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 - 세상을 읽는 신학] (5) 우리는 왜 교리를 배우는가

정희완 신부 (가톨릭문화와신학연구소 소장)
입력일 2021-03-02 수정일 2021-03-02 발행일 2021-03-07 제 3234호 12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교리는 신앙의 신비를 이해하고 살아내도록 한다
신앙 진리를 명제화한 교리 배우고 받아들여 믿게 하고 신앙 체험하고 실천하게 해
자칫 지식 전달만 강조하면 신념에만 치중할 위험 있어 
더 잘 이해하도록 하면서 신앙 방식으로 살도록 해야

■ 교리에 대한 피상적 느낌과 인상

어린 시절 교리를 배울 때, 무조건 외워야 하고 무조건 믿어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본당신부 시절 예비신자에게 교리를 가르칠 때 설명하기가 곤혹스러운 경우가 많았다. 교리를 배우고 받아들이고 믿는 일이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았다. 교리를 가르치고 이해시키고 설득시켜 믿게 하는 일 역시 쉽지 않았다. 교리는 늘 어렵고 딱딱하다는 느낌으로 남아있다.

교회사 안에서 교리 논쟁의 사건들을 자주 볼 수 있다. 교리에 관한 입장의 차이가 그리스도교 교파들의 분열과 이단을 낳았다. 교리를 둘러싼 논쟁과 분열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 “교리는 분열시키고, 봉사는 단합시킨다.” 오늘날 에큐메니컬 운동에서 쉽게 목격하는 표어다. 종교 간의 대화는 교리의 차원에 머물 때 사실 불가능하다. 교리가 포기할 수 없는 신앙의 신념이라면 상대방에게 자신의 교리를 포기하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신앙의 원칙과 규범을 담고 있는 교리는 신앙인들 사이에서 때때로 갈등을 야기한다.

■ 교리는 신앙의 신비와 진리에 대한 교회의 이해다

신앙과 교리와 신학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교리는 신앙의 유산을 보존하고 계승하기 위한 것이다. 교리는 신앙의 신비에 대한 교회의 권위 있는 가르침이다. 교리는 신앙에 대한 신학적 이해와 교회 교도권의 식별과 판단이 결합되어 제정된다. 부정적 관점에서 보면, 교리는 신앙의 영역에 있어서 지식인 중심주의를 드러내고, 종교 안에서 지식과 권력의 문제를 포함한다. 현대적 관점에서 보면, 교리는 교회의 집단 지성의 산물이다.

신앙은 신비다. 교리는 신앙의 신비를 문자로 표현하는 것이다. 교리는 신앙의 진리를 명제화 한 것이다. 교리는 신앙의 신비에 관한 언어적 진술이다. 하지만 신앙은 언어적 표현을 넘어선다. 교리는 신앙을 다 담지 못한다. 신앙이 언제나 교리보다 더 넓고 깊다.

교리는 신앙의 진리에 대한 앎과 이해와 관련이 있다. 신앙은 앎과 이해를 포함하지만, 체험과 삶이 더 중요할 수 있다. 신앙을 체험하고 살아내는 것과 교리를 알고 이해하는 것은 긴밀히 연결되어 있지만, 항상 같은 것은 아니다. 교리를 안다고 해서 반드시 신앙이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교리를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한다 해도 신앙을 체험하고 살아낼 수 있다.

교리는 신앙의 내용과 실천을 담고 있다. 교리를 배우고 받아들이고 믿는다는 것은 신앙의 신비를 이해하려는 노력이다. 하지만 이해는 언제나 삶의 실천을 통해서만 그 빛을 발한다. 교리 공부가 교리에 대한 지성적 앎의 차원에만 머문다면, 신앙은 그저 지식이 되고 만다.

교리는 신앙의 내용과 실천을 담고 있다. 교리 공부는 교리에 대한 지성적 앎의 차원에만 머물면 안 되고, 언제나 삶의 실천이 따라야 한다.

