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말씀묵상] 십자가는 성덕의 길입니다

김창선(요한 세례자) 가톨릭영성독서지도사
입력일 2021-03-23 수정일 2021-03-24 발행일 2021-03-28 제 3237호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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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수난 성지 주일
제1독서(이사 50,4-7) 제2독서(필리 2,6-11) 복음(마르 14,1-15,47)
파스카 신비를 완성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 갖은 모욕과 박해도 이겨내고 주님께 온전히 자신을 봉헌하며 인간 구원 위해 십자가를 지셨네

성지를 손에 들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하느님의 아드님’, 우리 주님을 찬미합니다. “호산나, 호산나!” 오늘부터 시작되는 성주간 전례는 그리스도의 수난에 맑은 정신으로 동참하는 빛의 자녀에게 파스카 신비를 선사합니다.

이사야 예언자(기원전 8세기)는 ‘민족들의 빛’인 ‘주님의 종’을 노래합니다. 초대교회와 그리스도 전승에 따르면 그 셋째 노래(제1독서)는 하느님의 소명을 다하는 충실한 종이고, 주님을 신뢰하여 모든 모욕과 박해를 이겨내는 그리스도의 모습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초대교회 공동체들이 그리스도의 신비를 노래한 시편을 전합니다.(제2독서) 하느님과 같은 분이시면서도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십니다. 그들은 처음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주님이심을 고백하며, 성부께 영광을 드립니다.

오늘의 전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파스카 신비를 완성하시려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심을 기념합니다. 어린 나귀를 타고 들어오시는 길에 겉옷과 잎이 많은 나뭇가지를 깔며 환대합니다. 어린이들도 손에 올리브나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높은 데서 호산나!” 찬가를 부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기(마르코 복음 14~15장)는 종교 지도자들의 음모로 시작됩니다. 주님의 몸에 바르는 향유, 최후의 만찬, 겟세마니에서 고독한 기도, 유다의 배반과 베드로의 부인, 예수님의 체포와 심문, 주님의 침묵, 죽음 앞에 바친 기도가 주요 사건입니다.

오렌테 페드로 ‘예루살렘 입성’(1620)

예루살렘에서 조금 떨어진 베타니아에서 마리아(요한 12,3)는 수난이 임박한 주님의 몸에 나르드 향유를 바릅니다. 성유축성 미사로 그리스도의 향기가 세상에 풍깁니다.

성목요일, 예수님께서 죽음을 앞두고 제자들과 파스카 음식을 나눕니다. 양고기가 아닌 빵과 포도주를 들고 감사기도를 드리신 다음,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나누는 ‘최후의 만찬’입니다. 친히 ‘하느님의 어린양’이 되신 희생 제사는 재림 때까지 기억하는 감사 제사입니다.

마음이 괴로운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니로 가시어 제자들에게 ‘깨어 있어라’ 당부하고, 땅에 엎드려 ‘피땀을 흘리시며’(루카 22,44) 기도하십니다. “아빠! 아버지!”라 부르며 전능하신 성부께 수난의 잔을 거두어 달라고 청하십니다. 아버지의 뜻을 받들며 자신을 봉헌하는 기도입니다. “깨어 있으라!”는 당부의 말씀에도 제자들은 졸고 있습니다.

스승을 배신한 유다의 입맞춤에 칼과 몽둥이를 든 무리가 예수님을 체포합니다. 제자들은 스승을 버리고 달아나고, 으뜸 제자인 베드로도 새벽닭이 울기 전에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합니다. 그리스도는 고독한 인간의 죽음을 맞습니다.

대사제의 심문과정에 수많은 거짓 증언에도 예수님은 침묵하십니다. “당신이 메시아요?” 질문에만 “너희는 사람의 아들이 전능하신 분의 오른쪽에 앉아있는 것과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볼 것이다.”라고 대답하십니다. 사형선고를 내릴 권한이 없는 수석 사제들은 최고 회의와 의논 끝에 주님을 결박하여 빌라도에게 넘깁니다.

“당신이 유다인들의 임금이오?” 빌라도의 질문에, 예수님은 “네가 그렇게 말하고 있다.”라고 대답하신 뒤 계속 침묵하십니다. ‘호산나!’ 노래를 부른 군중들은 성금요일에 변덕을 부려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외쳐댑니다. 빌라도는 군중을 만족시키려고 채찍질과 십자가형을 내려 넘겨줍니다. 군사들은 주님께 가시관을 씌워 골고타(해골 터)로 갑니다.

공생활 초기부터 종교지도자들과 갈등을 겪으시면서도 반격의 거장이시던 예수님께서 좌우에 못 박힌 자들처럼 십자가에 못 박히십니다. 그들의 냉소적인 태도와 굴욕과 조롱을 끝까지 인내하시고, 거짓 증언과 빌라도의 물음에도 끝까지 침묵하십니다.

성금요일 오후 3시, 십자가상 주님은 “엘로이 엘로이 레마 사박타니?”(‘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 마르 15,34)” 큰 소리로 부르짖으시고 숨을 거두십니다<무릎을 꿇고 잠깐 묵상함>. 완전한 자기 비움(kenosis)으로 바치는 마지막 기도입니다.

침묵하시는 하느님은 듣고 계시고, 비극은 전환됩니다. 성전 휘장이 두 갈래로 찢어져 사람이 지은 성전이 아닌 ‘주님의 식탁’인 새 성전이 세워짐을 알립니다. 백인대장은 “참으로 이 사람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고백합니다. 마르코 복음의 시작(1,1)에 나오는 ‘하느님의 아드님’을 이방인이 증언함은 주님 수난의 첫 결실입니다.

적의 없는 주님의 십자가 희생 제사는 성부께 영광이 되고, 교회에는 친교와 사랑의 일치를 이루는 성사의 은총입니다.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마태 16,24; 마르 8, 34: 루카 9,23)은 우리의 사명입니다.

주님께 부끄러운 내면을 정화하고, 기도와 성사로 신심을 길러 온유와 겸손으로 사랑하는 삶이 기쁨이요 구원의 희망입니다.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아멘.

김창선(요한 세례자) 가톨릭영성독서지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