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기후 위기, 무너지는 지구환경] 기후 위기, 누구의 책임인가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21-03-23 수정일 2021-03-23 발행일 2021-03-28 제 3237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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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 탄소 배출 ‘먹튀’ 말고 ‘생태적 빚’ 갚아야
지금처럼 온실가스 배출하면 지구 생태계 전멸 위험 처해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 70%가 부유한 선진국에서 기인하지만 피해는 가난한 나라들에 집중
‘차등적 책임’ 올바로 인식하고 무너진 기후 정의 바로잡아야

전 세계 탄소 배출 주요 기업들에 대한 2017년 보고서(Carbon Majors Database)에 의하면, 1988년 이래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71%가 100개의 화석 연료 기업으로부터 나왔다. 사진은 코소보 오빌릭의 석탄발전소. CNS 자료사진

■ 사태는 긴박하다

기후 위기와 관련해서 안타까운 일은 좀 더 일찍 행동했다면 좀 더 쉽고 안전하게 위기에 대응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파국을 막기에, 우리는 이미 충분히 늦었다. 위기를 멈출 시간은 불과 10년이 채 남지 않았을지 모른다. 이는 비관적인 추정이 아니라 전 세계 과학자들의 엄정한 연구 결과다.

2018년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의 ‘지구 온난화 1.5도씨 특별 보고서’는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 기온 상승 폭을 1.5도 이내로 멈춰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서는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2010년 대비 45%로 감축하고 2050년까지는 인간이 배출한 만큼 다시 흡수해서 실질적 배출량을 순 제로(net-zero)로 만들어야 한다.

만약 인류가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지 않고 지금처럼 계속해서 배출할 경우, 2100년 지구 평균 기온은 1986~2005년 대비 2.6~4.8℃나 상승할 것으로 IPCC는 예상했다. 이 정도면 지구 생태계는 전멸 위험에 처한다.

■ 누구 책임인가?

누가 상황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을까? 지구 생태계의 비상 상황을 누가 책임져야 할까? ‘공동의 집’을 망가뜨린 책임을 어느 한 나라나 기관, 조직, 사람에게 묻기는 힘들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누구의 책임인지를 따져 묻는 것 자체가 소용없는 일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또한, 누군가가 온실 가스를 배출했다고 해서 꼭 그만큼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예컨대, 깨끗한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전기를 얻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디젤 발전기를 사용했고 탄소를 배출했다고 해서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아마존강 유역 원주민들이 생존을 위해 벌채를 했다고 해서 산림 파괴의 책임을 물을 수도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후 위기의 책임을 따져 보는 일은 필요하다. 왜냐하면,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더욱이 많은 연구와 지각 있는 이들은 기후 위기에도 분명히 ‘불평등’이 존재하며, 따라서 이는 윤리, 나아가 정의의 문제라고 지적한다.

■ 불평등 구조

탄소 배출량이 책임의 양과 그대로 비례한다고 하지 않더라도 누가 더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했는지 따져 볼 만하다.

온실가스 배출량은 선진국, 부유한 나라가 압도적이다. 1951년 이래 전체 배출량의 4분의 1이 미국에서 나왔다. 사하라 사막 이남에 거주하는 10억 명이 배출하는 양은 미국 인구 평균의 20분의 1에 불과하다. 세계 인구의 20%인 선진국 사람들은 지구 자원의 86%를 소비하고, 전체 온실가스의 70%를 배출하지만 피해는 온실가스의 3%만 배출하는 가난한 나라들에 집중된다.

1992년 최초의 기후변화협약은 국가마다 탄소 배출에 대한 책임이 다르고 향후 배출량을 줄일 수 있는 능력이 다르다는 원칙을 확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도 각국은 탄소 배출 책임을 지는 데에 있어서 공정한 태도를 지키지 않고 있다. 2015년 파리협약에서는 지구 온도 상승을 2도 이하로 제한하면서, 1.5도 이하가 되도록 노력하기로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성과는 별반 없다.

