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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희 대주교 선종] 사진으로 보는 이문희 대주교 생애

방준식 기자
입력일 2021-03-16 수정일 2021-03-16 발행일 2021-03-21 제 3236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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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날 하느님 앞에서 모두가 함께 만날 수 있기를…

1991년 10월 6일 두류공원 축구경기장에서 교구 설정 80주년을 기념해 개최한 대구대교구 성체대회에서의 이 대주교. 대구대교구 제공

이문희 대주교 문장.
고(故) 이문희(바울로) 대주교는 15일 공개된 유언장을 통해 많은 사랑을 받고 살아온 것에 감사하며, 모두가 하느님께 자비를 간구하고 사랑의 힘을 키워갈 것을 간곡하게 요청했다.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하느님 자비와 사랑이 이루어지기를 원했던 착한 사제, 이 대주교의 삶을 화보를 통해 살펴본다.

1960년 프랑스 파리 유학시절 아르바이트를 하는 이문희 대주교. 대구대교구 제공

1965년 12월 23일 프랑스에서 사제품을 받은 후 서품식장에서 포즈를 취한 이 대주교.

1986년 7월 5일 대구대교구 제8대 교구장에 착좌한 이 대주교. 오른쪽은 故 김수환 추기경.

1972년 11월 30일 보좌주교 서품식에 참석한 어머니 故 한덕희 여사(왼쪽)와 아버지 故 이효상옹. 대구대교구 제공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식에서 분향하는 이 대주교. 대구대교구 제공

2006년 8월 20일 주일미사 후 한일 여기회 회원들과 함께한 이문희 대주교(앞줄 가운데).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1997년 11월 30일 제1차 교구 시노드 개막 축하연을 겸한 은경축(주교 수품 25주년) 축하연에서 어린이들로부터 축하 인사를 받고 있는 이 대주교. 대구대교구 제공

2007년 4월 24일 교구장 이임미사에서 인사하는 이 대주교. 대구대교구 제공

■ 故 이문희 대주교 유언(전문)

찬미예수님!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아직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이제 제가 떠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그동안 교구의 책임자로 있으면서 나름대로 힘껏 잘하려고 했습니다마는 지나온 후 돌이켜 생각할 때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교구를 위해서 잘못한 것, 또 교구의 사람들을 위해서 잘못한 것들에 대해서 너그럽게 용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개인의 잘못은 응당 개인이 책임을 지게 될 것입니다마는 교회에 대해 잘못한 것은 교회가 용서해주실 것을 믿고 바랍니다.

하늘나라에 대한 열정이 커서 그런 것도 아닌데 나는 세상에 나 같은 사람이 있었다는 기억이 계속 남아있는 것을 바라지 않는 버릇이 있습니다. 그래서 주교관 구내에 있는 성직자 묘지에 묻혀서 많은 사람이 자주 나를 생각하는 것을 좋아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벌써 오래전부터 나는 군위 가톨릭묘원에 가고 싶다고 했습니다. 지금은 이미 그곳 성직자 묘원이 시작되어서 그곳에 가는 것이 합당하므로 다시 부탁을 드릴 필요도 없게 되었습니다마는, 혹시라도 주교님들 옆에 아직 자리가 있으므로 좋은 곳에 묘를 둔다는 생각으로 내가 오래전부터 부탁을 한 군위로 가지 못하게 할 경우가 생기지 않도록 특별히 유념해주실 것을 다시 청합니다.

제가 지금까지 제가 일을 하여 얻은 것으로 이렇게 부유하게 잘 살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교회 덕택에 이렇게 모자람이 없는 생활을 지금까지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랑을 받고 살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이런 사랑에 대해서 깊이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모두 안녕히 계십시오. 그리고 하느님께 자비를 간구해주십시오. 그리고 이 땅의 교회가 잘 되도록 사랑의 힘을 더 키워가도록 힘써주십시오. 마지막 날 하느님 앞에서 모두가 함께 만날 수 있기를 믿고 바랍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안녕!

이문희 바울로 대주교

방준식 기자 bjs@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