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우리 생애 가장 아름다운 40일] - 네 번째 이야기

입력일 2021-03-09 수정일 2021-03-10 발행일 2021-03-14 제 3235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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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 잘 돼 가요?”, “네? 네….”

잘하고 있냐는 격려 섞인 물음에 누군가는 자신 있게 대답하고 누군가는 속으로 뜨끔하며 말끝을 흐린다. 때론 ‘불편한 행복’ 같다가도 ‘왜 이런 고생을 해야 하나.’ 싶기도 하다. 매일매일 도전에 직면해서 그런지 부활은 그 어느 때보다 더 아득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제 막바지다. 다시 첫 마음으로 돌아가 우리 삶 안에서 하느님을 환대해 본다! 하느님, 어서 오세요!

서울 망원동 알맹상점에서 구입한 밀랍 랩과 실리콘 뚜껑.

■ 비닐 안 쓰기

“생태적 삶은 사실 수고스럽다

하지만 ‘나’만이 아닌 ‘우리’와

‘어머니 지구’를 생각한다면

마땅히 지켜나가야 할 가치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비닐 안 쓰기 4주차에 접어든 지금, 조금 생뚱맞지만 문득 이 문구가 떠올랐다.

예전에는 존재조차도 신경 안 쓰고 모른 체 무심히 지나쳤던 일상 속 비닐 사용이 점점 거슬리기 시작했다. 그 중에는 자주 접하는 비닐 랩, 치실 등이 포함됐다.

평소 비닐 랩을 많이 쓰지는 않지만 꼭 비닐 랩을 사용해야 하는 경우들이 간혹 있다. 이에 대한 대안을 고민하던 중 순면에 밀랍을 입혀 만든 재사용 가능한 랩이 있다는 것을 알고 제로 웨이스트 상점인 서울 망원동 알맹상점을 찾았다.

밀랍 랩이 비닐 랩의 대용품인 것은 맞지만 사용에 제한이 있었다. 우선 밀랍 랩은 실온 이하의 음식과 그릇에만 사용하고, 전자레인지에는 사용할 수 없다.

반찬 그릇을 데울 때 덮는 용도로는 부적합한 것이다. 대신 밀랍 랩은 손의 온기로 식재료나 그릇 모양을 잡아 수 초간 꾹 눌러주는 것으로 간단한 음식 포장재로 사용 가능하다.

랩을 뚜껑처럼 사용할 경우의 대용품은 따로 있었다. 바로 밀착이 잘 되고 재사용 가능한 실리콘 뚜껑이다.

알맹상점에서 밀랍 랩 하나, 실리콘 뚜껑 하나와 실크로 만든 치실 등을 구입했다.

치실은 주로 나일론이나 테플론, 드물게는 폴리에틸렌으로 만든다. 세 가지 모두 썩지 않는다는 공통점을 지니기에 비닐은 아니지만 비닐과 마찬가지인 문제점이 있다.

실크 치실은 유명 브랜드 치실처럼 매끄럽지도 않고 뭔가 투박한 사용감이 있었다. 하지만 매일 계속 사용하는 물건이기에 불편함을 감수하고라도 반드시 바꿔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생태적 삶은 사실 수고스럽고 번거롭고 돈도 많이 든다. 하지만 ‘나’만을 생각하지 않고, ‘우리’와 ‘어머니 지구’, ‘미래 세대’를 생각한다면 마땅히 지켜나가야 할 가치이자 신앙의 실천이다.

봄이 성큼 다가오고 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세탁소에 드라이클리닝을 한꺼번에 맡기곤 하는데 이번 주말에는 큰맘 먹고 겨울옷들을 손빨래 하려고 한다. 세탁소에 맡긴 옷들은 비닐 커버를 씌워서 돌아오기에 본의 아니게 ‘비닐 안 쓰기’를 지킬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것을 알게 되고, 보게 될지 기대하며 몸은 힘들어도 즐거운 마음으로 ‘비닐 안 쓰기’를 계속 확대해 나가야겠다.

<김현정 기자 sophiahj@catimes.kr>

자전거로 출퇴근하기’ 도전 중인 이소영 기자. 기자는 사진을 찍을 때만 잠시 마스크를 벗었다.

■ 자전거로 출퇴근하기

“온몸을 적극적으로 움직이니

잠들어 있던 감각이 깨어난다

매 순간 살아 있음을 느끼고

존재의 소중함마저 체험한다”

‘자전거로 출퇴근하기’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지하철을 탄 날이었다. 먼 거리를 가려고 어쩔 수 없이 지하철을 탔는데, 전과는 느낌이 달랐다. 도전을 하기 전 하루에도 몇 차례나 타던 지하철이건만 그렇게 새롭고 낯설 수가 없었다. 쇠가 부딪치며 나는 철도 소리와 대화 소리는 전보다 가까이 귀에 들렸고, 지하철을 타고 내릴 때의 온도 차나 붐비는 열차 안 사람들과의 거리감은 전보다 피부에 확 와 닿았다. 그동안 잠들어 있던 감각들이 자전거를 타며 깨어난 덕이었다.

실제 이번 사순 시기 자전거로 출퇴근하기를 실천하면서 평소 잘 활용하지 않던 감각 기관들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가야 할 방향을 정하고 주행 시점을 포착하기 위해 두 눈을 쉴 새 없이 요리조리 굴리고, 주변에 차나 사람이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 쫑긋 귀를 세우는 등 감각 기관을 활발히 쓰고 있다. 자전거가 멈추지 않도록 두 발을 쉴 틈 없이 구르고, 속도를 높이기 위해 이따금 머리와 어깨를 숙이고 힘을 모으는 등 지하철을 탈 때와 달리 온몸을 구석구석 활용하고 있다.

