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세계 여성의 날 특집] 교회 안에서 여성의 지위와 역할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21-03-02 수정일 2021-03-03 발행일 2021-03-07 제 3234호 10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교회 내 성 평등 구현, 동등하다는 인식 고취시켜야
여성 독서·시종직 교회법적 제도화
주교시노드 사무국장 첫 여성 임명
교황청 내 여성 비중 늘려 참여 확대
구역장·반장 80% 이상 여성이지만 지도적 역할은 대부분 남성이 차지
여성 신자 ‘협조자’로 과소평가도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하지 못하고 남성 중심의 성 역할만 강요된다면 여성 신자 점차 교회 등지게 될 것

3월 8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 여성의 날’이다. 오늘날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역할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증진돼 왔지만 여전히 여성에 대한 차별은 많은 과제를 안고 있다. 교회 안에서도, 특히 프란치스코 교황 즉위 이후 여성 신자들의 지위와 역할에 대한 다양한 제도적 조치들이 이어지고 있다. 여성의 날을 맞아 가톨릭교회 안에서 여성의 위상과 위치를 생각해 본다.

■ 여성 복사와 여성 부제

지난 1월 11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의교서 「주님의 성령」(Spiritus Domini)을 발표하고 여성도 독서자와 복사가 될 수 있도록 교회법 230조 1항과 관련 전례 규정을 수정했다. 기존의 교회법 규정에는 “‘남자 평신도’만이 독서자와 시종자의 교역에 고정적으로 기용될 수 있다”고 돼 있었는데, 이제는 ‘모든 평신도’가 공식적으로 독서자와 시종자가 될 수 있다.

물론 오랫동안 전세계 교구에서는 여성들이 독서를 하거나 복사로 제대 봉사를 해 왔다. 하지만 이는 교회법 제230조 2항 ‘임시적 위임’에 의해서 독서자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는, 예외적 사례에 그쳤다. 하지만 관련 교회법 자체를 아예 수정함으로써 그동안 일부 주교들이 두 가지 직무를 남성만 할 수 있도록 제한했던 근거 자체를 배제했다.

이미 실시돼 오고 있던 여성 독서자와 시종자를 교회법적으로 아예 제도화시킨 것은 무슨 의미를 갖는가? 이는 교회 안의 여성 문제에 대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즉위 이후 지속된 관심의 방향성 안에서 볼 수 있다.

바티칸 라디오는 2016년 8월 2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여성 부제직 연구위원회’를 구성하고 신앙교리성 차관 루이스 프란시스코 라다리아 페레르 대주교를 위원장으로 임명했다고 보도했다. 위원회는 위원장 외에 남녀 각 6명의 위원으로 구성됐다. 위원회 설치는 세계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UISG) 요청에 대한 응답으로 알려져 있다.

부제는 가톨릭교회 성직 계층 가운데 가장 하위에 위치하지만 남성만이 성직자가 될 수 있다는 교회 입장에 비춰 볼 때, 여성이 부제가 될 수 있다고 한다면 그 자체로 엄청난 역사적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지금까지 부제직 연구위원회 논의 자체는 성과가 크게 있어 보이지 않는다. 지난해 4월, 교황은 위원회를 새로 구성했다. 위원회가 그간의 논의 성과를 종합해 2019년 1월에 교황에게 전달했다. 하지만 교황은 그해 5월, 결론으로 향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평가했고, 이후 위원회는 더 모이지 않았다.

하지만 여성 부제 문제에 대한 논의는 2019년 아마존 지역 주교 시노드에서 다시 살아났다. 교황은 시노드 최종 연설에서 “초대 교회에 존재했던 종신 부제직을 계속 연구하기 위해 새 구성원으로 확대한 여성부제연구위원회를 재소집해 달라”는 아마존 주교 시노드 요청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이후 여성 부제 문제는 다시 열린 논의로 이어지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6년 5월 12일 교황청 바오로 6세 홀에서 열린 세계여자수도회총원장연합회(UISG)와의 특별알현에서 한 수녀와 인사하고 있다. 교황은 이날 질의응답 시간에서 여성의 부제직을 연구할 위원회를 설립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CNS 자료사진

■ 주교대의원회의

물론, 지난 1월 자의교서를 통해 여성의 독서직, 시종직에 대한 제도적 차원의 보장이 여성 부제와 직접 연결되는 접점은 없다. 교황청은 해당 법은 평신도 역할을 규정하는 것이며, 사제 및 부제 등 성직자 영역과는 엄연히 구분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2월 프란치스코 교황은 또 한 가지 획기적인 조치를 발표했다. 교황은 프랑스 하비에르 선교 수녀회 나탈리 베카르 수녀(51)를 주교시노드 사무국장으로 임명하고 그녀에게 투표권을 부여했다. 이로써 베카르 수녀는 역사상 처음으로 주교시노드에서 투표권을 갖는 여성이 됐다.

