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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어느 화가의 꿈 : 이중섭 / 정웅모 신부

정웅모 신부(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입력일 2021-03-16 수정일 2021-03-16 발행일 2021-03-21 제 3236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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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이 구상에게 보내는 편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미술이 문학을 만날 때>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이 전시는 1930~40년 일제강점기를 살아가며 ‘미술’과 ‘문학’에 몰두하던 예술가들의 작품과 그들 간의 교류를 소개한다.

전시장의 작품 속에는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이중섭 화가의 여러 작품과 편지 한 점도 전시되어 있다. 그 중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누렇게 바랜 원고지에 쓴 편지다. 이중섭(1916-1956)이 시인 구상(1919-2004)에게 작고하기 1년 전에 쓴 편지인 것이다. 이 편지는 가톨릭교회에서 하느님을 믿으려고 결심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편지는 이렇게 시작된다. “구상 형께, … 아우[이중섭을 지칭]는 하나님[하느님]을 믿으려고 결심을 했습니다. 구형의 지도를 구해 카토릭[가톨릭]교회에 나가 아우[이중섭]의 모든 잘못을 씻고 예수 그리스도님의 성경을 배워 깨끗한 새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성경을 구해 매일 읽고 싶습니다….”

시인 구상보다 세 살이 많았지만 존경하는 마음으로 시인을 형이라 부르고 자신을 아우라고 하였다. 이중섭과 구상은 자유를 찾아 월남한 실향민으로 이산의 아픔과 고통을 잘 알고 도와주었다. 특히 구상은 이중섭이 아내와 두 아들을 일본으로 보내고 궁핍한 생활을 할 때 더욱 가까이 거두어 주었다. 시인이 왜관에 살 때는 방 한 칸을 내주어 머물게 했다.

이때 화가는 ‘시인 구상의 가족’이라는 작품을 그려 시인에게 선물하였다. 그림 속에서 구상은 아들에게 세 발 자전거를 태워주며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이 장면을 화가는 부러운 듯이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토록 바라던 가족 간의 행복한 모습이 바로 손에 닿을 듯한 곳에 있기 때문이다.

신앙에 따라서 충실하게 사는 구상의 가족을 보며 그는 가톨릭교회에 대한 호감을 가졌을 것이다. 구상 시인은 말보다는 선한 삶과 행동으로 이중섭에게 복음을 전했던 것이다. 그 결과 화가는 세상을 떠나기 전에 신앙을 갖고 싶다는 바람을 편지에 담았다.

이 편지는 이중섭 화가가 가장 힘든 상황에서 하느님을 향한 신앙 고백이라고 할 수 있다. 가족과 떨어져 살면서 재회를 꿈꾸며 서울과 대구에서 전시회를 열었지만 그마저도 성공하지 못했다. 가난과 절망적인 상황에서 화가는 그리스도교에 대한 귀의를 결심하며 원고지에 한자 한자를 꾹꾹 눌러 썼다.

화가가 성당에 나가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은 작품 ‘왜관성당’에서도 볼 수 있다. 구상 집에 잠시 머물렀던 이중섭은 시인과 함께 읍내에 있던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의 성당도 찾았을 것이다. 머물던 집과 수도원은 걸어서 십 분도 채 걸리지 않을 정도로 가까운 곳에 있었다. 그는 수도원에 있는 적벽돌조의 작은 성당을 화폭에 담았다. 신앙에 대한 갈망을 품고 있으면서도 선뜻 입교하지 못하고 성당 주변을 맴돌았을 그의 마음이 작품 안에 녹아있다.

한 통의 편지와 ‘왜관성당’은 신앙생활을 간절히 바라던 화가의 마음을 나타낸다. 그래서 화가를 ‘익명의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있다. 비록 교회에서 세례성사를 받지 않았지만 신앙에 대해 갈망한 사람을 ‘익명의 그리스도인’이라 부르며 폭넓게 신자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갈망했던 화가의 꿈이 천상에서 온전히 채워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정웅모 신부(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