 눈만으로 살면서도 짜증이나 화가 난 적이 없었는데, 앞이 완전히 안 보이고 나니 감정을 추스르기가 어렵더군요. 그 감정을 가족들에게 표출하는 제 모습에 절망을 느끼며, 이럴 바에야 차라리 빨리 하늘나라로 갔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힘든 순간마다 의지가 돼준 것은 신앙이었다. 평소에 하루도 빼놓지 않던 묵주기도를 하는 손길은 더욱 간절해졌다. 김씨는 성모송 끝자락에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보면서만 갈 수 있게 빌어 주소서’라고 청했다. 그의 기도가 닿았을까? 2015년, 병원으로부터 각막을 기증받을 수 있다는 기적과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실명한 지 3년 만에 전해진 소식이었다.

“수술이 끝난 뒤 붕대를 풀고 천천히 눈을 떴는데 손가락 두 개가 왔다갔다 하는 게 보였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몇 개냐고 물으시길래 ‘두 개네요’라고 했죠. 잘 보이진 않았지만 옆에 있던 가족들이 눈물을 흘리며 흐느끼던 소리가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다.”

앞이 보이고 나서 그가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창문이었다. 새롭게 태어난 김씨를 축하하듯 그날의 하늘은 유난히 파랬다. 그리고 자신에게 각막을 준 기증자와 새 삶으로 인도해주신 하느님에 대한 감사함이 김씨의 가슴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하느님의 일을 실천하겠다’고 다짐했다. 김씨는 “하느님께서 제게 새 삶을 선물해 주셨으니 이제는 마음의 부활을 향해 노력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말했다.

민경화 기자 mk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