■ 교리는 발전한다

원칙과 규범으로서의 교리는 불변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교리가 제정되는 과정에서는 치열한 논쟁과 갈등이 발생할 수 있지만, 교리가 확정된 이후에는 변할 수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정설이다. 하지만 신앙의 내용에 대한 교리는 불변이지만 윤리 규범에 대한 교리는 수정되고 변할 수 있다. 또한, 신앙의 내용에 대한 교리 역시 확장되고 발전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삼위일체 교리와 성모님에 대한 교리 제정의 역사를 보면, 시간의 흐름 속에서 교리가 어떻게 확장되고 발전되어왔는지 알 수 있다.

신앙은 불변이지만 신앙의 내용에 대한 인간의 이해는 확장되고 발전될 수 있다. 교리는 신앙에 대한 교회의 이해다. 교회는 종말론적 완성을 향해가는 순례자다. 신앙의 신비와 진리에 대한 교회의 이해 역시 종말론적 완성을 지향하는 과정 안에 있다. 신앙의 신비에 대한 당대적 이해를 더 깊게 하기 위해서 교회는 교리의 발전을 늘 모색해야 한다.

■ 예비신자 교육의 현실

넓은 의미에서 교리 교육(catechesis)은 곧 신앙 교육을 뜻한다.(가톨릭교회 교리서, 3항) 하지만 통상적으로 교회 안에서 교리 교육이라는 말은 좁은 의미에서 교리에 대한 가르침이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교회의 신앙 교육은 좁은 의미의 ‘교리 교육’, 봉사 활동을 통한 ‘신앙 교육’(pedagogy), 기도와 전례와 영적 활동을 통한 ‘신비 교육’(mystagogy)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문제는 ‘예비신자 교리’라는 명칭에서 보듯이, 교회의 일반적인 예비신자 교육이 좁은 의미의 교리 교육에서 시작된다는 데에 있다. 신앙을 교리에서 시작하면 신앙은 자칫 지식이 되고 이념이 될 위험이 있다. 신앙 전수가 지식(교리) 교육으로 변질될 위험이 있다는 뜻이다. 현행 예비신자 교리 과정은 신앙의 체험과 신앙적 삶에 강조점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교리에 대한 지식적 앎과 교리에 관한 이념적 수용과 확신에 초점이 맞춰지는 경향이 있다. 예비신자 교육이 살아있는 신앙 전수가 아니라 종교적 신념 교육이 될 위험이 많다는 뜻이다. 코로나 시절, 신앙인이라기보다는 종교적 이념주의자들이 빚어내는 아찔하고 위험한 풍속도를 우리는 자주 목격하고 있지 않은가. 진정한 의미의 신앙 교육이 절실히 필요한 시대다.

■ 교리의 진정한 모습과 역할

교리는 명제적이고 정언적인 문장으로 주로 표현된다. 교리서의 내용은 신앙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신앙적 이론 같은 느낌을 받는다. 사실, 이론보다 이야기를 통해 신앙을 더 잘 표현하고 이해하고 배울 수 있다. 오늘날 어쩌면 교리 공부가 지겹고 힘든 이유가 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이론으로서의 교리가 아닌 이야기로서의 교리가 절실히 요청된다.

교리는 신앙의 진리를 수호하고 동시에 신앙의 길을 안내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다시 말해, 교리는 감시견(watch dog)과 안내견(guide dog)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해야 한다. 정통 교리를 수호하는 일은 잘못된 신념과 이단적 내용이 교회 안에 유입되어 신앙인들을 혼란하게 하는 것을 막아준다. 당대 사람들의 기준에 비추어 교리를 더 이해하기 쉽고 설득력 있는 방식으로 발전시키는 일은 신앙의 길을 깊고 넓게 한다.

사상과 이념의 차원에서의 교리적 이단보다 행동과 태도와 삶의 차원에서 발생하는 신앙적 이단이 더 문제일 수 있다. 신앙적 이단이란 신앙의 방식으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자본과 물질과 권력의 논리로 살아가는 것이다. 진정한 교리는 이단의 오류에서 우리를 벗어나게 하고, 우리를 신앙의 방식으로 살아가게 할 것이다.

정희완 신부 (가톨릭문화와신학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