이와 관련해, 주교회의 사무총장 마리오 그레크 추기경은 주교시노드에서 ‘여성의 투표권이 열린 것’으로 평가했다. 지금까지,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주교시노드에서 투표권은 오직 주교와 사제, 수도회 소속 수사들에게만 주어졌다. 베카르 수녀는 “앞으로 교황이 교황청 여러 평의회, 위원회, 부서에 계속해서 더 많은 여성을 임명할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전 교황들과 마찬가지로 여성 사제에 대해서 명백하게 불가하다는 입장이다. 여성 부제에 대해서도 교황은 단지 여성 부제직의 가능성을 연구할 위원회를 설립했을 뿐이다. 1994년 교서 「남성에게만 유보된 사제서품에 관하여」(Ordinatio Sacerdotalis)를 통해 예수는 오직 남자들 가운데서만 사도들을 뽑았다면서, 교회는 여성을 사제로 서품할 권한이 없다고 못박은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입장과 다른 바는 지금까지 없다.

하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회 안에서 여성의 지위와 역할에 대해서 지금까지 과소평가된 부분이 있으며 더 많은 역할과 비중을 여성들의 교회 참여에 열겠다는 의지를 피력해 왔고, 그러한 의지를 제도적 변화를 통해 구체화하고 있다.

2020년 2월 5일 미국 워싱턴 캐롤 대주교 고등학교에서 봉헌된 한 미사에서 여학생들이 복사를 서고 있다.

2014년 미국 뉴욕주 론콘코마의 한 성당에서 여성 신자가 미사 중 독서를 읽고 있다.

■ 한국 천주교회와 여성 신자의 현실

그렇다면, 한국 천주교회 안에서 여성 신자들의 오늘날 현실은 어떠한가?

사실상 한국 천주교회를 꾸려가는 이들이 여성 신자들이라는 것은 더 이상 의문의 대상이 아니다. 많은 통계들을 보더라도 본당 단체에서 활동하는 구성원들은 여성 신자가 70% 이상으로 추정된다. 교회의 손발인 구역장과 반장의 80% 이상이 여성이다. 본당 미사 참례자의 남녀 비율이 대개 3:7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당 운영의 중추적 역할을 하는 사목협의회 회장은 대부분 남성이다. 남성 신자와 여성 신자들이 함께하는 단체의 장은 남성이 대부분이다. 물론 과거에 비해서 약간의 진전은 보이지만 여전히 본당 활동의 지도적인 위치는 남성들이 차지한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적극성은 여성 신자들이 압도적임에도 불구하고 여성 신자의 정체성은 나서지 않고 뒤에서 조용히 일하는 ‘협력자’나 ‘보조자’에 머물러 있다고 볼 수 있다. 1년에 한 차례 남짓, 평신도 강론에는 주로 남성 사목회장이 나선다. 성체 분배 역시 나이 지긋한 평신도 남성이 맡는다.

시대와 사회의 변화에 따라 여성은 사회적으로나, 또는 교회 안에서 자신의 위상과 역할, 정체에 대한 깊은 고민을 이어왔다. 특별히 교회 안에서 여성이 성 평등 차원에서 적지 않은 실망을 하게 될 경우 교회를 등지고 떠날 위험성을 갖게 된다.

2000년대 들어서 여성 신자들의 교회 활동 참여율 감소 현상이 뚜렷하다. 각 본당에서는 구역장, 반장을 맡을 여성 신자들이 점점 사라지는 추세다. 교회 봉사자 대다수를 이뤘던 30~40대 여성 신자들은 자취를 감추고 있다. 특히 여성 사제 금지나 미사보 착용 등을 성 평등의 시각으로, 남성 중심 가부장적 권위로 여기는 여성 신자들은 교회를 등지고자 하는 심리를 갖게 된다.

교회 운영의 의사 결정 과정에 충분히 참여하지 못하고, 남성 중심 가부장적 성 역할이 강요되는 교회 분위기 안에서 여성 신자들은 제도 교회에 실망감을 갖게 된다.

교회 내 여성의 지위와 역할에 대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열린 논의와 제도적 변화 조치들은 한국교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한국교회 역시 시대와 사회 변화에 따른 여성의 지위와 위상 향상, 성 평등 구현을 위한 여성 신자들의 요구, 참된 복음적 평신도 사도직 구현을 위한 다각적인 요청들을 제도적 변화로 이끌어 내는데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박영호 기자 young@catimes.kr