이렇게 온몸을 구석구석 적극적으로 움직이니 매 순간 살아 있음을 크게 느낀다. 눈과 귀, 코와 입을 비롯해 여러 감각 기관을 타고 들어오는 수많은 자극들이 어떤 대상을 인식하게 하고, 그 대상과 공존하고 있는 나 역시 돌아보게 하기 때문이다. 살결을 스치는 바람은 몸을 보호하는 피부를 인식하게 하고, 길가에 거니는 사람들과 머리 위 드넓게 펼쳐진 하늘은 그 풍경을 바라볼 수 있는 두 눈을 인지하게 한다. 페달을 힘차게 밟을 수밖에 없는 오르막길은 걸어도, 뛰어도, 자전거를 타도 괜찮은 건강한 다리를 생각하게 한다. 천천히 때로는 가쁘게 내뱉는 숨은 이 순간 이곳에서 호흡하는 내가 살아 있음을 감각으로, 경험으로 알게 한다. 그렇게 자전거를 타면서 ‘존재의 소중함’을 체감한다.

누구나 살다 보면 종종 존재의 소중함을 잊는다. 내가 지금 이 순간 여기에 살아 있다는 사실보다 눈앞의 일이나 뭔가를 이루려는 욕망, 이것만은 꼭 해내고야 말겠다는 집착 등에 사로잡혀 자신을 소홀히 하곤 한다. 그러나 “사람이 많은 햇수를 살게 되어도 그 모든 세월 동안 즐겨야 한다”(코헬렛 11,8)라는 말씀처럼 존재의 소중함을 늘 인식하지 않는다면 삶은 어느 때고 재미없어지기 십상이다. 그래서일까. 사순 시기 깨달은 이 존재의 소중함을 잊지 말라고 주님께서 나에게 이 성경 구절을 선물로 주시는 듯싶다. “젊은이야, 네 젊은 시절에 즐기고 젊음의 날에 네 마음이 너를 기쁘게 하도록 하여라. 그리고 네 마음이 원하는 길을 걷고 네 눈이 이끄는 대로 가거라.”(코헬렛 11,9)

<이소영 기자 lsy@catimes.kr>

■ 책 읽고 묵상하기

“시는 마음의 힘을 길러 준다

시구에 빠져 차분히 읽다보면

힘들었던 시간이 뒷전이 된다

자유로움을 느끼는 순간이다”

‘오늘 묵상을 내일로 미루지 말자!’

이렇게 다짐한 한 주였다.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다짐’만 한 주였다. 마음이 분주하니 없던 어지럼증도 생기고 몸이 축 늘어졌다. 취재처에서 생길 혹시 모를 상황을 대기하며 괜히 스마트폰만 껐다 켜기를 반복하니 초조함만 더해 갔다. 활자가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이럴 줄 알고 지난달 한 서점의 ‘북클럽’을 신청해 뒀다. 한 달에 한 권, 매주 정해진 분량을 읽고 생각할 거리를 나누는 방식이었다. 이번달 책은 김겨울 작가의 「책의 말들」이다. 작가가 책 100권에서 책에 대한 문장을 모으고 다시 그에 대한 생각을 짤막하게 적은 글을 모았다. 점심시간이나 퇴근 후 운동 전까지 남는 시간 동안 휘~휘~ 넘겨 가며 공감 가는 문장에 잠시 머무를 수 있는 산책 같은 책이었다.

제대로 된 묵상을 위해 시집을 펴 보기로 했다. 시는 마음의 힘을 길러 준다. 그 안에 푹 빠져 있다 보면 나를 힘들게 한 얼룩진 상황들이 뒷전으로 밀려난다. 김겨울 작가도 「책의 말들」 83쪽에서 마음에 와 닿는 책은 어떤 방식으로든 위로가 된다고 말했다.

“삶에 깊이 잠수해 본 사람이 들려 주는 자신의 이야기는, 정말로 무엇이든 위로가 된다. 누군가에게는 소설일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에세이, 누군가에게는 시가 되겠지. 위로는 그러니까 ‘내가 지금부터 너를 위로하겠어’라고 말하는 것과는 관계가 없는 것 같다.”

지난해 번아웃 증후군을 겪으며 가장 힘들었던 날, 수도꼭지 틀어 놓은 듯 눈물이 쏟아지던 그 날도 제일 먼저 집어든 게 시집이었다. 파란 하늘 아래 그늘막에서 펼친 시 한 편은 누구도 건넬 수 없는 위로의 말이 됐다.

소설가 한강의 첫 번째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에 수록된 시 ‘눈물이 찾아올 때 내 몸은 텅 빈 항아리가 되지’는 7연 19행으로 두 페이지에 이어지는 꽤 긴 시다. 무슨 말인지 명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읽고 있는데 왠지 든든했다. 이렇게 힘든 순간이 내게만 오는 유별난 고통이 아니라, 인간이면 누구나 비슷하게 겪을 수 있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지난 슬픔에 묵상을 더하기 위해 올해 프란치스코 교황의 사순 담화를 다시 읽어 본다. 그렇다. 단식은 우리를 짓누르는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운 존재가 되게 한다. 책도 그렇고 교황의 문장들도 어떤 부정적인 감정들로부터 좀 더 자유롭게 해 준다. 그리고 상처 받지 않기 위해 웅크리기보다 마음의 문을 열어 젖혀야 우리 삶의 모든 순간을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다. 비록 이번 주에는 책보다 미국드라마에 훨씬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말았지만 다시 다짐해 본다. 회개하는 마음으로 우리의 구원자이신 하느님 아드님께 마음의 문을 열 수 있기를! 하느님 아버지의 자비로운 마음에서 한없이 샘솟는 사랑을 회복하기를!

<성슬기 기자 chiar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