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닐 안 쓰기
“어디서든 비닐 사용 막아줄 3종 세트, 평생 함께 하기로!”
절반의 성공.
지난 사순 시기 동안 실천했던 비닐 안 쓰기에 대한 기자의 주관적인 평가다.
이를 뒤집어보면 절반의 실패라는 뜻도 되지만 비닐 안 쓰기는 사순 이후에도 계속할 것이기 때문에 발전 가능성 면에서 보다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싶었다.
호기로운 시작과 달리 비닐 안 쓰기는 예상치 못했던 많은 복병과 부딪쳤다.
그 가운데 제일 큰 문제는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었던 식품, 특히 가공식품의 비닐재 포장과 소포장, 개별포장이었다. 또한 사순기간 동안 비닐을 쓰는 대형마트 배달은 단호히 끊었지만 고백하자면 배달음식의 달콤한 유혹에는 몇 번 넘어갔다. 그리고 음식을 배달시킬 때마다 따라오는 엄청난 수의 용기들은 늘 커다란 비닐봉지에 담겨 있었다.
되돌아보면 비닐 안 쓰기는 관찰-각성-시행착오-참회-개선의 무한루프를 반복한 것 같지만 이번 실천을 통해 얻은 것도 많다. 우선 장바구니 하나만 달랑 들고 다녔던 예전과 달리 새 친구들이 생겼다. 이제 장바구니와 함께 접을 수 있는 식품 용기, 비닐 대신 무엇이든 담을 수 있는 면 파우치 3종 세트가 늘 기자와 함께한다.
그런가 하면 재래시장에서 ‘용기(勇氣) 내서 용기(容器)를 냈던’ 경험을 시작으로 이제는 어딜 가든 용기를 내미는 일이 예전만큼 어렵지 않게 됐다. 과일, 야채, 고기를 구입할 때는 물론이고 음식점에서 잔반을 담아오는 것도 더 이상 부끄럽지 않다.
‘비닐 안 쓰기’를 마무리하면서 ‘플라스틱부터 음식물까지 한국형 분리배출 안내서’라는 부제가 달린 책 「그건 쓰레기가 아니라고요」를 읽었다.
책을 읽다보니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아이러니하게도 일회용 비닐봉지는 환경 보호를 목적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나무를 베어 만들어 한번 쓰고 버리는 종이봉투의 대체품이 비닐봉지이기 때문이다.
우리말로는 비닐봉지, 비닐봉투지만 영어로는 ‘Plastic Bag’이라는 것만 봐도 사용 목적에 체감상 차이가 있는 것이 느껴진다. 아무래도 ‘가방’을 ‘봉지’보다는 오래 쓰게 될 테니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비닐봉지를 여러 번 쓰는 물건으로 생각하고 있는가. 기자부터도 반성이 필요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찬미받으소서」 22장에서 쓰레기 문제에 대해 언급하면서 “재생 불가능한 자원 사용의 최소화, 소비 절제, 효율 극대화, 재사용, 재활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쓰레기 문제의 중심에 ‘비닐’이 존재하는 한, 기자의 ‘비닐 안 쓰기’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이다.
<김현정 기자 sophiahj@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