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신앙에세이] 성모님의 초대장 / 오선주

오선주(루치아·제1대리구 진사리본당)
입력일 2021-03-23 수정일 2021-03-23 발행일 2021-03-28 제 3237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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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산타 체칠리아 국립음악원 재학 중 3년 과정인 Baccalaureata (대학과정 정도)를 마치고 불현듯 프랑스 루르드에 가고 싶어졌다.

주변 친구들은 ‘거기 뭐가 있는데 가느냐’, ‘시험 끝났으면 더 재밌는데 가라’, ‘수녀 되려고 그러냐’ 등 온갖 유혹으로 가는 걸 방해했지만, 난 이때가 아니면 기회가 없을 것 같아서 과감히 비행기표를 끊었다. 혼자 떠나는 여행이 처음이라 공항에서부터 루르드까지의 여정이 걱정되었지만 무사히 루르드 역에 도착했다.

미리 연락 드렸던 수녀님과 만나 성지 입구에 도착하자 높게 뻗어 계신 성모님께서 나를 반겨주셨다. 수녀님께서는 성모님께서 초대해주신 분들만 이곳 루르드에 올 수 있다고 하셨다. 그 말을 듣자마자 울컥해지며 나를 반겨주신 성모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겨울이라 성지에는 성모 동굴을 따라 기도하는 순례객들 몇몇뿐이었다. 수녀님께서는 성시간이 시작되는 시즌에는 몇만 명의 인파가 몰려 성모 동굴은 가까이 볼 수도, 곁에 가지도 못한다고 하셨다. 나는 무슨 행운인지 나흘 동안 성모동굴 안에만 있었다.

익숙한 언어로 묵주기도 소리가 들려 따라간 곳은 침수대였다. 나도 묵주를 돌리며 잠시 앉아 나의 차례를 기다렸다. 봉사자 안내에 따라 안으로 들어가 조심스레 침수대 앞에 섰다. 봉사자분의 ‘성모님께 기도하세요’ 말에 잠시 머뭇거리며 속으로 ‘무슨 기도를 하지?’ 하는 순간 갑자기 물에 넣었다 들어 올려졌다. 순식간에 나는 아무런 기도도 못 하고 찬물에 내 심장이 멎지 않게 놀란 숨만 들이켰다 내뱉었다. 하얀 천으로 감싸져 있던 몸은 언제 젖었냐는 듯 금세 말랐고, 추운 겨울이었던 날씨에도 따뜻해지는 체온을 느끼며 뭔지 모르는 아픔에서 치유받는 느낌이 들었다.

다음날 일찍 아침을 먹고 다시 성모성지로 갔다. 곁눈질하며 본 곳은 어제 수녀님께서 ‘저곳에서는 매일 수천 명씩 회개의 기적이 일어난다’고 하셨던 고해소였다. 마음에 갈등을 느끼며 30분 정도 그 주변을 맴돌다 종이 한 장을 꺼내 이탈리아어로 한 자 한 자 적어 내려갔다. 고해소에 들어가니 책상을 앞에 두고 신부님이 계셨고 각 휴지가 눈에 띄었다. 신부님은 천천히 “어디서 왔니?”, “루르드에 오니 어떠니?” 등 말을 건네시며 긴장된 맘을 풀어주셨다. 순간 나는 눈물을 펑펑 쏟으며 여기까지 온 이유를 쉼 없이 말하기 시작했다. 신부님은 말없이 휴지 한 장을 꺼내 주셨고 난 눈물을 닦고 마음속에 들어앉아 있던 무거운 짐을 다 내려놓았다.

신부님께서는 “너의 눈물이 모든 것을 다 말해주었다”며 “성모님께서 너에게 이런 시간을 마련해 주시려고 너를 부르셨구나”하셨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고해소에서 나와 셀카 한 장을 찍었다. 사진 안에는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미소와 맑은 얼굴이 사진 안에 담겨 있었다.

오선주(루치아·제1대리구 진사리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