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말씀묵상] 사랑, "사실은 참 아픈거래”

장재봉 신부 (부산교구 월평본당 주임)
입력일 2021-03-09 수정일 2021-03-10 발행일 2021-03-14 제 3235호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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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4주일
제1독서(2역대 36,14-16.19-23) 제2독서(에페 2,4-10) 복음(요한 3,14-21)
주님 배신한 이스라엘의 패망은 어둠을 섬긴 어리석은 소행 때문
상처 입은 성심 위로해드리면서 힘들지만 진정한 사랑 실천하길

세상에는 좋은 글도 많고 아름다운 음악도 많습니다. 참 감사한 일이지요. 좋은 글이 주는 위로와 기쁨, 음악에서 얻는 감동과 희열이 행복을 선물해주니까요. 음악에 관해서 문외한인 저이지만 장르 불문, 곡조에 감동하고 가사에 꽂히는 일이 더러 있는데요. 예를 들면 오늘 화답송으로 노래하는 “행복하여라, 네가 우리에게 행한 대로 너에게 되갚는 이! 행복하여라, 네 어린것들을 붙잡아 바위에다 메어치는 이!”라는 끔찍하고 살벌한 역사의 상처를 상큼 발랄한 멜로디에 얹어 그마저 은혜임을 일깨워주는 보니엠의 “Rivers of Babylon“ 이라든지 비틀즈가 성모님 사랑을 노래한 ‘Let It Be’도 제가 심쿵했던 노래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부활이 노래한 ‘친구야 너는 아니’라는 곡조가 마음에 잔잔 밀려오네요. 이 노래를 처음 들었던 봄날, 이해인 수녀님의 시구에 마음이 꽂혀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거푸 들었던 기억도 아스라이 떠오릅니다.

꽃이 필 때 꽃이 질 때/ 사실은 참 아픈거래/나무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달아줄 때도/ 사실은 참 아픈거래/ (중략) 아름답기 위해선 눈물이 필요하다고/ 엄마가 혼잣말처럼 하시던 이야기가/ 자꾸 생각나는 날/ (중략) 향기 속에 숨긴 나의 눈물이 한 송이 꽃이 되는 것 너는 아니

오늘 화답송이 노래하는 시편은 포로살이 하던 이스라엘 백성의 처절한 고백입니다. 지배자 바빌론인들의 가혹한 만행을 고발하며 ‘우리에게 했던 그대로’ ‘우리가 당했던 그만큼’ 너희도 당해봐야만 우리 심정을 알게 될 것이라는 피 맺힌 부르짖음입니다. 예레미야도 그들의 만행을 “내가 당한 폭행과 파괴를 바빌론에게 되갚아 주소서”(예레 51,35)라고 간청했는데요. 하느님께서는 “이 악독한 종자는 영원히 그 이름이 불리지 않으리라”(이사 14,20) 하시던 응답을 말씀대로 이루십니다. 이 세상에서 바빌론이 영영 사라져버린 이유이지요.

그분의 말씀은 꼭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오늘 제1독서도 거듭 확인해 주는데요. 오래전 모세에게 명하신 안식년 준수명령(레위 25,4 참조)을 입 싹 닦고 묵살했던 이스라엘의 죄를 정확하고 명백하게 따져서 책임을 물은 점을 분명히 일러줍니다. “이 땅은 밀린 안식년을 다 갚을 때까지 줄곧 황폐해진 채 안식년을 지내며 일흔 해를 채울 것이다”라는 말씀대로 이스라엘 백성의 바빌론 포로살이를 칠십 년을 꼬박 채운 후에야 극적으로 귀환시켜 주셨으니까요. 참으로 “반드시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며 내가 내린 사명을 완수하고야 만다”(이사 55,11)는 당신의 말씀이 참이며 진리임을 명심해야겠습니다.

프란체스코 하예즈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

그들처럼 우리도 하느님을 믿으면서도 돈과 명예라는 바알을 함께 숭배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점에서, 생활이 윤택해지는 것, 세상에서 잘나가는 것이 곧 성공이며 축복이라 여기기니 말입니다. 형편과 상황에 따라 믿다 돌아서기를 번복했던 이스라엘의 불경함이 우리 삶에도 설핏설핏 엿보이니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경말씀을 그저 좋은 말로, 그럴듯한 지식처럼, 들을만한 훈계로 받아들이는 일이나 ‘말씀대로 따르기엔 무리’라 여기거나 ‘뻔한 잔소리’처럼 폄하하며 지낸다면 이 모두가 분명한 참회꺼리임을 깊이 새겨야겠습니다.

오늘 역대기 저자 역시 이스라엘의 패망요인으로 “모든 지도자와 사제와 백성”이 이방인의 온갖 역겨운 짓을 따라 “주님을 크게 배신”한 결과였음을 알려주는데요. 그분의 뜻을 조롱하고 그분의 말씀을 무시하며 그분의 예언을 비웃는 무엄한 짓은 도무지 “구제할 길”이 없었다는 결론이 두렵기만 합니다.

주님께서는 이런 삶이 곧 “어둠을 더 사랑”하는 것이며 빛이신 그분을 미워하여 뒤로 물러서는 어리석은 소행이라 밝히십니다. 주님의 백성이라면서 잡신을 함께 섬긴 결과에 주목하라 하십니다. 그 “배신” 행위에서 철저히 돌아서라 명하십니다.

문득 “하느님은 사람이 아니시어 거짓말하지 않으시고 인간이 아니시어 생각을 바꾸지 않으신다. 그러니 말씀만 하시고 실천하지 않으실 리 있으랴?”(민수 23,19)며 천상유수로 진리를 읊었던 발라암이 생각납니다. 그분을 알고 그분의 말씀을 듣고 세상에 전했던 그가 세상재물에 눈이 멀어, 끝내 비참한 말로를 맞은 사실이야말로 우리의 영혼에 경종이라 싶습니다.

사순입니다. 어수선한 삶을 정리 정돈하는 때입니다. 당신의 아들을 내어주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그분 심정을 헤아려 감격하는 때입니다. 이제 그분의 사랑도 아팠으며 고통스러웠으며 억울하고 속상했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원수 같은 이, 그 치 떨리고 분해서 악을 쓰고 분풀이를 하고 싶은 바로 그 밉고 싫은 사람 안에서 상처받고 계신 예수님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다만 상처 입은 성심을 위로해드리는 마음으로 ‘밉고’ ‘싫은’ 그 사람을 이해하려 애쓰고 먼저 다가가 감싸 품어주는 ‘아픈 사랑’을 살아내기 원합니다. 사랑은 눈물 나게 아픈 것이고 정말로 힘든 것이며 너무너무 쓰라리고 아리지만 끝까지 사랑함으로써, 주님께 힘을 드리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시길 소원합니다.

장재봉 신부 (부산교구 월평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