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밀알 하나] 장지동성당 연가(牆枝洞聖堂 戀歌) 6 - 고해(苦海), 고해(告解), 고해(高咳) / 정연혁 신부

정연혁 신부(제2대리구 장지동본당 주임)
입력일 2021-03-23 수정일 2021-03-23 발행일 2021-03-28 제 3237호 3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바야흐로 때는 판공성사의 계절입니다. 부활 판공 때에는 가정들을 방문해 다시 축복하고 가족들을 만나고 저녁에 한 집에 모여 고해성사와 미사를 봉헌하는데, 작년과 올해는 그렇게 못했습니다. 신설 본당으로서는 큰 타격입니다. 공동체를 처음 형성해 나가는 과정에 장애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성당에서 판공을 구역별로 치르고 있습니다. 구역별로 모여 먼저 구·반장님들이 신자들 동향을 저와 확인하고 개인 고해성사와 미사를 거행합니다. 봉사자분들께 정말 감사한 시간입니다.

신부가 되니 “‘사는 게 죄죠!’라는 말을 고해성사 때 어르신들로부터 들을 경우가 있을 것”이라며 선배 신부님들이 우스갯소리로 해 주셨는데, 사실 많이 듣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광주시에서 만 5년을 넘게 지내는 동안 정말 많이 들었습니다. 인생은 고해(苦海)인 것은 누구나 다 압니다. 삶이 힘들지요. 제가 부언하지 않아도 이것은 만고의 진리입니다. 지난주인가 구역 판공 직전에 부탁했습니다. “이번에는 ‘사는 게 죄죠!’라는 말씀은 안 해주시면 좋겠다”고요. 그런데 그런 게 어디 있습니까, 영락없이 그날도….

아이들 눈을 봅니다. 까만 눈동자 뒤에 수정체가 있다고 하지요. 수정체라는 말은 맑아서 생긴 이름이겠지요. 그 아이들 눈을 들여다보면 많은 것들의 본 모습이 보입니다. 거울에 비추어보면 우리의 단면과 보이는 부분만 보이지만 아이들 눈을 들여다보면 시간을 넘고 생각의 벽을 넘고 지금까지 쌓아온 경험에 의한 확신을 넘어서는 것들이 보입니다. 그러다가 아이들 특히 아기들이 웃는 모습을 보면 이 세상에서 더 없이 가장 고귀한 삶의 의미가 보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그들의 웃음이 가장 고상한 웃음, 고해(高咳)일 듯합니다.

어린아이 눈을 쳐다보다가 인생을 봅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생명인데, 우리가 우리 고유의 것이라고 믿는 우리의 생명도 받은 것입니다. 그렇게 시작해서 생각해 보면 이 세상에 산다는 것 자체가 계속 빚을 지면서 다른 사람들과 살아가는 것이지요. 이렇게 쓰다 보니 김용택 시인의 ‘섬진강 5’의 마지막 연이 생각납니다. “… 이 땅에 빚진 착한 목숨 하나로 우리 서 있을 일이다.”

세상이 발전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살기 위해 배울 일, 할 일도 많아지고 있고 우리는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또한 합리적으로 변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삶의 고갱이인 형이상학적인 가치들보다 개인주의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입니다. 그러다 보니 어린이의 고상하고 맑은 웃음이 가르쳐주는, 그들의 눈이 가르쳐주는 인간이 누구인지, 인생이란 무엇인지,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혹시 못 볼 가능성이 높아졌지요. 그렇다면 계속 고해(苦海)의 연속일 것입니다. 고해성사는 아픔을 말로 표현함으로(告) 해결하는 것(解)입니다. 많은 분들이 다른 차원의 고해성사를 올해 보게 되기 바랍니다. 고해(高咳)에서 하느님의 미소를 배우며.

정연혁 신부(제2대리구 장지동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