배출량을 계층으로 나눠 봐도 불평등 구조는 명백하다. 옥스팜과 스톡홀름 환경연구소의 2020년 보고서 ‘탄소불평등에 직면하다? 기후정의, 코로나19 위기 극복의 핵심’에 의하면, 1990년부터 2015년까지의 탄소 배출량 중 전 세계 인구의 가장 부유한 상위 10%가 누적 탄소배출량의 52%, 최상위 1%의 부유층은 15%의 누적 탄소배출량에 책임이 있다. 반면 하위 50% 빈곤층의 책임은 오직 누적 탄소배출량의 7%에 불과하다. 이는 결국 탄소 배출이 부유한 사람들의 소비 확대를 위해 이뤄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석유와 석탄 등 화석 연료를 추출하고 사용하는 기업들은 기후 위기에 대한 대응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전 세계 탄소 배출 주요 기업들에 대한 2017년 보고서(Carbon Majors Database)에 의하면, 1988년 이래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71%가 100개의 화석 연료 기업으로부터 나왔다.

기업들은 탄소 배출에만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져야 할 책임을 회피하고 여론을 호도하기 위한 다양한 홍보 활동을 효과적으로 펼쳐 왔다. 2015년 미국 웹사이트 ‘인사이드 클라이밋 뉴스’(Inside Climate News)는 석유회사 엑손이 수십 년간 기후변화에 대해 알고 있었고 배출가스 감축 대책을 저지해 왔다고 폭로했다.

과학자들이 기후 위기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기 시작하면서, 화석 연료 기업들은 과학자들의 논거에 의문을 제기하고 공격함으로써 여론을 호도했다.

기후 위기의 큰 책임은 이윤 창출을 위해 막대한 양의 탄소를 배출하는 소수 기업과 부유한 사람들과 부유한 나라들에게 있다고 볼 수 있다.

■ 기후 정의

지난해 10월 ‘유엔재난위험경감사무국’(UNDRR)이 발간한 ‘2000~2019년 세계 재해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년 동안 전 세계에서 7384건의 자연재해가 발생해 40억 명이 피해를 입고, 매년 6만 명이 재해로 목숨을 잃었다.

이 같은 재난재해로 인해 목숨을 잃은 사람의 수가 선진국에 비해 저소득국가에서 무려 4배나 많다. 재난재해는 사회적 안전망이 부족하고 재난과 재해에 대비할 수 있는 자원을 갖고 있지 못한 가난한 사람과 나라들에 더 큰 피해를 줄 수밖에 없다.

재난 상황뿐만 아니라, 기후 위기는 국가 간의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스탠퍼드대 연구진이 2019년 발표한 논문에 의하면, 기후변화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들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을 17~31% 감소시킨 반면, 선진국의 국내총생산은 10%나 더 증가시켰다. 기후 위기가 가난한 나라와 부자 나라 사이의 간극이 좁아지는 것을 가로막았다. 선진국이 유발한 기후 위기가 국가 간 불평등 구조를 더욱 공고하게 만들었다.

■ 우리들의 책임은?

이와 관련해 가톨릭교회는 “우리는 기후 변화에 관하여 ‘차등적 책임’이 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인식해야 한다”(「찬미받으소서」 52항)고 말하면서 ‘생태적 빚’을 지적한다. 특히 교회는 환경 파괴에 대해 큰 책임이 없는 사람들이 오히려 그로 인한 감당할 수 없는 피해를 입고 있는 현실을 개탄한다.

그렇다면, 이처럼 거대 기업과 부유한 나라와 사람들에 의해 무너진 기후 정의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특히 개인적으로, 아주 미미한 탄소를 배출할 뿐인 개인들의 노력은 기후 위기에 대한 대응에서 어떤 의미가 있을까?

기후 위기에 대한 대응에서 우리 모두, 개인들이 자기 몫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은 사실 적지 않은 위험성을 갖고 있다. 자기 이익을 위해서 정의롭지 않게 지구 환경을 파괴하는 이들의 책임을 가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국가 간 협의에서도 마찬가지다. 기후 위기에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나라들이 사실 기후 체제의 형성에 가장 큰 영향력을 갖고 있다. 미국이 파리 기후협약을 탈퇴한 것은 그 가장 극명한 사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기후 행동은 개인을 뛰어넘는 변화를 끌어낼 수 있다. 스웨덴의 한 소녀, 그레타 툰베리는 이를 증명했다. 그가 시작한 기후 행동은 전 세계에 기후 위기에 대한 무거운 메시지를 던졌다.

한 사람의 행동은 다른 이를 이끌고, 이끌어진 사람들은 또 다른 사람들을 이끈다. 나의 행동이 가족과 친구를 이끌고 정부와 기업에게 대책을 마련할 생각을 갖게 한다. 그것만으로도 개인의 노력은 절대적으로 필요해 보인다.

박영호 기자 young@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